술잔이 바뀌면 술맛도 바뀐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술잔이 바뀌면 술맛도 바뀐다

 

공산품은 내용물보다 포장을 잘해야 좋은 제품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화장품이나 과자 같은 소비재다. 그러다 보니 내용물보다 몇 배나 크게 포장을 하는 사례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값비싼 포장을 줄이고 차라리 내용을 더욱 알차게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이 또한 업체 간 경쟁이 심하다 보니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화장을 하고 성형수술을 하는 이유도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인데 이 또한 지나치면 과대 포장이 되는 것이다. 화장빨 유혹에 넘어가 결혼까지 했지만 막상 민낯을 보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술 또한 하나의 공산품이랄 수 있다. 술이란 제품의 마지막 포장재는 술병이 아니라 술잔이다. 그런데 다른 공산품에 비해 술은 마지막 포장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가격이 나가는 술, 이를테면 와인이나 양주 등은 격식에 맞는 술잔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주인 소주나 맥주 같은 술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따라 마신다.

술을 파는 주점이나 식당에서는 소주잔이나 맥주잔, 그리고 우그러진 양재기나 막사발 같은 막걸리 잔 정도를 갖추고 있는 정도다.

혹자들은 무슨잔으로 먹든 뱃속에 들어가면 취하긴 마찬가지요, 목구멍 넘어가는 것도 매 한가지거든 잔이야 무순 상관이 있겠느냐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눈도 술에 대한 호사를 누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와인을 종이컵으로 마시면 와인을 마시면서 즐기는 색을 제대로 관찰 할 수 없어 아쉽다. 와인을 와인 잔에 따랐을 때 어떤 와인은 루비 같기도 하고 오미자처럼 선홍색을 띠기도 한다. 얇은 와인 잔으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이런 와인의 신선함을 눈으로 즐기기 위한 수단인데 종이컵으로 와인을 마시는 것은 이런 즐거움을 빼앗겨 버려 와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눈도 화를 낸다.

또한 종이컵은 종이로 만들어진 일회용 컵으로, 플라스틱이나 왁스로 코팅되어 있어 액체가 종이를 통하여 스며들거나 유출되지 않게 한다. 이 코팅 냄새 때문에 다양한 와인의 향을 제대로 잡기 힘들다.

이름이 알려진 와인 시음회에서는 손님이 종이컵을 내밀었을 때 절대로 시음용 와인 따르기를 거부하는 일이 많은데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흔히 뚝배기보다 장맛이란 말이 있다. 된장찌개와 뚝배기는 궁합이 잘 맞는 경우다. 뚝배기가 된장의 온도를 유지 해주기 때문에 맛있게 된장을 먹을 수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와인 잔은 사용하기 불편하다. 와인 잔의 스템(Stem)은 체온이 와인의 온도를 변화시키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사용하기엔 까다롭다. 그렇지만 와인 잔이 탄생된 유해를 알고 나면 와인 잔을 들었을 때 다시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최근 본지에 남태우 교수가 연재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수밀도형 술잔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와인 잔은 과거 유럽의 왕비의 유방을 본떠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술잔은 금으로 만든 금잔이 아닐까.

금동이(금잔)의 아름다운 술은 일만 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촛불 눈물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聲高).

이 한시는 춘향전 소설에 등장하는 이몽룡이 변 사또의 잔칫상 앞에서 지은 시로, 탐관오리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요즘에야 탐관오리(貪官汚吏) 같은 공직자들은 없겠지만 탐관오리들이 세상만사를 쥐락펴락 하던 시절, 탐관오리들은 금동이에 술 따라 마실 때 백성들은 막사발에 허연 막걸리 잔이라도 얻어 걸리면 행복했었다.

그 때부터인가 막걸리는 사발이나 도자기에 막걸리를 따라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가 양은주전자가 나오고 여기에 양은 잔이 개발되면서 최고의 궁합이라 여겨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대폿집은 멀쩡한 양은 잔을 찌그러트려서 내놓는다. 오래된 술집인양 보이기 위한 수단일 것이다.

찌그러진 양은 잔이 추억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바꿀 때가 되었다. 뉴스에서 양은 냄비를 쓰면 알루미늄 독소가 녹아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필자의 오랜 기간 실험(?)을 통해 터득한 바에 따르면 막걸리도 와인 잔으로 마시면 훨씬 맛이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혼 술이 유행인데 막걸리 한통 사들고 집에 들어가 멋있는 와인 잔에다가 막걸리를 마셔보라. 느낌이 새로워진다.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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