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스런 술 빚기’에 얽힌 비밀 ‘연해주(燕海酒)’

박록담의 전통주 스토리
<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 58번째 이야기

‘위험스런 술 빚기’에 얽힌 비밀 ‘연해주(燕海酒)’

 

<要錄>의 ‘연해주(燕海酒)’는 다른 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한 주방문이다. 따라서 ‘연해주(燕海酒)’라는 주품명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일체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이렇듯 ‘연해주(燕海酒)’가 <要錄> 이전이나 이후의 문헌에서도 다뤄진 적이 없는 까닭은, 독특한 주방문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테면 <山家要錄>의 ‘여가주(呂家酒)’나 <諺書酒饌方>의 ‘합자주(榼子酒)’ 등과 같이 술을 빚는 과정이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연해주(燕海酒)’를 빚을 줄 아는 사람 이외 다른 가족이나 일반에서는 꺼렸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보다 손쉽고 빠른 시간 안에 발효도 잘되고, 맛과 향기도 좋고 양도 많이 나오는 술빚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술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고 보면, 술빚는 일이나 그 과정에 특별한 관심이 많거나, 아무런 걱정이 없어 술 빚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연해주(燕海酒)’와 같은 술을 빚는 일을 귀찮게 여기기 마련이라는 결론이다.

주방문을 보아 알 수 있듯 ‘연해주(燕海酒)’는 일반 주품들과는 달리, 밑술을 빚는데 따른 멥쌀과 찹쌀을 섞어서 사용하고 백세 하여 3일간 불렸다가 작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쌀을 오랫동안 불림으로써 의도적으로 부식시켜 가루로 빻는 것이다. 부식된 쌀가루에 끓는 물 10말로 개어 범벅을 쑤는데, 물의 양이 많아 범벅을 쑤기는 어렵지 않다. 범벅도 비교적 잘 익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일반주품들과는 달리, 밑술의 상태가 매우 불량해질 수 있어, 덧술을 해 넣더라도 발효가 부진해질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연해주’는 밑술에 사용되는 누룩의 양이 매우 많거니와, 쌀 3말에 누룩가루가 8되나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물론, 누룩의 양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예측되는 덧술의 발효부진에 대비한다고는 하지만, 굳이 어떻든 이렇듯 ‘위험스런’ 술 빚는 법을 취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연해주(燕海酒)’를 빚어보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연해주(燕海酒)’는 매우 부드러운 맛을 자랑한다. 술맛이 특히 부드럽다는 것은 술의 알코올도수가 그리 높지 않거나, 여러 차례 덧술을 하여 오랜 기간 발효시켰을 때 매우 깊은 맛을 간직할 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연해주(燕海酒)’는 장기 발효주가 아니다. 덧술 쌀 7말에 대하여 끓는 물 10말로 빚은 밑술을 섞어 빚은 주품 치고는 단맛도 있고, 비교적 부드럽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과와 포도향 같은 방향도 풍부한 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술맛이 비교적 싱겁고, 누룩냄새가 많이 느껴지고, 약간의 떫은맛과 느끼함도 느껴진다는 것이 단점이라고 하겠다. 밑술의 쌀을 3일간이나 불려서 사용한 까닭에 잔당이 지나치게 많은 밑술을 사용한데 따른 효모의 육성이 불량해졌고, 상대적으로 누룩을 많이 사용한 데서 오는 결과이지만 예측했던 결과보다는 훨씬 맛이 떨어진 주질에 실망감이 앞선다.

따라서 알코올도수가 좀 더 높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덧술의 쌀을 찹쌀이 아닌 멥쌀을 사용함으로써, 술맛이 다소 싱겁다는 느낌을 보완할 수 있었다.

◈ 燕海酒 <要錄>

◇ 주 원료 ▴밑술:멥쌀 2말, 찹쌀 1말, 누룩가루 8되, 밀가루 2되, 끓는 물 10말

▴덧술:멥쌀(또는 찹쌀) 7말

▴밑술:①멥쌀 2말과 찹쌀 1말을 함께 섞고, 백세 하여 물에 3일간 담갔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음건한다(물기를 뺀다). ②음건한(물기를 뺀) 쌀을 가루로 빻은 다음, 넓은 그릇에 담아 둔다. ③쌀가루에 물 10말을 팔팔 끓여서 나눠붓고, 주걱으로 골고루 개어 죽(범벅)을 쑤어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죽(범벅)에 누룩가루 8되, 밀가루 2되를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또는 찹쌀) 7말을 준비한다(백세 하여 하룻밤 물에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다). ②(불린) 쌀을 시루에 안쳐서 무른 고두밥을 무르게 짓는다. ③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④밑술을 고두밥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⑤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다음, 예의 방법대로 하여 발효시킨다.

 

風勢(풍세)를 따르는 술 ‘당량주(當樑酒)’

 

‘당량주방(當梁酒方)’은 유일하게 <林園十六志(高麗大本)>에 수록되어 있는 주품으로 삼양주법이다. <林園十六志>는 1823년경에 저술되었는데, 현재 서울대 ‘규장각본(奎章閣本)’과 ‘대판본(大板本)’, ‘고려대본(高麗大本)’이 존재한다. <林園十六志>는 서유구에 의해 저술된 것이나, 출간 이후 여러 경로로 필사 보급되면서 혹은 빠지거나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高麗大本’에 수록된 주품의 수가 가장 많고, ‘대판본(大板本)’은 ‘규장각본(奎章閣本)’이나 수록된 주품의 수가 가장 적고, 편집체제도 바뀐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몇몇 주품들은 ‘고려대본(高麗大本)’에만 수록되어 있는데, 자세한 경위를 알 수 없다.

‘당량주방(當梁酒方)’은 여느 주방문들과는 달리, 매우 이채로운 주방문으로 여겨진다. 우선 주품명과 관련하여 방문에 “이 술은 대들보 밑에 술항아리를 놓으므로 당량(當梁)이라 한다.”고 하여 ‘당량(當梁)’이 대들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왜 술독을 대들보 밑에 두고 발효시키느냐?” 하는 궁금증이다.

옛 어른들의 말씀에 “술은 ‘풍세(風勢)’를 따른다.”고 하였다. 얼추 생각하면 “무슨 미신같은 소리냐?”고 할 터이나, 이는 다시 말해 “술을 발효시키는 장소나 공간의 온도와 바람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말로, 술을 발효시키는 장소와 공간에 있어, 동·서·남·북의 네 방위는 춘·하·추·동과 아침·저녁에 따라 일기와 바람의 영향을 받게 되어 있어, 술의 발효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술독을 대들보가 있는 공간의 중앙에 놓으라는 말이다. 환언하면, 특히 일교차가 큰 계절과 술의 주발효기간에는 그 공간의 벽 쪽이나 지나치게 한구석으로 붙여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술빚기와 주품명에 따른 답이다.

‘당량주방(當梁酒方)’은 술재료의 비율에서 ‘삼(三)’이라는 숫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밑술의 배합비율은 기장 3말 3되를 주원료로 누룩 3말 3되, 물 3말 3되이고, 3일간 발효시킨 후에 덧술을 하는데, 그 양이 멥쌀 3말이며, 또 덧술의 발효기간도 3일이다. 그리 다시 2차덧술을 하는데, 주원료의 양이 멥쌀 9말로 ‘삼(三)’의 곱이나 되는데도, 누룩과 물은 밑술에서만 한 차례만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방문은 극히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으며, 의도적이 아니면 그 이유가 설명되어지지 않는 주방문이라고 할 것이다.

왜냐 하면 ‘당량주방(當梁酒方)’ 3차례에 걸쳐 ‘고두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두밥으로만 빚은 술의 발효시점이 죽이나 떡으로 빚은 술보다 길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당량주방(當梁酒方)’의 경우는 덧술과 2차덧술의 발효기간이 3일로 매우 짧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 이유가 “이후로는 쌀의 양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덧빚어서 항아리를 채운다. 만약 술을 덜어서 마시려면 술을 살짝 떠서 마실지라도 결코 술을 걸러서는 안 된다.”고 한 배경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 2차덧술의 발효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을 건드리게 되면, 재발효와 산패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술의 양이 많은 관계로 중간에 이미 완성된 술은 산패하기 전에 떠내야 하고, 남은 술덧은 계속 발효시켜 숙성되도록 해주어야만, 어느 날 갑자기 산패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주방문에 기록해 놓았는데, ‘술독을 면보자기로 덮어’라고 하여 술의 주발효시 품온이 지나치게 끓어오르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완전한 해결책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 되어야 숙성, 보관 중의 재발효를 막을 수 있는데, 그리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당량주방(當梁酒方)’은 중국의 주방문이 <林園十六志>를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방문 말미에 “<齊民要術>을 인용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증거가 “만약 술을 덜어서 마시려면 술을 살짝 떠서 마실지라도 결코 술을 걸러서는 안 된다. 가령, 술 1석을 떠서 쓰면 그 대신 쌀 1석을 밥을 지어 덧빚으면 항아리가 가득 차게 된다. 이 역시 신기하다. 술지게미를 구덩이 속에 파묻고, 개나 쥐가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여 전형적인 중국식 술 빚는 법을 엿볼 수 있다.

◈ 當梁酒方 <林園十六志(高麗大本)>

◇주 원료▴밑술:기장 3말 3되, 누룩 3말 3되, 물 3말 3되

▴덧술:멥쌀 3말 ▴2차덧술:멥쌀 9말

▴밑술:① 3월 3일 해 뜨기 전 새벽에 메기장 3말 3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저녁 때 말갛게 헹궈서 건진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 고두밥은 뜸을 들여서 무르게 익힌다(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 고두밥에 물 3말 3되와 법제한 누룩가루 3말 3되를 합하고, 고루 주물러 밥알이 낱낱이 흩어지게 하여 술밑을 빚는다. ④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후, 면보자기로 2겹을 덮고 3일간 발효시켜 익기를 기다린다.

▴덧술:① 3월 6일에 멥쌀 3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저녁 때 말갛게 헹궈서 건진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 고두밥은 뜸을 들여서 무르게 익힌다.(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 고두밥에 밑술을 한데 합하고, 고루 주물러 밥알이 낱낱이 흩어지게 하여 술밑을 빚는다. ④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후, 면보자기로 2겹을 덮고 3일간 발효시켜 익기를 기다린다.

▴2차덧술:① 3월 9일에 멥쌀 9말을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저녁 때 말갛게 헹궈서 건진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 고두밥은 뜸을 들여서 무르게 익힌다(익었으면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과 덧술을 합하고, 고두밥알이 낱낱이 흩어지게 하여 술밑을 빚는다. ④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후, 면보자기로 2겹을 덮고 15일간 발효시켜 익기를 기다린다.

주방문에 “이 술은 대들보 밑에 술항아리를 놓으므로 당량(當梁)이라 한다.”고 하고, “이후로는 쌀의 양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덧빚어서 항아리를 채운다. 만약 술을 덜어서 마시려면 술을 살짝 떠서 마실지라도 결코 술을 걸러서는 안 된다. 가령 술 1석을 떠서 쓰면 그 대신 쌀 1석을 밥을 지어 덧빚으면 항아리가 가득 차게 된다. 이 역시 신기하다. 술지게미를 구덩이에 파묻고, 개나 쥐가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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