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 바코이들은 광적인 주정꾼들인가, 신성한 자연주의자인가

박정근 칼럼

술꾼 바코이들은 광적인 주정꾼들인가, 신성한 자연주의자인가

 

                                박정근(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유리피데스가 쓴 ‘바코이’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판테우스왕 사이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그리스 사회에서 디오니소스 신도들을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술꾼 무리로 취급한다. 그 당시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을 ‘바코이’ 또는 메나드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아직 신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무리로서 그리스사회가 추구하는 질서와 이성보다는 디오니소스의 가르침에 따라 도취나 몰아지경의 열정과 신비를 선호하였다. 그래서 왕을 비롯한 행정가들은 그들을 무질서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으로 매도하고 반사회적 존재로 간주한다.

이 작품에서 현자인 테레시아스는 디오니소스의 비이성적 몰아지경과 신비적 효과를 긍정적으로 옹호한다. 반면에 판테우스왕은 그리스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인 이성을 내세우며 디오니소스와 추종자들을 처형하자고 나선다. 양치기들의 눈을 통해서 묘사되는 메나드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이다. 판테우스가 지적하는 것처럼 취해서 쓰러져있거나 성적으로 방종한 모습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들판이나 산속에서 평화롭게 이완상태를 즐기거나 잠에 취해 있다. 그들은 동물들과 부드럽고 애정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늑대의 젖을 먹인다든지, 지팡이를 두드리면서 포도주를 마시는 목가적인 이미지가 창출한다.

하지만 일단 외부인들이 그들의 신성한 제의를 방해하려고 하면 사나운 모습으로 돌변한다. 그들은 가축을 찢어먹거나 마을 습격하는 파괴적인 무리로 변화한다. 그들은 디오니소스에 대한 숭배적 제의를 왜곡시키려는 것을 알면 일종의 패닉상태에 빠져 방해자들에게 대해 보복을 서슴치 않는 경향이 있었다.

아이러닉하게도 판테우스가 주신제를 방해하는 동기는 매우 치기스러운 욕망에서 출발한다. 그는 유치하게도 반나 상태인 디오니소스 신도 메나드들의 비밀스러운 주신제를 몰래 즐기려는 관음증적 모습을 보인다. 그는 지금까지 주장했던 이성과 질서, 사회적 신분에 대한 집착을 너무 쉽게 버리고 만다. 그리고 왕의 권위의 상징인 의관을 벗어버린다. 그는 변덕스럽게도 죄인으로 처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메나드들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런 ‘옷 바꿔 입기’는 판테우스의 내면의 억압된 본능이 느슨해진 의식의 경계를 피해 자기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판테우스에 대한 디오니소스의 형벌은 매우 끔찍하게 이루어진다. 판테우스는 스스로 드러낸 심리적 모순으로 인해 디오니소스의 심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몰아적인 주신제가 불법적인 부정이라고 매도했던 그가 본능적으로는 강한 호기심과 욕망을 보여주는 것은 허위적인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판테우스는 메나드들의 평화롭고 목가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극단적인 경우만을 언급함으로써 디오니소스와 그 신도들의 긍정적 본성을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판테우스는 나무에 올라가 바코이들의 주신제를 숨어서 보다가 아가우에와 신도들에게 발각된다. 그들은 몰아지경을 방해한 행위에 대해 분노한 나머지 신성한 제의를 방해한 원인자를 향해 달려간다. 그들은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 펜테우스를 붙잡아서 그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서 사방에 던져 버린다. 주신제의 몰아지경의 도취에서 깨어난 아가우에는 자신의 손에 죽은 아들의 모습에 아연실색을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그녀는 아버지 카드모스에게 “아버님, 내 인생은 변했어요. 되돌리킬 수 없다고요. 내가 내 아들을 무슨 염치로 애도하여 품에 안을 수 있겠어요? 그의 피가 내 손과 마음을 혼란케 하는군요. 이런 비참한 마음에 빠진 내가 어떻게 그를 고귀하게 만질 수 있겠어요. 내가 그를 죽였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그를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겠냐구요.”라고 울부짖는다.

결과적으로 이런 비극적 사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디오니소스의 관점에서 판테우스의 행위는 신성모독이라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으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의 주신제가 무질서와 성적 방종을 조장한다는 일방적인 세속적 주장은 바코이의 진정한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바코이들은 도취를 통해서 모체인 자연과의 일체감과 통합을 추구한다고 보아야 한다.

판테우스 왕이 주장하는 질서와 이성이 사회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가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들이 바코이들이 갈구하는 완전한 이완과 평화를 주지는 못한다. 바코이들은 개체로서 존재하기 이전의 신성 차원의 통합된 세계로 환원하려는 본질적 욕망으로 도취가 필요할 뿐이다. 술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결코 폭력이나 성적 방종이 아니라 본래적 자연과의 통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들이여, 차라리 그대들이 원하는 몰아지경의 숭고한 제의를 완성하기 위해 법과 질서가 지배하는 도회를 떠나라. 젖과 꿀이 흐르고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서 마음대로 와인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도원지경이 세속세계 너머 있으리라. 이 세상에 없다면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데아 세계에 있으리니 와인 한잔 그득히 담아 산과 바다를 향한 채 눈을 감으라. 그리고 달콤한 와인을 입술에 적시고 완벽한 이완상태로 들어가라. 무한의 자연이 팔을 벌리고 있는 그곳에는 분명 그대들이 꿈꾸는 영원한 몰아지경이 존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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