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시작된 인생 술로 끝내다

김원하의 醉中眞談

술로 시작된 인생 술로 끝내다

 

풋술을 할 때다. 이때 나는 술이 뭔지도 모르고 많이 마시는 것이 술 잘 마시는 것으로 알고 마셨을 때다. 필자가 풋술을 배울 때 소주 1병을 대폿집에서 300원 정도 받았고, 도수는 30도 이었던 시절이다.

지금은 20도만 넘어도 독하다고 하는데 1965년 진로가 30도 소주를 출시하기 전까지는 대개 소주는 35였다. 1973년 진로가 25도 소주를 출시하면서 저 도주 개발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13도짜리 소주도 출시되고 있다. 여기에 할 술 더 떠 명품안동소주는 증류식 소주로 5도짜리 소주를 개발해 놓고 곧 출시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하니 저도주의 바닥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소주 도수야 어쨌거나 필자가 풋술을 배울 때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시쳇말로 호기 있게 “오늘 내가 쏠께”하던 분위기도 아니고, 술 마시고 나면 지금처럼 N분의 1로 나누어 내던 시절도 아니다. 각자 주머니 털어 있는 돈 없는 돈 마련해서 술값을 치렀고, 그래도 모자라면 시계도 맡기고 신분증도 맡기고 술집을 빠져나왔다. 땡전 한 푼 없는 친구는 항상 무일푼으로 술을 마셨다. 그래도 주당들은 그를 마다 않고 주당멤버로 인정했다.

당시 필자가 속해 있던 주당((酒黨)에서 어느 날 진성 당원이 “매번 술 마실 때 마다 주머니 터는 것도 재미없으니 주당 대회를 열어 1등에 당선되면 차기 당 대회부터 회비 납부를 면제하자”는 제안을 했다. 공짜로 술을 먹을 수 있다는데 마다하겠는가 모두가 ‘OK’.

쌍과부집(을지로 2가 소재, 지금은 재개발로 사라졌다)에 모인 주당들(필자 포함 9명)이 모여 주당대회를 여는 날은 소주를 박스로 시켜 놓고 마셨다.

주당대회를 열 때도 안주 값이 아까워 각 주당들 앞에는 동그랑땡 1개(30원 정도)와 소주 1병(300원 정도)만 놓여 있다. 순서대로 잔에 따르지 않고 병나발을 불어야 했는데 30도 소주를 병나발로 마시고 숨이 멈출 때 내려놓아야 했다. 필자도 꽤 소주를 잘 마신다고 여겼는데 병째로 마시는 술은 한계가 있었다. 다 마셨다고 여기고 입을 떼고 보니 아! 불싸 병 밑에 소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이날 1등을 한 사람은 선배 L씨였다.

지금생각하면 왜 그렇게 많은 술을 마셨는지 모르지만 당시엔 그렇게 마시는 것이 술을 잘 마시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흔히들 두주불사(斗酒不辭)라고 하는데 필자는 그 정도는 못되고 어느 술 가리지 않고 마시는 주종불사(酒種不辭)형이다. 그런데 최근 젊은 층을 겨냥한 저 도주 소주는 입맛에 맞지 않아 가급적 도수 높은 소주를 찾는다.

꼭 술 때문만은 아니지만 당시 9명의 주당들 가운데 벌써 두 서너 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술을 마신다. 비롯, 본인(아기)은 마실 수 없지만 태어난 아기의 부모는 아기 출생의 기쁨을 술로 나눈다. 아이는 성장하여 음주를 하게 된다. 성장과정에 다양한 술을 접하게 된다.

인륜지대사 인 혼인날에도 처음 대하는 것이 술이다. 현대식 결혼식에는 없지만 전통혼례에식에서는 반드시 합환주(合歡酒)가 있었다. 전통 혼례식에서 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이 합환주인데 격식차려 혼례를 치룰 수 없는 신랑신부는 냉수라도 떠놓고 맞절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 술이라 집단적 회식자리를 비롯, 친구간 교분, 업무추진을 위해, 이도 저도 건수가 없으면 이런 저런 핑계를 찾아내서 술을 마신다.

술이 뒤따라야 할 상갓집 방문은 핑계의 단골메뉴, 그러다 보면 친구 아버지를 두 번 세 번 돌아가시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른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어온 이야기가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한다”였다. 이는 술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대변하는 말들이었다. 사회에서 술 잘 마신다는 것은 예의 바르게 먹어야 되지 그렇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 술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며칠 전 부천에서 함께 술 먹던 후배가 ‘건방지다’며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까운 생명이 술에 취한 선배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은 우리나라 음주문화의 현주소다.

술은 물에서 나온 불이다. 불을 잘 다루면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자칫 잘못다루면 화를 입게 된다. 술도 매 한가지다.

진정한 술꾼들이라면 지나친 폭음은 삼가고 이 세상 하직 하는 순간, 자기가 즐겨 마시던 술 한 잔 털어 넣고 갈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은 어떨까.

<교통정보신문·삶과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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