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야기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권녕하 칼럼

옛날이야기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

 

고려, 조선조에서 귀양살이 귀향(歸鄕)은 유배(流配)라는 형벌제도인데, 글자만 보아서는 ‘귀양’이나 ‘유배’나 꼭 “쫌 쉬다가 다시 오라”는 것처럼 읽혀진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릴 적 할머니 무릎에 앉아 들은 옛날이야기 중에 황희(黃喜) 정승 이야기가 생각났다.

“얘야, 옛날 옛적에 황희 정승이 귀양살이를 가는데, 한양 도성 사람들이 죄다 몰려나와 귀양 가는 황희 정승을 보겠다고 구경거리가 됐어. 종루 거리에 나와 앉은 사람들은 이 기회에 나라의 높은 벼슬아치 황희 정승을 맘 편하게 한 번 보겠다고, 사람들이 마치 장날 장터거리에 나가듯 모여들었지. 그것도 마당놀이 구경 가듯 옆집에 놀러가듯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삼삼오오 패를 지어 모여들고 있었어. 그 북새통에 종루거리 한 편에선 엿장수, 군밤장사, 잔술 파는 들병이까지 끼어들었지. 그야말로 큰 장에 선 것 같았지.

한나절이 훌쩍 지난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귀양길에 나선 황희 정승의 귀양행렬이 나타났는데, 사람들이 처음엔 놀랐다가 그 다음엔 모두들 배꼽을 잡고 웃었어. 한 편에선 소리치고 뒹굴고 난리도 아니었어. 귀양 가는 황희 정승이 양반체면에 소잔등에 앉아 있는데, 그것도 글쎄 거꾸로 앉아 있는 게야. 도성 사람들 생각엔 여느 죄수들처럼 봉두난발(蓬頭亂髮)에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거나, 목에 칼을 차고 가거나, 함거에 갇혀 갈 줄 알았지, 귀양을 소잔등에 거꾸로 앉아, 소풍가듯 갈 줄은 짐작도 못했던 것이지.”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옛날이야기의 결말은 이러했다. “임금님께서 또 ‘급히 들라!’ 하는 파발마가 달려올 텐데, 귀양도 다 가기 전에 돌아가야 할 텐데, 그러면 급히 되돌아가야 하니까, 임금님에 대한 충성심에, 천천히 걷는 소 등에 타고, 그래서 뒤돌아 앉아있었다.”는 것이었다.

조선조 세종 때의 명신으로 이름을 드높인 황희 정승은 청백리(淸白吏)였다. 역사에 남은 청백리는 총 217명인데, 청백리의 조건은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의(仁義) 등 덕목을 두루 갖춘 관리로써 의정부에서 뽑은 관직 자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호칭이었다. 후손들에게도 그 은덕이 미치어 벼슬길에 오를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이언적, 황희, 맹사성, 최만리, 이원익, 이항복, 김장생, 류관 등이 대표적인 청백리로 꼽혔다.

훗날 황희 정승에 관한 자료집을 접하고는 할머니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자료집에서 찾아보았다. ‘누렁소와 검정소’,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등 황희 정승의 행적과 일화 등 이야기가 신화처럼, 설화처럼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도 옛날 옛적부터 할머니가 아주 어렸을 적에 할머니의 할머니가 또 할머니의 할머니가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 내려왔고, 그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였기에 줄거리가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내용이 빠지기도 하고 더해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전기수(傳奇叟)라는 직업이 있었다. 그들은 민간에 구전(口傳)되는 영웅 설화 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이야기해주던 사람인데, 요즘 말로하면 ‘책읽어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그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대갓집 사랑채에 찾아들어, 책만 읽어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며칠이고 머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던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마을 사람들은 두 눈을 반짝이고 무릎을 당겨 앉아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사랑채에 분위기가 잡히면, 술 한 잔에 목을 축이고, 요즘 말로 주민의 여론을 이끌기도 했다. 낯 선 곳의 소식, 한양 도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첩보 수준 정도의 타지소식을 풀어헤쳐놓기도 했다.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이야기도 할머니가 어렸을 때 마을로 찾아든, 이름 모를 전기수에게 들었던 이야기였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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