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낭만적인 술 마시기

박정근 칼럼

정약용의 낭만적인 술 마시기

박정근(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발행인, 소설가, 시인)

 

정약용은 술을 좋아하였지만 두보와 같은 폭주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달밤에 술을 마시는 모습을 분위기가 있다고 말한다. 대낮에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아무래도 술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마시고 싶은 욕망을 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는 어두침침하게 날이 저물어 가면 술꾼들은 그 시간을 ‘술시’라고 농담을 섞어 말하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정약용은 술을 낭만적으로 마셨다고 한다. 그는 <달밤에 술 마시기>라는 시에서 “여보게 달을 보며 술을 마시고 싶으면 달이 뜬 오늘 밤을 놓치지 말게”라고 노래한다.

그는 술이란 요란스럽게 날을 잡아서 마시는 인위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철저하게 음주에 적절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때 즉흥적으로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달빛은 햇볕과 달라서 사물을 속속들이 보여주기 보다는 보기 싫은 것들은 적당하게 숨겨주는 효과가 있다. 일종의 환상 만들기로 어쩌면 함께 마시는 여인이 있다면 그녀의 주름살조차도 살짝 숨겨서 아름다운 여인으로 탈바꿈시켜준다.

이런 정약용의 환상의 추구는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암스의〈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여주인공 블랑쉬와 비교해도 좋을 것이다.

그녀는 대낮에는 결코 외출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늙어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사실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인간의 추해지는 현실을 대면하게 만들기에 그녀는 낮의 환한 햇빛을 회피하고자 한다. 주름살이나 허물어지는 몸매와 같은 추한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기 전에 그녀는 전등에 색종이 갓을 씌워 불빛을 연하게 만든다.

이 색등은 그녀의 얼굴의 잔주름을 숨겨주고 어두운 불빛 아래 사라져가는 젊음을 간직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의 ‘달밤에 술 마시기’는 블랑쉬의 회피적 환상하고는 결을 달리 한다. 정약용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진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친구와 술을 달밤에 술을 마시려면 달빛이 좋은 오늘 밤이 가장 좋다고 제안한다. 정약용이 달밤에 술을 마시려고 하는 것은 가슴을 터놓고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청청한 하늘에 떠있는 달은 내일도 떠있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어느새 구름이 가려버린다면 오늘의 달밤의 분위기는 기약할 수가 없지 않은가.

정약용은 이 시의 3-4행에서 “만일 내일 밤으로 미룬다면/바다에서 구름이 떠오를지도 모르고”라고 겁을 주듯 운을 띈다.

그것은 달빛이 없다면 오늘의 달밤의 낭만적 분위기는 맛볼 수 없다는 의미이며 친구와 마시는 술맛은 훨씬 덜하리라고 암시한다.

어느 시인은 여심은 달과 닮아서 죽 끓듯이 변덕스럽다고 한탄한다. 달이 매일 이지러지고 커지는 현상을 비유한 것이리라. 정약용은 이러한 달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 술이란 휘영청 환한 달빛 아래서 마셔야 감칠맛이 난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친구든 연인이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미룬다면 둥근 달 아래 마실 수 있는 분위기는 결코 같을 수 없다는 귀띔을 한다.

정약용은 달의 변덕을 간파하고 오늘밤 떠오르는 둥근달을 절대로 놓치지 말자고 압박하고 있다. 시인은 “그 다음날 밤으로 또 미룬다면/ 둥근 달이 이미 이지러질 것이네”라고 마지막으로 경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정약용의 면모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관리들의 윤리나 행정의 귀감을 제시하는 실학자가 달빛 아래에서 분위기에 맞추어 친구와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싶어 애타는 모습이 너무나 낭만적으로 보인다. 시인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혼술 문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술이란 역시 이기적인 계산을 초탈한 친구와 달빛 같은 여성적 자연 속에서 즐겨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정약용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약용의 술에 대한 시심에서 흥미로운 것은 술자리의 즉흥성이다. 지금 분위기가 좋지만 시간과 공간을 빌미로 미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본다. 진정한 분위기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조성된 타이밍을 놓쳐서는 가장 귀한 것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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