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청향죽엽주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박록담의 복원전통주스토리텔링 88번 째 이야기

하일청향죽엽주 스토리텔링 및 술 빚는 법

‘하일청향죽엽주’처럼 술밑을 빚는 일이 힘든 주품도 드물 것이다.

‘하일청향죽엽주’는 필자에게 그저 ‘빚기 힘든 술’이라는 이미지 밖에 남아 있지 않다. 고식문헌의 주방문을 도전했을 때, 특히 조선시대의 술은 어떻게 술을 빚어야 하는지를 몰라서 실패를 많이 경험했던 ‘석탄주’를 제외하고 나면, 밑술을 빚는 과정이 힘들었던 주품으로는 ‘하일청향죽엽주’와 ‘동정춘’, ‘향료방’, ‘집성향’ 등인데, 이들 주품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주품이 바로 ‘하일청향죽엽주’였다는 기억이다.

‘하일청향죽엽주’는 <貞一堂雜識>에 수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주품 가운데 하나이다. <貞一堂雜識>에는 ‘하일청향죽엽주’를 비롯하여 ‘사절소국주’, ‘연일주’, ‘부의주’, 등 4가지 주품만이 수록되어 있는데, ‘하일청향죽엽주’는 물론이고 ‘사절소곡주’나 ‘연일주’, 심지어 ‘부의주’에 이르기까지 다른 문헌과 동일한 주품이 단 한 가지도 없는, 다시 말하면 주품명은 동일하지만, 각각의 주방문을 살펴보면 저마다 독특한 방법과 과정으로 이루어져, 매우 개성이 강한 주방문을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일청향죽엽주’는 밑술을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술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하일청향죽엽주’라는 주품명에서 누룩의 양을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 2되로 산정하였다는 것을 밝혀둔다.

‘하일청향죽엽주’를 복원하겠다고 덤벼들었던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술을 빚으면서 “밑술을 빚는 과정이 이렇게 어렵고 힘들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겼는데, 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우선, ‘하일청향죽엽주’라는 주품명이 암시하듯 ‘하일’, 곧 여름날에 빚는 술이기 때문이다. 여름날에 술이 시어지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특히 물의 양이 많을 경우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여름철 주품의 주방문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대부분 물의 양이 적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물의 양이 적다는 것은 쌀 양과의 대비를 말하는 것인데, 물의 양이 적어지면 상대적으로 당농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당농도가 높아지면 당에 의한 삼투압작용으로 미생물의 번식이나 생육활동이 억제되는 원리를 발효에 응용한 것으로, 이러한 방법이 여름철 술빚기의 비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우 밀가루나 분곡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또한 무엇보다 우리 술에서 ‘청향(淸香)’을 얻으려면 누룩이 거칠고 굵어야 하며, 그 양이 5% 미만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쌀 양과 견주어 누룩은 거칠고 적은 양이 사용될수록 술의 향기는 좋아지고, 방향(芳香) 가운데서도 가장 깨끗하고 맑은 향기를 청향(淸香)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쌀 4말 5되에 대하여 누룩 양을 2되로 산정하였으므로, 밑술을 빚는 작업은 훨씬 더 힘들었던 것이다.

경험적으로 ‘하일청향죽엽주’와 같은 주품의 개발은 우연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일청향죽엽주’의 술 빚는 법을 보면 알 수 있듯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이러한 주방문을 작성하였을 리는 없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술을 빚는 과정에서 잘못하여 물의 양을 잘못 계산하여 끓여서 식혀 놓은 물이 9사발 밖에 되질 않아 적게 넣을 수밖에 없었거나, 실수로 쌀 양이 배(倍)로 많아진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을 빚는 과정에서 이런 실수는 흔하게 일어난다. 경험적으로 어쩔 수 없이 빚어놓고 보니, 여름철인데도 별반 문제없이 술이 잘되었고, 특히 향기가 좋았다는 결과물에 만족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그 옛날 반가에서 안주인이 직접 술을 빚는 일이 드물었고, 대개는 술을 전담하는 대모(大母)나 하인들에 의해 술빚기가 이뤄졌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경험적으로 술을 빚다 보면, 도량형을 잘못 계산하여 말(斗)이 동이로, 동이(盆)가 되로, 되(升)가 사발(沙鉢)이나 사발(碗) 등의 식기로 계산되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둘째 이유이다.

‘하일청향죽엽주’를 빚으면서 겪었던 애로사항으로 술을 빚을 때 다음 사항을 유의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쌀을 백세(百洗)하여 하루 동안 불린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으므로 하룻밤동안 불리는 것이 좋다는 것이나, 굳이 하루 동안 불리려면 누룩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체에 쳐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백설기를 쪄서 식힐 때 먼저 물을 끓여서 식혀두었다가, 쪄낸 백설기의 열을 어느 정도 식힌 다음 물과 합하여 덩어리가 없이 주물러서 풀어놓아야 한다.

설기떡이 차게 식을수록 떡덩어리가 풀어지지 않아 힘들어지고, 발효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독 밖으로 끓어 넘칠 수 있다. 백설기가 죽처럼 다 풀어졌으면, 가능한 차게 식힌 후에 누룩과 합하고 주물러서 술밑을 빚어야 탈이 없다는 것이다.

셋째, 술밑은 가능한 많이 치대서 부드러운 죽처럼 되어야만 발효 중에 독 밖으로 괴어 넘치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떡이 덜 식었을 때 누룩과 섞어 버무리게 되면, 발효는 빨라지지만 과발효와 함께 독 밖으로 흘러넘치는 일이 특히 자주 발생한다.

넷째, 밀가루는 먼저 밑술에 풀어 놓는 것이 좋고, 덧술의 고두밥은 찔 때 찬물로 살수하여 뜸 들여서 쪄 내고, 가능한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사용하고, 밑술과 고두밥은 고루 버무릴 때는 고두밥이 낱알이 되도록 풀어지게 하여 술독에 안치면 좋다.

<貞一堂雜識>의 ‘하일청향죽엽주’ 주방문 말미에 보면 “빛이 댓잎 같고 밤낮 찬 귀덕이 뜨듯하여 맛 달고 향기로우니라.”고 하고, 또 “이 술 이름은 ‘미향주’라고도 하나니라.”고 하였는데, 술향기는 ‘정향극렬주’와 매우 유사하고, 술맛은 더 독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느낌이었다.

하일청향죽엽주 <貞一堂雜識>-일명 미향주-

◇주 원료▴밑술:멥쌀 4말, 쌀누룩가루 (2되), 끓여 식힌 물 9사발

▴덧술:멥쌀 5되, 밀가루 1되

◇술 빚는 법▴밑술: ①멥쌀 4말을 백세 하여 하루 동안(하룻밤)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고운 가루로 빻는다(넓은 그릇에 담아 놓는다).②쌀가루를 시루에 안쳐 설교(설기) 쪄 낸 다음, 넓은 석작이나 고리에 담고 덩어리를 헤쳐서 가장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물 9사발을 팔팔 끓였다가 차게 식힌 다음, 식은 떡과 좋은 누룩을 가늘게 빻아 (2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서 술밑을 빚는다.④술독에 술밑을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안쳐서) 21일간 발효시키고 익기를 기다린다.

▴덧술:①멥쌀 5되를 (백세 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②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밑술에 고두밥과 밀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④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7일간 발효시킨다.

*주방문 말미에 “빛이 댓잎 같고 밤낮 찬 귀덕이 뜨듯하여 맛 달고 향기로우니라.”고 하고, 또 “이 술 이름은 ‘미향주’라고도 하나니라.”고 하였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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