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공항, 쓸쓸하게 떠나는 복수민항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 도착장이 쓸쓸하다.

임재철 칼럼

싸늘한 공항, 쓸쓸하게 떠나는 복수민항

임재철 칼럼니스트

코로나19는 전 세계 모든 분야, 모든 사람의 일상과 모습을 변화시키거나 붕괴시켰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건 바로 항공사일 것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감염자가 늘어나자 세계는 하나둘씩 국경을 걸어 잠갔기 때문이다.

휴가철이나 주말,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수다 소리와 미소로 떠들썩했던 공항은 이제 침묵과 어둠 속으로 들어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입국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 역시 이전의 설렘과 행복은 사라지고 두터운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해외에서 돌아온 장기체류 교민들, 대한민국 내 장기거주 외국인들과 일부 비즈니스맨 정도만 왕래 할 정도다.

김포공항은 2001년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하던 공항이었다. 인천국제공항 개항 이후 잠시 국내선 공항으로 전환되었던 김포공항은 2003년 김포~하네다 셔틀 직항편 취항을 시작으로 다시 국제선 운항을 재개했고 오사카, 베이징, 상하이 등으로 취항지를 늘려나가다가 2010년대에는 인천공항, 김해공항과 함께 대한민국의 또 다른 관문 중 하나로 그 위치를 지켜왔다.

복수민항으로 출발했던 아시아나 항공.

이런 김포공항도 코로나19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지난해 3월부터 김포공항의 모든 국제선 노선 운항이 중단되면서 이용객 수도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포공항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비행기와 승객이 끊겨 방치된 것처럼 조용한 국제선 청사와 여전히 많은 승객으로 북적거리는 국내선 청사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할까.

코로나 이후 해외출국자가 줄면서 공항철도 또한 직격탄을 맞았다. 직통열차와 도심공항터미널이 폐쇄되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승객수가 이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공항철도는 서울역에 도심공항터미널을 설치하고 이를 직통열차와 연계해 해외출국자를 위한 맞춤 서비스를 해왔다. 도심공항터미널에는 탑승수속과 출국심사를 제공하여 탑승객들이 공항 도착 전 본래의 절차를 미리 마쳐 빠르게 탑승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러나 해외출국자가 줄어들며 도심공항터미널이 문을 닫게 되자 직통열차 역시 함께 운행을 중단했다. 운행 중단 이후 방치되었던 직통열차 전동차는 현재 일반열차 구간에서 임시열차로 사용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공항리무진 운행이 중단되었거나 휴식 중이다.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해외로 가려면 김포공항보다는 이곳을 거쳐야 했다. 바로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은 2001년 개항 이후 줄곧 대한민국의 관문 역할을 해왔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 등과 함께 세계 1위 공항으로 여러 번 선정되기도 하는 등 인천공항은 다양한 명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돼 있다. 거대한 규모의 터미널로 대변되는 인천공항의 국제적 위치, 휴가철만 되면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가득 찬 공항 내부, 떠나는 출국객들의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표정 등 인천공항을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여행객들의 웃음과 설렘으로 가득했던 터미널은 바이러스와의 사투를 벌이는 공항 직원들과 질병관리청 직원들의 방역복으로 대표되는 일종의 ‘전쟁터’로 바뀌었고, 공항의 역할도 대한민국의 관문에서 방역전쟁의 중요 보루가 되었다. 현재 인천공항은 국내로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차단하는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가령 언제쯤 다시 예전 공항으로서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가하면 LCC(저가 항공사)는 일제히 ‘항공기 다이어트’에 나섰다. 임차 기간이 만료되는 항공기를 대거 반납하는 등 비용을 줄이고 있다. 업계 시장점유율 1위인 제주항공은 총 44대의 항공기 중 일부를 반납했거나 상당수 반납 예정이다.

또한 항공사들은 업황이 좋지 않아 종사자들도 무급 휴직, 순환 휴직을 통해 조금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견디고 있다. 코로나19사태로 지구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우리 일상과 의식 속에서 국제공항과 항공사란 존재가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다들 자기 한 몸도 건사하기 힘들다는 상황에서 항공이며 공항 얘기를 꺼내려니 편치 않다.

16여 년 동안 국내 제 2민항에 종사했던 필자로서는 국내 항공운송사업의 향후 복원이나 발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989년 복수민항시대를 연 제 2민항의 발전에 힘입어 한국의 항공운송산업은 엄청나게 전과 다르게 국가 이미지 제고 및 국제적 위상을 드높인 걸 부인할 수 없다. 말하자면 독과점 카르텔에서 선의의 경쟁체제로의 성공적인 연착륙으로 세계에 자랑스러운 국내 민항사를 구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비자들의 경제적 효익은 물론 스케줄, 노선, 가격, 서비스 등 모든 측면에서 고객 서비스가 증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세월은 그러한 국내 항공사적 역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사태로 국내 항공사가 전환기를 맞은 지금, 난데없이 성급하게 복수경쟁제도를 포기하고 끝내30년 전으로 불가역적인 독점회귀시대를 장착 시킬 태세이니 가히 충격적이라 하겠다. 단순히 두 회사를 합쳐 덩치만 키워서는 비효율만 커지기 십상인데 말이다.

문제는 지금 단계에서 큰 타격을 입은 항공 산업에, 나아가 국가 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은 과도한 의심과 질책이 아닌 합리적 이성이라고 본다. 이왕 통합이 결정되고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불필요한 소모전과 불안을 가중하는 의심과 질책은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30년 넘게 ‘복수민항체제’를 이끌어온 국내 항공 역사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한 나라의 항공정책이 너무 터무니없는 전제아래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 2민항은 현재 일시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은 건 맞지만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이 훼손된 것이 아니며 포텐셜이 있는 회사인 것이다. 그 밖의 여러 요인은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고 항공 독점회귀라는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혹여 이 문제로 졸속정책이 되면 극심한 소비자 불만이나 갈등이 폭발할 터이고, 즉 코로나는 한시적이지만 독과점 폐해는 영구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제 1민항이 정상적인 상황이었음 생각도 안 했을 제 2민항 인수전에 뛰어들어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합병을 강행하고 있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양민항과 계열 LCC를 포함한 여객 점유율은 54%(2019년 국제선 기준)에 달한다. 공정위 독과점 판단 기준인 50%를 넘어서는 수치다. 일각에서는 여객, 노선별 점유율을 독과점 기준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더불어 얼마 전 제 1민항측에서 2민항과의 통합이 이뤄져도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운임 인상 여부에 대해 인위적인 비행기운임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지만 최근 독과점을 바라보는 국제적 시각은 보수적이다. EU는 근래 캐나다 1위 항공사 에어캐나다와 3위 에어트랜젯 간 합병을 불허했다. 양사 합병이 유럽과 캐나다 간 항공편 경쟁성을 떨어트려 소비자 선택권 제한과 가격 인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국내 항공 정책에 언론이나 소비자가 비난조차 하지 않는 무대응은 현재로선 치명적이다. 코로나19사태로 말미암아 항공여행산업은 최악의 위기지만, 이때가 바로 소통의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 같은 정책이나 추진은 긴 호흡으로 차근차근 해야 한다. 한국병인 ‘빨리빨리’ ‘속도전’ 같은 조급증과 무리수를 경계해야 항공산업이 발전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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