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을 노래하는 도연명

술값을 벌기 위해 관직에 나선도연명

박정근 칼럼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술을 노래하는 도연명

박정근 (윌더니스문학 발행인, 도봉문화재단 이사, 소설가, 극작가)

 

박정근 교수

도연명은 영광스럽게 ‘술의 시인’이라고 불린다. 살아가면서 늘 술을 마셨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도 그가 쓴 시 126편에 술을 노래하는 시가 51편에 달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술의 시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수많은 시에 술을 노래하거나 암시하고 있다.

그의 삶에서 술에 대한 애착은 평택령이란 하급 관리를 하게 된 배경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는 시국의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봉급 대신 받는 밭의 수확물로 술을 충분히 담글 수 있기에 관직에 나서게 되었다고 토로했던 것이다.

도연명의 음주습관을 보면 매우 민중적이고 겸손함이 묻어나온다. 그는 술을 마시는 상대를 별로 가리지 않았다. 누구든 그에게 오면 술상을 마련하고 함께 술을 마셨다. 마침 그를 찾아온 태수가 가져온 술이 잘 익은 것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그는 기꺼이 머리에 쓰고 있던 갈포 두건을 벗었다.

그리고 그는 두건으로 술을 거른 후 머리에 썼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것은 그의 삶에서 술에 대한 애착과 겸손함이 동시에 우러나오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연명은 술에 대한 애착이 강한 만큼 경제적 궁핍으로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가 없었다. 팽택령을 그만 둔 후로는 관직과는 거리가 먼 농사를 생업으로 삼았다. 농사는 그에게 힘든 노동을 요구하였으며 언제나 허기를 느끼게 했다.

이때 술은 그 허기를 해결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농사일은 항상 시인의 몸을 피곤에 절게 만들었다. 하지만 술은 피곤한 몸을 달래주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인과 술의 관계는 그의 시에 재미있는 표현으로 나타난다. 우선 그의 피로와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술이 필요하지만 술이 부족한 상황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만가시(挽歌詩)>에서 아래와 같이 노래한다.

살아가면서 마실 술이 충분하지 않았었건만,

금일 아침 뜻밖에 비었던 술잔이 넘치누나.

빚은 술에 거품이 뽀글뽀글 일지만,

언제 다시 이 술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도연명은 술을 즐기지만 가난 때문에 그의 곁에 좋은 술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애주가인 그가 어찌 좋은 술을 원하지 않겠는가. 이른 봄에 불어오는 바람은 농사일을 하는 그에게 그리 달갑지 않다. 봄바람이 싸늘하여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일손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술이다. 술은 농사일에 지친 그를 위로해주고 허기와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다. 시인은 술을 의인화하여 약한 여자와 힘센 사내로 표현한다. 약한 여자는 박주(薄酒)로 성의 없이 빚어 별로 맛이 없는 술을 상징한다. 그리고 힘센 사내는 진하고 맛있는 술을 상징한다. 아마도 가부장 시대에 남녀를 심하게 차별하는 풍토를 암시하는 것이리라. 그는 시상 현령을 지낸 유정지에게 화답하여 보낸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도연명 초상화

불어오는 봄바람이 아직 서늘하니

봄 막걸리로 허기와 피로를 달래주네

약한 여자가 사내는 아닐지라도

마음을 위로하나니 아예 없는 것보다 낫구나.

도연경은 경술년 9월 서쪽 밭에서 올벼를 수확하면서 농사일이 무척 고달프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시인이 농사를 지어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만도 매우 감사하다고 느꼈으리라.

다만 시국이 불안한 것이 걱정이다. 항상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은 서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민중을 그들의 권력유지나 찬탈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다. 도연명은 그저 전쟁과 같은 뜻밖의 사건이 터지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그는 농사일을 마치고 더러워진 손발을 닦고 그늘진 처마 밑에서 휴식을 취한다. 느긋해진 마음에 술을 한잔 기울이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술은 피로를 잊게 해주는 민중들의 위로자가 아닐 수 없다. 시인은 모처럼 근심걱정을 물리치고 나름의 행복감에 젖어본다.

온몸이 몹시 고달프고 힘들지만

뜻밖의 재난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네

손발을 깨끗이 닦고 처마 밑에서 휴식하며

술을 한 잔으로 기분을 내고 얼굴을 펴네.

관리가 싫어서 귀향하여 농부가 된 시인은 결코 허접한 시골의 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 들에서 일하다가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 이웃과 함께 술을 나누며 위로하는 삶에 오히려 만족 한다.

술이 얼큰하게 취해 귀가하며 노래를 부르며 사립문을 닫는다. 이 순간 도연명은 농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함께 일하는 이웃이 있고 그와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음을 느낀다. 도연명은 농부로서 자족하며 이런 소박한 삶을 멋진 시로 재현하는 기쁨이 있으니 더더욱 뿌듯했던 것이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