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마시던 소주가 안 넘어가네…

박용수 대표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니 자신이 빚은 술을 들고 나왔다.

농업회사법인연천양조(주) 朴鏞洙 대표

줄곧 마시던 소주가 안 넘어가네…

그런데 전통주는 잘도 넘어가네, 왜일까를 찾다 양조인 되었네

 

 

IT업계에서 26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연천으로 귀농하여 양조장을 하게 된 저간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박용수 대표.

일상이 코로나다. 요즘은 코로나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방역활동을 느긋하게 하겠다는 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하루 발생의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는 형국이다. 아무리 마스크 쓰고 개인 방역을 철저히 해도 문밖출입이 겁날 정도다. 정말로 도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런 때 양조장 취재를 떠난다는 것은 호사스러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속담에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딱 어울릴 것 같다. 새로운 술도 만나고 산천경계를 구경할 수 있다니 이 아니 좋지 않겠는가. 콧노래가 절로 난다.

이번에 찾아가는 양조장은 경기도 최북단 연천(漣川)군에 위치해 있는 농업회사법인연천양조장(대표 朴鏞洙, 57)이다.

서울에서 연천으로 가는 길은 서울-문산 고속도로가 개통돼 수월하다. 문산을 지나면 임진강을 친구삼아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임진강가에는 고려왕들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숭의전도 있고, 간간히 원두막을 만나 싱싱한 참외랑 토마토 같은 것을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도 운전자를 신나게 하는 것은 교통정체현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2018년 3월19일 빚은 유하주를 보여주고 있다. 술맛을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오묘함이 배어 있다.

그렇게 마셨던 소주가 느끼하게 느껴졌다

내비게이션 안내가 종료되었다. 보여야 할 양조장이 보이질 않는다. 박 대표에게 전화로 물어 본다. 돌담길을 따라 들어오면 된단다. 나무숲이 우거진 사이에 간판도 없는 작은 양조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엔 보리수가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고, 마당가에는 차임벨모양의 참깨 꽃이 한창이다.

문 열고 나온 박 대표를 만나면서 참깨 꽃 이야기부터 한다. “어릴 적엔 저 꽃 따서 빨아먹던 추억이 있다”는 말에 박 대표도 공감한다고 했다. 참으로 목가적인 풍경이다.

박 대표는 고향이 해남이지만 초등학교를 장성에서 다녔다. 지금 청산녹수가 위치해 있는 터가 바로 박 대표가 다녔던 초등학교였다고 했다. 이런 연유로 김진만 대표와는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해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광주로 유학해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은 동국대에서 인도철학을 전공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생이 된 박 대표 눈에 지금의 아내가 눈에 들어와 대학 4년 때 결혼을 했다. 그래서 친구들보다 일찍 자녀를 두게 되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회에 나와서 직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은 터라 IT쪽에서 일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 진학하여 졸업 후 26년간 IT 넷크루즈에서 일하다가 2015년 전무로 퇴직했다.

박 대표가 직장생활을 할 때 2014년 안식월을 맞아 가족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해외여행 턱을 낼 때 몸에서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그동안 소주를 얼마나 마셨겠어요, 그런데 직원들과 회식하면서 소주(희석식)가 느끼해서 못 마시겠더라고요, 그런데 전통주는 미끄럼 타듯 잘도 넘어가더라고요” 이게 뭐지 하며 그 때부터 전통주점를 찾아 나섰다.

전통주와 관련된 서적도 구입해서 읽어봐도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별로였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곳이 ‘막걸리학교’였다. 결국 막걸리학교에 입교했다. 이때부터 전통주에 빠지게 되었다고 박 대표는 술회했다.

“처음에는 전통주가 무엇인가가 궁금해서 공부를 하다가 직접 담가보니 너무나 신기하고 재미가 붙더라고요, 그래서 중급반을 거쳐 고급반(창업 준비반)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죠”

박 대표는 “그 당시만 해도 양조장을 하겠다는 생각은 1도 없었는데 지금 양조장 주인이 되었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후회는 없다고도 했다.

막걸리학교는 직장에 다니면서 주말을 이용하여 공부를 했다. 어느 정도 술을 빚게 되니까 양조장을 차리고 싶은 마음에 조기 퇴사를 결심했다. 아이들도 대학을 졸업하게 되어 부담이 줄어든 탓도 있어 201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부부가 임진강변에서 양조장을 할 만한 터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박 대표가 군 생활을 하던 연천이 생각나 지금의 터를 찾게 된 것이 제2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연천군은 경기도 시·군 서열 중에서도 31위의 최하위로 분류되고 있는 군이다. 이런 곳으로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경기도 최북단 접경 지역으로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에 반해서이다.

연천양조장이 빚고 있는 연주와 아주
주명이 ‘아주(我酒)’·‘연주(戀酒)’·‘우주(友酒)’라고…

“남토북수(南土北水)란 말이 있습니다. 남쪽의 비옥한 토지와 북쪽의 깨끗한 물을 의미하고 있는 말인데요, 이런 환경에서 자란 곡식은 타 지역 농산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우수합니다. 쌀도 그렇고 밭농사도 그렇습니다.”

박 대표가 이 지역의 농특산물을 사용하여 전통주를 제조하고, 이를 현대화, 세계화, 시스템화하여 전통주 소비자에게 맛과 향이 우수한 프리미엄 전통주를 공급한다면 보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천군에서 율무를 가지고 술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연천군의 기후조건이 율무를 생산하기에 딱 맞아 전국 율무 생산의 80%를 점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산 율무가 쏟아져 들어와 율무를 재배하는 농가가 많이 줄어들어 현재는 60%정도라고 한다.

증류식 소주 우주

]현재 연천양조장에서는 연천 쌀과 율무를 원재료로한 막걸리와 동동주, 약주, 증류식 소주를 생산한다. 쌀은 연천의 멥쌀이며, 율무막걸리도 연천산 율무를 사용하고 있다. 누룩 또한 자신이 빚은 누룩과 기성 누룩 4~5종을 섞어서 사용한다.

율무막걸리는 죽을 쑤어 밑술을 제조한 후 연천율무와 쌀로 고두밥을 지어 덧술을 하는 이양주로서 기존의 막걸리보다 한층 고급스러운 맛을 구현한 전통주다.

주명도 ‘아주(我酒)’·‘연주(戀酒)’·‘우주(友酒)’라고 했다. ‘아주’는 이름 그대로 ‘내 술’이라는 뜻인데 그 뜻은 ‘집에서 내가 빚어 마시는 술‘이라는 뜻이란다. 내가 마시고 나눠 마시는 술이니 그 만큼 정성을 쏟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연주’는 생약주인데 연인끼리 마시면 더욱 정이 갈 수 있는 술이고, 증류식소주인 ‘우주’는 벗과 마시는 술이란 뜻이다.

유무로 담근 막걸리 한잔 들어보세요
郡에서 적극 권장한 율무막걸리 인기 끌어

연천양조의 술맛은 한마디로 ‘자연주의’다. 아스파탐 같은 인공 맛을 넣지 않았다는 뜻이다. 또한 술의 단맛을 돋우기 위해 프리미엄 막걸리 양조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찹쌀도 쓰지 않는다. 멥쌀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과 맛을 최대한 살리되 맛의 균형도 원재료와 양조과정에서 잡아낸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박 대표는 연천으로 귀농하면서 철저한 연천맨이 되었다. 이를 알아차린 군에서 연천의 특산품인 율무로 술 만들기를 권해서 연천율무막걸리와 연천율무동동주를 개발, 2019년 8월 17일 출시됐다. 김광철 군수가 참석한 가운데 율무막걸리를 출하식도 가졌다. 참석자들 모두 엄지척. 포천 막걸리를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평을 받았다.

그런데 율무는 쌀보다 5~6배 정도 비싸다. 과거에도 연천에서 율무막걸리를 빚은 양조장이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문을 닫았다. 그래서 연천에서는 율무막걸리에 대한 아쉬움과 열망이 많아서 박 대표에게 율무막걸리를 제조하도록 권유하며 지원을 했다.

율무 술은 쌀보다 발효가 더디다. 율무막걸리의 발효는 늦게 시작해 서서히 오랫동안 계속된다. 전체 발효 공정은 거의 한 달쯤 걸린다.

그런데 막상 술이 되면 율무막걸리는 풀 향이 약간 나고, 함박꽃향이 난다. 상큼한 과일 향도 올라온다. 6도 제품(6000원)과 14도 율무동동주(1만4000원) 두 가지 제품이 있다. 그 외 율무가 들어있지 않은 연천아주(막걸리·6000원)와 연천연주(약주·1만5000원)는 프리미엄급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박 대표는 연천양조가 빚은 막걸리 병에 ‘남토북수(연천군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마크)’라는 작은 로고가 들어 있는 것을 설명하자 ‘이 한 병의 막걸리에 평화가 담겨 있다’고 방송에서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연천막걸리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취재팀장과 막걸리를 마셨다.
‘이 한 병의 막걸리에 평화가 담겨 있다’고 미국 NBC가 방송

박 대표가 보물처럼 생각하고 있는 공간이 있다. 연구실이기도 하고 저장고도 되는 공간에는 술 빚은 지 4년이나 되는 생주가 보관되어 있다. 식초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노파심을 가지고 맛을 보니 와! 대박. 아주 옛날 신선들이 마셨던 술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박 대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술을 원칙대로 빚고 저온으로 보관하면 누구든 이런 술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생막걸리가 4년이 지났는데 술 맛이 더 좋아지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연천의 물맛 때문일까?

연천양조장은 국내는 물론 미국에도 알려진 양조장이다.

2019년 미국 NBC방송국에서 비무장지대(DMZ)를 취재해서 방영한 적이 있었다. 취재팀이 연천양조장을 방문했을 때 박 대표는 연천양조가 빚은 막걸리 병에 ‘남토북수(연천군의 친환경 농산물 인증마크)’라는 작은 로고가 들어 있는 것을 설명했다.

이는 ‘남쪽의 땅, 북쪽의 물’이란 뜻이라는 것을 듣고 ‘이 한 병의 막걸리에 평화가 담겨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연천막걸리는 ‘평화의 상징’이 됐다.

2019년 미국 NBC방송국 취재팀이 비무장지대(DMZ)를 취재하다가 연천양조장을 들렀을 때 막걸리를 마시고 환호하고 있는 취재팀.
작은 양조장들이 모인 ‘작은양조장협회’ 조직

박용수 대표가 운영하는 양조장은 역사도 짧지만 규모도 작다. 이런 작은 양조장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작은 양조장을 운영하는 20여명이 지난 해 ‘작은양조장협의회 삭히다’를 조직했다. 현재 박 대표가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매월 첫째 월요일 모임(요즘은 온라인)을 갖고 각종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구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협동조합도 구성했다.

또 온라인 판매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술팜’의 온라인 부분을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박 대표는 틈나는 대로 과거 문헌에 나오는 술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한다. 때문에 고문헌에 나오는 술도 빚어 보고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제주에 관한 연구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웃해 있는 숭의전에서 올리는 제주가 문헌에 맞지 않아 이를 바로 잡아주고 일제가 망가트린 종묘제에 사용하는 술도 복원해줬다.

이 때문에 2019년 고려종묘 숭의전 제례주 제조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현재의 양조장과 가까운 곳에 새로운 양조장을 짓고 있다. 몇 년 동안 현장에서 술공부를 했으니까 본격적인 사업을 벌여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율무를 가지고 리큐르주도 개발하여 보다 다양한 전통주를 내 놓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동안 영천양조장에는 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의 발길도 잦았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향음주례부터 가르쳐서 왜 술을 마시는가를 알아야 되기 때문이다.

동동주
연천양조가 생산하고 있는 주종과 체험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연천아주(我酒):무감미료 연천쌀 생막걸리, 연천쌀, 밑술 덧술 이양주, Alc.:8%, 750ml, 유통기한:30일. 6,000원

◇연천율무막걸리:연천율무로 설기떡을 하여 구수한 맛을 낸다. 밑술 덧술 이양주, Alc.:6%, 750ml, 유통기한:60일. 6,000원

◇연천율무동동주·무감미료 연천율무 생동동주, 연천율무, 밑술 덧술 이양주, Alc.:14%, 750ml, 유통기한:60일. 14,000원

◇연천연주(戀酒), 프리미엄 생약주, 밑술 덧술 이양주, Alc.:12%, 500ml, 유통기한 : 180일. 15,000원

◇연천우주(友酒), 프리미엄 증류주, Alc.:52%(60,000원), 38%(24,000원), 22%(8,500원, 360ml, 상압식 알람빅 증류, 증류주 숙성 기술 적용

◇체험 프로그램:양조장투어, 전통술 빚기, 술거르기, 누룩 빚기, 기념주 만들기, 맞춤술빚기, 창작술빚기, 막걸리학교 현장수업 등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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