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의 술과 함께 하는 노동과 전원생활

박정근 칼럼

도연명의 술과 함께 하는 노동과 전원생활

박정근 (문학박사, 윌더니스문학 발행인, 소설가, 극작가, 시인)

 

도연명은 벼슬을 그만 두고 낙향한 후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건강한 노동을 즐겼다. 흔히 농부들이 일하듯이 그도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하지만 그는 노동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노동하며 틈틈이 책읽기를 했다. 노동과 학문이 유리되지 않고 삶의 일체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도연명의 삶은 그야말로 시인다운 노동을 즐겼던 것이다.

혹자는 책을 즐기는 농부는 농촌에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사실 농촌에서 노동을 하는데 무슨 지적 생활이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가 읽었던 책은 바로 산해경이다. 산해경은 중국 선진 시대에 저술된 신화집이면서 지리서이다. 도연명이 이 책을 읽은 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도가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읽었으리라고 추정된다.

또한 그가 단순한 농부가 아닌 전원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는 자연인으로서 노동을 하고 싶은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도연명이 <산해경을 읽으며(讀山海經)>란 시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런 노동을 하면서 봄 술을 시시때때로 즐겼다. 그것도 노동에 지쳐서 술을 마시기보다 봄을 즐기기 위해 음주를 하였다.

그는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는 힘든 일을 마무리 한 후에는 여유 있게 살아가고자 한다. 즉 노동을 위한 노동이 아니라 전원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싶어 했다. 그 즐거움의 원천은 자연과 어우러진 독서였다. 독서를 하다가 다시 봄 술을 마시고 일을 함으로써 노동과 독서 그리고 술이 어우러지는 삶이었다. 시인은 술 한 잔 걸치고 흥에 젖어 다시 채소를 따는 노동을 하는 장면을 시속에 재현했다.

밭을 갈고 씨도 뿌려놓은 후

틈을 내서 돌아와 책을 읽으리

궁벽한 골목으로 수레 길과 떨어져

번번이 사람들의 수레가 돌아가누나

즐거이 봄 술을 따라 마시며

텃밭에서 채소를 따리라

도연명의 삶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전원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작시 <사계절의 운행(時運)>에서 도가적 삶을 재현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가 되어가는 장면을 시적으로 그리고 있다. 시인은 농사일을 마친 후 너른 나루터에서 맑은 물로 텁텁한 입을 가신다, 그리고 밭일을 하면서 흙투성이가 된 발을 물속에 담그고 씻는다.

몸을 정결하게 한 시인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본다. 이 순간 시인의 마음은 그저 전원이 주는 쾌락을 무심하게 즐길 뿐이다. 아마도 무념무상의 마음속에 전원의 아름다운 풍경이 조용하게 펼쳐지는 순간이리라. 이런 상태가 무릉도원이라는 낙원의 이미지가 아닐까. 그의 시는 역동적인 쾌락이 아닌 평화의 이미지를 노래하는 것이다.

너르고 너른 물가 나루터에서

입을 맑은 물로 가시고 발을 씻으며

멀리 펼쳐지는 풍경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노라

음주시인 도연명은 <사계절의 운행(時運)>에서 도가적 구원을 마지막 4행에서 밝히고 있다. 전원이 자연적 미학에 도취한 인간은 다른 인간과도 쉽게 어우러진다. 평화로운 전원처럼 마음을 비운 도가적 인간은 이기적 욕심을 모두 내려놓기에 저절로 삶에 만족한다. 시인은 이런 행복감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는 그만의 전략을 드러낸다.

 

그것은 한 잔의 술이다. 한 잔의 술은 시인을 취하게 만들고 즐겁게 해준다고 노래한다. “다른 이들도 말하는데/마음이 통하면 쉽게 자족하리라/한 잔 술을 마시니/취하여 절로 즐겁구나” 과연 이시는 음주 시인 도연명만의 시라고 느껴진다.

도연명은 전원생활을 하면서 무념무상의 도가적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저 정적인 상태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술 한 잔으로 동적인 역동성을 느끼려고 했다. 도연명은 정적인 평화와 동적인 도취가 순환적으로 이어가면서 음주시인의 정체성을 구현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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