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이 술, 뭘로 만들지?

권녕하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

이 술, 뭘로 만들지?

 

“이 술, 뭘로 만들지?” 술자리에서 던져진 말이다. 막걸리는 종류도 많이 늘었고, 맛만큼이나 취향도 가지각색으로 발전(?)해서, 술집 메뉴판에 여분의 공간이 모자랄 지경이 됐다. 그야말로 막걸리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애주가의 관심을 끄는데 까지는 꽤 성공했다. 그런데 막걸리 이상으로 사랑을 받는 소주는 막상 선택의 폭이 여전히 좁다. 게다가 막걸리에 관한 한 원재료부터 생산자, 심지어 유통라인까지 술자리 안줏감(?)으로 풍성하게 올라오는데, 소주가 언급되자 짧은 순간! 술자리가 조용해졌다. 분위기도 바꿀 겸,

“뭘로 만들긴?∼ 다 물로 만들지!” 거참! 누가 아니랬나? 물에 섞은 원재료가 무엇인지, 우리 몸에는 얼마나 좋고 또 나쁜지 그런 것 등을 물어본 말인데, 그런 줄 다들 잘 알면서도 대답이 시원찮다.

“그래도, 고기 안주에는 쏘주가 최고야!” 그랬다. 육류에는 쏘주가 최고인줄 다들 공감한다며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그럼, 더 독한 양주에는 무슨 안주가 좋아?” 소싯적에 서부영화 안 본 사람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담배 한 대 꼬나물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로 ‘쿼터 달라’ 한 개 달랑 꺼내들더니, 그걸 떼구루루 바텐더에게 굴려 주면, 두꺼비 같은 손바닥으로 동전을 탁 눌러 잡고 나서, 쏘주 잔보다 쪼금 커 보이는 유리잔에 7부 정도 따라서 건네준다. 그 때 ‘크린트 이스트우드’가 안주 주문하는 걸 본 적도 없고, 안주 먹는 걸 본 적도 없다.

쏘주하고 양주하고 뭐가 다르기에, 쏘주는 안주를 시켜야 되고, 양주는 안주 없이 마셔도 괜찮을까. 쏘주는 속 버릴까봐 안주를 시키고 양주는 아무리 독해도 속 버릴 일 없어서 안주가 필요 없는 것이었을까.

여기까지만 갔어도 그날 술자리는 그냥저냥 괜찮았을 터인데, 미전향 장기수가 쓴 손 글씨를 상표로 쓰는 쏘주로 화제가 넘어갔다. 지금은 사라진 술 이름! 경월로부터 시작해 강원도 산골짝에서 군 생활 했던 무용담(?)까지 뒤범벅이 되어갈 때쯤 해서 툭하니 통일 문제, 사상 문제, 전교조 문제, 민노총 문제, 청년실업 문제 그래서 태극기 부대, 불법탄핵 등등 너나없이 한 잔 술에 애국자로 돌변하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봐줄만 했는데, 기어코 세월호로 술안주가 넘어가고 말았다. “수학여행은 학생들을 대량 수송해야 하는데, 두 학교가 일정이 겹친 바람에, 한 학교는 ‘갈 때 세월호, 올 때 비행기’, 일정이 겹쳤던 또 다른 학교는 ‘갈 때 비행기, 올 때 세월호’로 제비뽑기 하듯 결정됐었다는 것이다. 이런! 개똥같은 술안주가!

그래서 술안주 방향을 한 번 더 틀기로 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가는 태극기부대 노인네들 직업이 뭘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날 술자리는 부실한(?) 술안주로 인해서, 찝찔한 여운만 남기고, 2차도 없이 뿔뿔이 헤어지고 말았다.

“용인, 분당, 강남, 대치동 사는 노인네들이 태극기 들고 나가는 거 봤어? 아파트 경비원, 주차장 관리인 하는 노인네가 광화문에 나가는 거 봤어? 해외여행가고 골프 치러 다니기도 바쁜데, 웬 태극기부대? 늙었다고 다 똑같은 노인인줄 알아? 놀고먹기도 바쁜 노인들과 먹고 살기 바쁜 노인들은 광화문에 가고 싶어도 못 가! 시간이 없어!” 그랬다.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나가는 노인들은 그보다 못하거나 차라리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 노인이거나 독립군 같은 열혈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거나 셋 중의 하나였는데, 이 술안주에는 셰익스피어보다도 더 슬픈 비극적인 결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노인네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 산업현장에서 노동조합원이었던 사람들이야!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단위노동조합원들로써 월급날 월급 밀리지 않고 받으려면, 회사가 잘 되라고 야근을 밥 먹듯이 했었고, 그래야 애들 학비 주고 옷 사 입히고, 명절이면 기차표 예매하느라 서울역에서 밤새고, 줄 서서 입석이라도 타고, 그렇게 생고생하며 고향에 가면, 며칠간이지만 초등학교 동창들과 학교 마당에서 만나 술 한 잔 거나하게 마시며, 객지에서의 고생담을 성공담으로 말하던 사람들이었어!” 그 노인네들 대부분이 생활고에 찌들어 살아왔던, 그야말로 진정한 노동자 계급이었다는 결말이었다. 그들은 ‘이 술 뭘로 만들지?’ 따위로 행복한 걱정 할 겨를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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