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녕하 칼럼
거시기를 남이 알게 하지마라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광풍을 만날 팔자를 타고났다면 그야말로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사람 팔자에 ‘광풍’ 만날 사주나 벼락 맞을 사주나 아크릴 간판에 머리 깨져 죽을 사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술사(術士)의 입담에 따라 자동차 사고로 죽는 사람의 사주가 예스런 말로 호환(虎患)이란 말이 그에 필적한다고 들은 적은 있겠다.
하기야 이름난 점쟁이도 제 팔자는 못 본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점쟁이들이, 동업자들끼리 손님 것을 봐주듯 서로의 사주를 봐주면 될 것 아니겠는가! 이 걸 광풍이 불어온 날 퍼뜩 깨닫는다. 대로변에 손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설치해 놓은 점집 입간판이 그만 광풍에 날아간 것이다.
태풍의 이름이 하필이면 ‘링링’이라서 울컥 역겨움이 치밀어 오른다. 압록 강변 초산까지 진격한 국군이,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두었던 대한민국이,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장진호 전투가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다. 혹한의 강추위에 뇌수가 순두부처럼 얼어버려 죽어나간 수많은 국군장병들, 이어서 목숨만 살려주면 무슨 짓이라도 다하겠다고 애걸복걸하는 아녀자를 밤새도록 짓밟아대는 장면이 연상되며 분기가 탱천한다.
천기누설이라는 말이 있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가 걸린 국제적 경쟁에서 국가와 민족의 명운이 걸린 정보(情報)를 적에게 혹은 잠재적인 적에게 또는 경쟁국가에 누설하는 행위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반역행위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짓을 천연덕스럽게 유포하는 사람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시력이 별로인 사람의 눈에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한 두 명 정도라면 간첩이겠구나 하겠지만, 이건 사뭇 떼거리다.
광풍이 몰려오던 날, 온전치 못한 집에서 살려니 밖에 나오면 집 걱정, 집에 들어가면 바깥세상이 불안한 바로 그 날, 안절부절 왔다 갔다 하는데 기어이 서울 하늘에 까지 광풍이 불어 닥쳤다. 높은 빌딩 사이로 형성된 바람 골에 홍수 물 빠지듯 밀고 끌고 쓸어내리는 광풍이 두 다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기가 막히게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을 자라처럼 끌어 댕겨 넣고 허리는 납작 접고 붙잡을 것 어디 없나 하고 허우적댄다. 폭격을 당하면 이보다 더할까. 대전차포가 터지면 몸뚱어리가 날려갈까. 지뢰를 밟으면 부웅 뜰까. 유탄이 스치면 귓전이 멍해지며 머리칼이 곤두설까.
그래서, 나라나 사람이나 광풍이 한번 쯤 불어와 봐야 팔자를 알 수 있겠다. 그냥 확 쓸어버리는 데는 광풍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 같다. 이걸 직설적으로 말하기에는 정국이 너무 수상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속에 품은 거시기를 남이 알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숨을 몰아쉬면서, 숨이라도 쉴 수 있음에 우선 고마워해야겠다. 숨이란 게, 못 쉬면 수분 안에 죽는다. 인간은 참 약한 동물이다. 참 딱한 동물이고 참 어처구니없다. 그래서 그저 눈만 빠끔거려야 할지도 모른다. 한 순간, 광풍에 날려가기 전에.
권녕하
시인, 문화평론가 <한강문학>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