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전통주 연구기관의 협력이 필요한 때다

전통방식대로 양조하는 자는 과학적 접근 약해
과학방식으로 양조하는 자는 전통주 오해 소지
서로 협력해 고문헌 속 술들 만들고 분석해야

셀 수 없이 많았던 우리의 전통주와 가양주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 같은 사실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불기 시작한 것은 ‘88올림픽’ 전후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이때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돼 왔거나 한 집안의 가양주로 내려오는 전통주들을 ‘전통주 명인(名人)’라는 이름으로 국가에서 인정하고, 또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 우리 전통주나 가양주의 수는 정말 많았지만, 현재 우리가 마시고 있는 전통주들만 볼 때 지금의 수는 매우 적다. 우리에겐 지금껏 알려진 전통주들 외에도 고문헌에 기록돼 있는 갖가지 종류의 술이 무수히 많다. 그러한 고문헌에는 술을 만들기 위한 재료나 양조법이 적혀있고, 단순히 술 이름만 기록돼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고문헌에 적혀 있어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지 못했고, 당연히 술맛을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술들을 재현해내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현재 정부에선 이 같이 잊힌 술의 재현작업을 연구기관에 의뢰해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에서 전문적으로 전통주를 연구하는 사람들 외에도 개인적으로 우리술이 좋아 연구하고 고문헌을 읽어가며 거기에 적힌 방법대로 술을 재현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 나아가 전통주를 빚는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연구자 입장에선 그런 사람들은 술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하지 않았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통주를 빚는 사람들은 나름의 철학으로 술을 만들며, 그러한 술을 통해서 사람들과 심도 깊은 얘기를 한다.
전통방식을 통해 술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만든 술에 대한 과학적인 결과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매우 적다. 술을 만들며 발효일수에 따른 변화를 눈으로 보고 기록하고는 있지만 그 결과를 과학적(알코올, 산도, 당도 등)으로 확인하는 사람들은 적다. 또 과학적으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산업화를 이유로 전통방식으로 빚는 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이지만 전통방식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전통주를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오히려 이러한 때 전통적인 방식으로 술을 만드는 사람들과 과학적인 실험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전통 술을 만드는 사람들은 고문헌에 나와 있는 다양한 술을 만들고 연구자들은 그 술들의 분석을 통해, 새롭게 전통주를 이해하고 과학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는 일들이 이뤄졌으면 한다. 연구자들은 특히 고문헌의 재현을 통해 다양한 미생물 자원이나 전통주를 이용, 현대적인 술로 개발하거나 접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주들은 그 가짓수가 많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수치(數値)화 할 순 없지만, 이 같은 시도를 통해 우리 전통주가 단순히 구전(口傳)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좀 더 과학적인 술이라는 것을 밝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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