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소주 반병과 한 병 差異

지인 중 한 사람이 술집에 가면 소주를 반병만 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 고인이 됐지만 둘이 가든 셋이 가든 항상 소주를 반병만 주문하곤 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궁금하다. 소주 반병을 주문할 때면 술집 주인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당연히 술집 주인은 눈살 찌푸리기 십상이었지만 단골 술집에선 으레 그러려니 하고 소주 반병을 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반병씩 시켜 마신 술이 술자리가 파할 정도가 됐을 때는 한 병씩 시켜 마실 때보다 더 많이 마셨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감질나게 마시면 심리적으로 더 마시게 되는 까닭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느 토크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에게 사회자가 물었다. “주량은 얼마나 되시나요?” 그러자 그 연예인은 “소주로 반병 정도 됩니다”라고 답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가나 유명인사도 주량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소주 반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한 병이 아닌 두서너 병을 마시면서도 반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사회풍조 때문은 아닐까.
설사 주량이 소주 반병인 사람이라도 술집에서 소주 반병을 주문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랬다가는 개망신 당하기 십상이니까.
이건 필자의 젊었을 적 경험담인데 요즘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예컨대 어쩔 수 없이 벌주를 사야 하거나 주머니는 가벼운데 술값을 내야 할 경우 이런 방법을 써보면 어떨까.
5명이 술집에 갔다고 치자. 삼겹살집이라면 처음부터 5인분이 아닌 한 8인분 정도 시키고(먹다보면 그 이상 먹게 되니까) 소주도 5병을 시켜서 각자 따라 마시게 한다. 결과는 고기가 남고 술도 다 마시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 쩨쩨하다는 소리도 안 듣고 술 잘 샀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예를 들어 처음에 소주 한두 병만 시켰더라면 모르긴 해도 열댓 병은 됐을 것인데, 결국 다섯 병으로 끝났다면 도랑치고 가재 잡은 꼴이다. 이는 많은 고기와 술병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기 때문 아니겠는가.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소비된 소주가 30억병에 이르러 성인 1명당 평균 70병 가까운 소주를 마셨고, 맥주는 이보다 많은 105병을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이 이 정도니 주당들은 몇 배 더 마셨을 것이 분명하다.
주당들이 귀를 곧추세우고 들을만한 뉴스거리가 있다. ‘술 안마시면 일찍 죽는다’는 학술논문이다.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텍사스 주립대학(오스틴) 연구팀은 최근 ‘알코올중독:임상실험연구’ 학회보에 논문을 발표했는데, 지난 20년 동안 18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폭음하는 사람이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주당들에게는 반가운(?) 뉴스 아니겠는가.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은 55~65세 사이의 노장년층이다. 음주와 수명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하루 1~3잔 마시는 적당량의 음주자(moderate drinker)와 3잔 이상을 즐기는 폭음자(heavy drinker) 그룹의 사망확률이 비음주자(non-drinker) 그룹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비음주자는 20년 동안 69%가 사망했지만 폭음자는 59%, 그리고 적당량의 음주자는 41%가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폭음이 간과 심장을 해치고 구강암을 유발하며 가정의 붕괴를 가져온다는 기존의 학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를 주도했던 할러헌 교수는 ‘건강을 위해 한 잔(drink to your health)’이라는 속설이 이번 연구결과 적중했다고 지적했다. 다시 봐도 주당들의 귀가 솔깃한 논문이 아닐 수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 술은 안 마시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비주류(非酒流)들은 이 논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공자(孔子)는 술을 마시되 양을 미리 정하지 않는다고 했다지만 연말이라고 마음껏 퍼마시면 다음날 속 쓰리고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연말이다. 술자리가 그만큼 많아지는 때다. 술도 음식이기 때문에 과음은 삼가는 것이 최상 책이다. 연말 회식 때 술을 적게 마시는 요령 중 한 가지가 있다. 소주를 맥주컵에 따라 놓고 “난 이렇게 마시겠다”고 하면 누가 권하지 못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맥주컵이라야 소주 석 잔에 지나지 않는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