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한라봉’․‘조릿대’ 막걸리


기억을 더듬어보니 2009년이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그해 10월 우리나라 전통주 수십 종을 모아놓고 품평회를 열었다. 한백㈜의 과실주 ‘귤한잔’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익히 들어봤던 술들이 즐비했고 당시 ‘열풍’에 가까웠던 막걸리나 고급술이라는 약주․청주도 아닌 볼링 핀 모양의 술이 왜 아직도 잊히지 않을까. 첫인상은 그래서 무섭다. 비슷한 맛과 디자인에 친숙한 과일맛과 강렬한 주황색은 나도 모르는 새 눈과 입과 머리가 지금껏 기억하고 있었던 듯싶다.

 

2002년 농업회사법인으로 출발한 한백㈜(당시 한백당)는 다음 해 첫 생산품인 복분자주를 세상에 선보였다. 올해로 10년째인 ‘장수 제품’이다. 이 술은 현재 ‘한백복분자주’와 ‘제주복분자주’ 두 종류다.

2007년 9월엔 복분자와인 ‘레드 비크(Red Beak)’를 내고 이를 알리는데 집중했다. 지금도 제주의 중요 행사들에선 이 와인을 자주 볼 수 있다. 2010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선 과실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레드 비크(부리)는 제주의 상징동물인 제주큰오색딱다구리의 부리를 상징한다.

2009년 4월엔 제주 감귤과 천연암반수를 원료로 6개월간 발효․숙성시켜 만든 과실주 ‘귤한잔’을 내놨다. 신세대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했지만 13%의 알코올 도수가 부담스럽지 않고, 비교적 신맛과 단맛의 조화가 잘 이뤄진다는 평을 얻었다.

이 회사의 제품군(群)에는 막걸리도 포함돼 있다. ‘한라봉막걸리’(살균)와 ‘조릿대막걸리’(생막걸리)가 그것. 모두 작년에 출시됐다. 이 회사 강동협(姜東協․41) 대표는 “시장 진출이 생각보다 많이 늦어졌지만, 기존 업체들과 경쟁구도로 갈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음엔 감귤막걸리를 구상했어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육지(다른 지방) 쪽의 한 업체에서 만든 감귤막걸리가 있더라고요. 제주도의 업체들은 감귤막걸리를 만들지 않아요. 제 생각엔 그래도 제주의 주류회사가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봐요.”

강 대표는 감귤로만 어필하기엔 좀 약한 듯해 여기에 한라봉을 소량 넣어 한라봉막걸리를 만들어냈다. 조릿대막걸리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조릿대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다 나온 술이다. 조릿대는 한라산에서 서식하는 작은 대나무다. 산 위쪽에서 자라던 이 식물은 번식력이 강해 아래쪽까지 내려왔는데,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해 골칫거리가 됐다. 이를 제주조릿대 지역연고산업육성사업단과 공동 개발해 선보였다.

“원래 제주의 특산물을 활용한 특색 있는 막걸리를 구상했었어요. 그래서 한라봉, 조릿대, 백련초를 선택했죠. 이들이 모이면 3색(色) 막걸리예요. 노랗고 약한 초록에 빨간색까지.”

한라봉막걸리는 제주롯데마트에 들어가 있다. 입점(入店) 과정이 재밌다. 어느 날 마트 담당자에게서 주문 전화가 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걸 (마트에) 넣어도 될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처음엔 한 박스. 생각보다 빨리 나가자 주문량이 조금씩 늘었다. 품절 속도가 빨라지고 한 달쯤 되자 “저희 마트에 입점하시라”는 요청을 받았다.

제주이마트에는 현재 한라봉막걸리와 조릿대막걸리가 함께 진열돼 있다.

“우린 장난치지 않아요. 복분자로 술을 만들면 복분자만 100% 넣고, 감귤도 진짜 제주산(産)만 써요. 거짓은 용납하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가치로 보죠. 그래서 술을 정통으로 지켜나가는 업체가 힘들어요.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정말 맛있는 우리술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죠. 정부도 술 정책을 잘 펴서 올바른 기업을 보듬어주고 독려해줘야 하죠.”

돌아가는 길, 조릿대막걸리 한 박스를 선물로 받았다. 약 500㎞의 거리를 들고 와, 틈나는 대로 마셨더니 쉽게 잊힐 것 같지 않다.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 703 ☎064·772·5891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