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술타령과 천일주

평안도 다리굿 중에 나오는 술타령이다. 그 가사 내용이 흥미롭다.

 

아따 여봐라 말 듣거라/ 술이나 한 잔 빚어보자

때는 마참 어느 때뇨/ 춘절하절은 다 지나가고

가을 절기가 당도하니/ 앞산 뒷산에 단풍이 들고

때가 좋으니 술 빚어라

오곡백과로 누룩을 잡아/ 감초 초약으로 덧칠을 하고

한 달을 빚었다 일삭주요/ 두 달을 빚었다 이삭주

석 달을 빚었다 삼색주/ 석 달 열흘에 백일주니

이 아니 두나 좋을 소냐

마고 선녀에 천일주/ 늙지나 말자고 불로주요

죽지나 말자고 불사주/ 달이나 밝다고 월령주요

날이나 맑다고 일광주/ 이백의 기경 포도주요

뚝 떨어졌다고 낙화주/ 삼월 하루 두견주요

이 아니 두나 좋을소냐

이 술 한 잔을 잡수시면/ 없는 자손은 생겨를 주고

있는 자손은 수명 장수/ 재수나 소망도 생겨를 주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네

 

평안도 다리 굿은 죽은 이를 극락으로 보내기 위한 넋굿이다. 다리 굿이 진행되는 굿판을 보면, 죽은 이의 넋을 보내기 위해 다릿발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무명을 굿당 밖에 여러 가닥 걸어 놓는다. 서울의 진오기굿에 비교될 수 있는 규모가 큰 굿인데, 더러 다리 굿을 하면 장수한다고 해서 집안 어른이 살아있을 때에 하기도 한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자는 말이 있는데, 굿판에 가면 떡만이 아니고 술도 얻어먹을 수 있다. 굿을 할 때나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영혼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여긴 것 같다. 제사상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것은 향연기와 술잔이다. 메나 국이 젓가락이나 주저로 한번 건드려지기는 하지만, 술은 절을 올릴 때마다 새로 부어진다. 성묘를 갈 때도 술은 반드시 챙겨간다. 향 연기는 하늘로 올라가 혼을 불러오지만, 술은 땅으로 스며들어 백을 불러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산소 주변에 술을 뿌리거나, 땅과 나무를 상징하는 모사그릇에 술을 따르는 것은, 술로써 백을 초대하는 행위였다. 굿이나 제사에서 술이 필요한 것은, 신을 초대하는 의식이었던 셈이다.

다리 굿의 술타령을 보면 가을 절기가 당도하니 앞산 뒷산에 단풍이 들고 때가 좋으니 술 빚으라고 했다. 가을이 술빚기 좋은 때라고 했는데, 이는 추수를 마치고 난 뒤라 곡식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또한 때가 좋으니라는 말 속에는 술빚기 좋은 온도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여름이면 온도가 높아 술이 쉽게 시고 상하지만, 서늘한 가을이면 술빚기에 맞춤한 온도다.

이 술타령에서 흥미로운 것은 ‘오곡백과로 누룩을 잡는다’는 대목이다. 전통 술을 빚으려면 누룩이 반드시 필요하다. 누룩은 발효제인데, 쌀 속에 있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만들고, 당을 알코올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통 누룩은 통밀을 빻아서 만드는데, 여기서는 오곡백과로 잡는다고 했다. 잡는다는 말은 일정한 형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누룩은 때로 여뀌 잎을 따서 녹주 즙과 밀가루로 빚는 것도 있고, 찹쌀을 섞어서 빚는 누룩도 있고, 보리로 만든 누룩도 있다. 다양한 곡물과 잡곡, 약재를 사용하는 빚기도 하는데 이를 오곡백과로 누룩을 잡는다고 표현한 것 같다.

다리 굿의 술타령에는 술 이름이 일삭주, 이삭주, 삼삭주, 백일주, 천일주, 불로주, 불사주, 월령주, 일광주, 포도주, 낙화주, 두견주 해서 12가지나 나온다. 이 타령에 등장하는 술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술로 두견주, 불로주, 백일주가 있다. 두견주는 충남 당진 면천에서, 불로주는 포항에서, 백일주는 공주와 완주에서 빚어지고 있다.

이중 백일주는 우리 술에 대한 찬사라고 할 수 있다. 고작 백일가지고 무슨 명품이냐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는 우리 술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보통 술은 10일 정도면 발효가 끝마쳐진다. 포도와인도 10일이 지나면 포도건더기를 걸러내고 맑은 술의 형태로 숙성시킨다. 그런데 곡물로 빚은 백일주는 발효시키고 숙성시키는 기간이 100일이 걸린다.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키고, 중간에 덧술 하여 100일이 지난 후라야 술을 거른다. 이때 발효 온도가 높으면 묵은 맛이 나기도 하지만, 술이 묵직하고 깊은 맛이 돌고, 누룩내도 많이 가셔져 있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발효주는 백일에 걸쳐서 빚는 백일주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면천두견주나 경주교동법주도 백일주이고, 공주의 계룡백일주와 완주의 송화백일주는 제품명에 백일주가 들어있다.

다리 굿중에 가장 매력적인 술은 마고선녀의 천일주를 꼽을 수 있다. 마고선녀는 중국 고대 신화 속에 신선이다. 스무 살 처녀로 보이는데 앞머리를 쪽을 지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허리까지 드리우고, 화려한 빛이 나는 옷을 입고 다닌다. 마고 선녀는 아름다움과 장수의 상징인데, 이와 같은 계보라 할 수 있는 마고할미 전설이 지리산과 설악산에 전해온다. 천일주는 담근 지 천일 만에 완성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고, 취한 뒤에 천일 만에 깨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 진나라 때 장화(張華)가 쓴〈박물지(博物志)〉에 소개되고 있는 일화로, 중산 땅에 살았던 술꾼 유현석이 하루는 천일주를 구하게 됐는데, 술집 주인이 그 술을 마시는 법을 깜빡 잊고 전해주지 않았다. 유현석은 집으로 돌아와 천일주를 취하도록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슬피 울며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천일주를 빚은 술집 주인이 뒤늦게 술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을 깨닫고 유현석의 집을 찾아가보니, 그 부인이 말하길 3년 전에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다. 술집 주인은 탄식하며 유현석의 부인에게 천일주를 설명해주고 급히 무덤을 파고 관을 열어보았더니, 그때서야 유현석이 눈을 뜨고 관속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천일주는 연세대학 교본 <규곤요람>, <요록>, <음식보>, <유원총보>에 소개되어 있는데 마시는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천일주가 익으면, 술을 거르는 용수를 박아 첫술을 떠내고 떠낸 만큼 물을 부어서 두 번째 술을 떠낸다. 다시 첫술을 뜨기 전만큼 물을 붓고 오래 두었다가 세 번째 술을 떠낸다. 세 번째 술이 싱거우면 첫술과 섞어 찬 곳에 두고 늦봄까지 마신다고 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물을 부어 술을 떠낸 것으로 보아, 술을 빚을 때 물을 적게 넣었고, 술맛도 독하고 진했음을 알 수 있다.

평안도 다리 굿중의 술타령은 술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술 마시면 명도 길어지고 재수도 좋아진다는 덕담도 늘어놓고 있다. 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술을 부르는 노래이자, 술맛 나는 노래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