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고품격 와인 이야기

믿기지 않겠지만 이탈리아 와인의 역사는 선사시대였던 약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원시인들은 야생 포도를 밟아서 과일즙을 짜냈는데, 그것이 발효되면서 와인이 탄생됐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기 시작한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외노트리아(oenotria)’, 즉 ‘와인의 땅’이라고 명명했을 정도로 고대 이탈리아 반도에는 이미 와인문화가 정착해 있었다. 또 이탈리아 중부의 고산지역에 살았던 에트루스칸들의 와인 양조기술이 매우 섬세하고 세련됐다는 것을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증명하고 있다. 고대 로마인들 사이에선 술의 신인 바커스(Bacchus)를 숭배했고, 와인은 로마의 주요 상품으로 유럽 전역에 수출됐다. 로마인들의 발달된 포도재배기술과 양조(釀造)기술은 17~18세기의 과학적인 근대 재배기술과 양조기술에 필적했다.

와인 주조법과 숙성법의 발달, 또 코르크 마개를 이용한 포장법의 발달로 19세기 이탈리아 와인산업은 크게 활성화됐으며,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키안티(Chianti), 바롤로(Barolo), 마르살라(Marsala) 등의 와인제조업체들이 국경을 넘어 멀리 알려지게 되면서 이탈리아산 와인들의 맛과 품질이 최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네비올로(nebbiolo)와 산지오베세(sangiovese) 품종으로 만든 피에몬테(Piedmontese)와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거품이 일지 않는 스타일과 발포성 스타일, 담백한 맛과 달콤한 맛에 이르기까지 모든 와인 종류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때 이탈리아인들은 자국의 포도품종과 더불어 카베르네(carbernet), 메를로(merlot), 피노(pinot) 같은 외국 품종의 재배도 시작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이탈리아의 다양한 기후조건이 여러 종류의 포도덩굴 재배에 알맞기 때문에, 외국 포도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유럽과 북미에서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19세기 말 ‘필락세라(phylloxera)’라는 포도종에 치명적인 뿌리진디가 전 유럽을 강타했다. 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수많은 포도농장이 황폐화됐다. 이런 상황에 대처해 농가들은 자국과 외국 포도종보다 더욱 생산적인 신(新)포도종 개발에 앞장서게 됐다. 그 후 와인업계에서 이윤을 남기려면 양으로 승부를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연중 양지바른 날이 많다는 이점을 이용해 포도 생산량을 대량으로 늘리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전쟁과 수난의 시대를 지내면서 비교적 값싼 와인의 조달자로 알려지게 됐다. 그 같이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와인업체들은 고객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특이한 모양과 크기의 술병 만들기에만 주력했고, 정작 이탈리아 와인 이미지 개선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와인의 품질 향상에 힘써왔던 와인업자들은 고급 와인 생산을 위한 제조․유통법 조성에 더욱 힘썼다. 그러나 겨우 1960년대 들어 ‘Denominazione d’Origine’이라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높은 수준의 믿을 수 있는 와인 생산이 활발해졌다. 이때를 소위 ‘이탈리아 와인산업의 신 르네상스’라고 일컫는다.

산 지미냐노의 베르나치아가 1966년 처음으로 DOC 등급을 받은 이래로, 오늘날 300개 넘는 와인업체가 DOC 등급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 박물관’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이탈리아는 최근의 와인 생산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토종 포도부터 외국 포도까지 사실상 전 세계 모든 종류의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보통 이탈리아는 오래 숙성시킨 레드와인으로 유명하지만, 요즘은 수확하자마자 몇 달 만에 마시는 비니 노벨리(Vini Novelli)도 유행을 타면서 널리 보급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주요 화이트와인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화이트와인은 가볍고 달콤한 것에서부터 떡갈나무통에 담아 발효시킨 깊이 있는 맛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중 프리잔떼(frizzante) 와인과 진한 발포성 와인은 톡 쏘는 맛을 위해 샤르마(charmat)라고 하는 봉인된 탱크나 병에 넣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발효시켜서 만든다.

오늘날 이탈리아는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고품격 와인 생산지다. 이탈리아 와인업체들도 고급 와인의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 개발과 품질 향상에 힘을 쓰고 있다. 더불어 이탈리아 양조장들은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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