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새빨간 거짓말 하는 시절

김원하의 취중진담

새빨간 거짓말 하는 시절

 

단언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거짓말을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루에 200개가 넘는 거짓말을 한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거짓말일지 모르지만….

국어사전에는 ‘거짓말’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이라고 했다. 예전엔 ‘가짓말/가짓부렁’이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 말은 ‘거짓말’의 비표준어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둘 다 표준어에 든다.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을까? 이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새빨간 거짓말, 하얀 거짓말, 새카만 거짓말, 핑크빛 거짓말, 노란 거짓말, 무지갯빛 거짓말 등 다양한 색깔로 거짓말이 칠해지고 있다.

특히 ‘새빨간 거짓말’은 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한다. 요즘 정치인들이 내 뱉는 말 중에는 이 처럼 새빨간 거짓말이 많은 것 같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당내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던 ‘이명박 다스 실소유주’ 의혹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다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 것이고, 관련된 횡령 및 뇌물수수도 모두 그가 주도했다”는 결론을 내리자 이 전 대통령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을 외쳤다. 이 전 대통령이 거짓말에 색깔을 입혔다.

정치인들뿐이랴. 남자가 여자에게 프러포즈하면서 “나와 결혼 해주면 평생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주겠다.”고 하는 말, 진실일까?

거짓말은 국가가 국민에게 회사가 직원들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때론 부모에게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 중 부부간의 거짓말이 제일 많을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도 속고 사는 것이 부부 아니겠는가.

북한정권 창건 때부터 김일성을 위시해서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 까지 ‘하얀 이팝에 고깃국 먹고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도록 해주겠다’는 말이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의 원흉이다.

부동산 법을 고치면 집값이 안정되고 세사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현 정권 역시 국민들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 사장이 직원들을 모아 놓고 “사장에 대한 불만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세요,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 주겠습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 그랬다간 회사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다. 사장이 새카만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실수만 용서해주시면 다시는 실수 안 하겠습니다.”이런 직원의 다짐도 위기를 넘기려는 거짓말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3대 거짓말이 있다. 첫 번째가 노인네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거고, 두 번째가 노처녀가 나 시집안가, 세 번째가 장사꾼이 이거 밑지고 판다거나 원가로 준다는 것.

그런데 최근 이 3대 거짓말 가운데 두 번째 ‘나 시집 안 간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참말인 경우가 많아 부모님 애간장을 녹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노인들이 늙으면 죽어야지 하면서도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몸에 좋다는 거 챙기고, 병원문턱 닳도록 다닌다. 이는 노인들의 새카만 거짓말인가.

중국집 사장도 상당수 거짓말쟁이다. 주문한 음식이 오지 않아 전화를 걸면 “방금 출발했습니다”라고 말하기 일쑤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30분이 훨씬 넘어도 도착 안 한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공직자들이 참 많다. 금방 탈로가 날 것을 알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장관들, 국회의원들이 참 많다. 거짓말을 잘해야 출세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옛날 같았으면 경을 쳐도 몇 번을 쳤을 것이다.

남편들이 부인에게 거짓말 하는 절기가 다가오고 있다. “내년부터 술(또는 담배)을 끊겠다.” “살빼기 위해 운동도 하겠다.” 등등 모두가 거짓말이 아니길 바란다.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윤대현 교수는 ‘내 손녀 예쁘지’란 친구의 질문에 내 눈엔 아니더라도 너무 예쁘다고 맞장구치는 것은 선의의 하얀 거짓말이라고 했다.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들어 온 남편에게 “웬 술을 그렇게 마셨어요”는 부인의 타박에 남편 왈 “딱 한잔만 마셨다”는 말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세상 살다 보면 상대방을 위한 하얀 거짓말이 필요할 때도 있다.

O.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The Last Leaf)>에 나오는 담쟁이덩굴을 그린 노화가도 거짓말쟁인가. 존시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준다는 이야기여서 때론 하얀 거짓말이 인간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 때론 사탕발림 같은 거짓말이 인간의 목숨도 건질 수 있다는 데 하얀 거짓말의 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 진정 참말을 해도 상대가 믿어주지 않아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청개구리 같은 장관님들, 국회의원님들 앞으론 거짓정치 안 하실 거죠.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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