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
지난 1월 대한민국 청주-약주 열전에 이어, 2월에는 대한민국 소주 열전을 막걸리학교에서 열었다. 대한민국에서 생산되는 증류식 소주를 죄다 모아놓고 맛을 보는 자리였다. 30명 정도가 참여하여 소주를 맛보았는데, 맛보기 전부터 걱정이 컸다.
모두 40여종의 소주를 맛보는데, 과연 걸어서 나갈 수 있을까? 문밖에 엠블런스를 대기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속을 단단히 채우고 와야 하는데, 그러면 또 술 맛을 못 보는 것은 아닌가, 걱정들이 태산 같았다.
행사는 2월 25일 저녁에 열렸다. 이날은 날도 추웠지만, 서울 시청 광장에서 철도노동자들이 투쟁을 재점화하는 날이었고, 금융사무직노동자들이 구제금융이후에 처음으로 길거리에 나선 날이기도 해서, 경찰병력이 광화문 일대와 삼청동 입구에 가득찼다. 막걸리학교로 들어서는 경복궁 앞에서는 검문까지 이뤄졌다. 다른 이들은 생존권 문제로 다투는데 일삼아 술을 맛본다는 것이 어딘지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날이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생의 외줄을 타다보면, 술에게까지는 신경을 쓰기 어렵다. 술이 필요했다면, 그 상황을 망각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술을 즐긴다는 것은 세상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가장 즐기기 위해서라야 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한 시절을 살아왔다. 특히 소주를 마시면서는
소주열전의 안내문은 이렇게 띄웠다.
“2014년 2월 막걸리콘서트의 주제는 <대한민국 소주 열전>입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조되고 있는 증류방식을 취한 모든 술의 목록을 작성해보고, 이 중에서 소주라 이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술들을 한데 모아놓고 시음하고자 합니다. 혹자는 한국을 소주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2001년부터 증류주 시장에서 세계 1위 판매 기록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진로 때문에 듣는 얘기일 것입니다. 그런데 희석식 소주-2013년에 대통령령으로 희석식소주와 증류식소주의 구분을 없앴지만-의 소비 의존도가 높은 점에 대해서는 곰곰 생각해봐야 합니다. 희석식소주는 원료와 발효와 숙성 과정에서 비롯된 고유한 향기와 맛을 깡그리 배제하고 있습니다. 희석식 소주는 순도 95% 이상의 에탄올에 물을 타고, 정제하고, 감미하여 만들어낸 맛입니다. 이때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순도 95%에 이르면 원료의 특징이 지워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연료 산업이나 브랜딩한 술 산업 분야에서는 희석식소주가 큰 몫을 해낼 것입니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 그 자체가 소주를 대변하고 술을 대변하는 것은 무척 기이한 일입니다. 희석식소주를 즐긴다는 것은 술의 향기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잊고 술 속으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맞기 때문입니다. 술이 곡물로 빚은 음식이라면, 소주는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증류식 소주가 대표가 되어야 합니다.
전통소주에 뿌리를 둔 증류식 소주가 한국 사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 쌀을 쓰지 못하고 밀가루로 술을 빚도록 종용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1990년부터 다시 쌀로 술을 빚을 수 있게 된 이래로, 문배주, 이강주, 안동소주, 진도홍주가 약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번에 펼치는 대한민국 소주열전은 이 땅에서 어떤 소주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진열하여 눈으로 확인하고 혀로 음미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35종 정도의 소주를 준비할 것이고, 이 술을 통해서 소주의 진면목을 확인해보려 합니다. 소주 시음은 1차, 2차로 나눠서 진행하려고 합니다. 1차로 40도 미만의 소주를 맞보고, 2차로 40도 이상의 소주를 맛보려고 합니다. 소주를 경합시킨다면 똑같은 도수로 맞춰서 맛보아야 하지만, 경합의 자리가 아니라 기호도를 가늠해보는 자리이니 제조된 상태로 맛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음을 하고, 인기투표도 했다. 인기투표는 ‘나를 감동시킨 소주’를 꼽아달라고 했다. 대단히 주관적인 평가를 모아서, 그것에 귀기울여보고자 했다. 감동시킨 소주를 3개씩 적어내라고 했다. 감동을 준 서열은 1위 이강주, 2위 화요, 3위 송화백일주, 4위 감홍로, 죽력고, 5위 계룡백일주, 6일 명인안동소주, 허벅술이었다. 많게는 8표를 적게는 3표를 받았다.
이 순위를 받아들고 맨 먼저 떠오른 것은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의 한 대목이었다. 최남선은 위 책에서 “우리나라 술의 유명한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라고 자문하고 자답하기를 “가장 널리 퍼진 것은 평양의 감홍로니 소주에 단맛 나는 재료를 넣고 홍곡으로 발그레한 빛을 낸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전주의 이강고니 뱃물과 생강즙과 꿀을 섞어 빚은 소주입니다. 그 다음은 전라도의 죽력고니 푸른 대를 숯불 위에 얹어 뽑아낸 즙을 섞어서 곤 소주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전날에 전국적으로 유명하던 것입니다.”
최남선 선생이 이렇게 적어놓아서 알지, 현대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은 그 술들이 전날에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줄을 잘 모른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분단이 되고,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는 세월이 길어지면서 이 세 가지 술이 단절되었다가, 이강주는 1990년대 초반에, 죽력고는 2000년대 초반에, 감홍로는 2010년대 초반에 순차적으로 재현되고 복원되면서 이번 소주열전에서 참여하게 되었고, 인기 순위 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날 행사를 통해서, 최남선이 왜 이 술들을 대표술로 꼽았고, 이 술들이 유명했던가를 인기투표의 결과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의 추론은 이렇다. 이강고, 감홍로, 죽력고, 이 세 가지 술들은 빛깔이 있고, 향이 강하고, 약재가 들어가 맛이 강하고, 더불어 기능성까지 있다고 주장하는 술이다. 이강주는 배, 생강, 울금, 계피, 꿀이 들어가고, 감홍로는 용안육, 계피, 진피, 방풍, 정향, 생강, 감초, 자초가 들어가고, 죽력고에는 대나무를 훈증한 죽력이 들어간다. 모두가 증류한 뒤에 약재가 들어간다. 이름도 특이하고 술 주자를 외면하고, 고약처럼 고아낸다하여 ‘고’자를 쓰고, 이슬처럼 얻어낸다하여 ‘로’자를 쓰고 있다. 평이한 술이 아니라, 까칠하고 까다로운 술들이 인상적인 술로 꼽혔고, 그것이 세대를 뛰어넘어 최남선과 그 이전 시대에, 그리고 현대에도 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술의 좋고 나쁨을 평하려면, 어떤 기발한 술에서 찾기보다는 좀더 평이하고 보편적인 술에서 찾아내는 것이 우리술의 발전에 더 의미있다고 보여진다. 우리 술이 쌀과 누룩을 주재료로 빚었다면, 그 재료를 가지고 가장 충실하게 증류해낸 술에서 최고의 술을 꼽아주는 것이 좀더 온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특이한 약재가 들어간 술이 어쩌다 만나는 화려한 폭포와 같다면, 쌀과 누룩으로 만든 술은 우리 앞에 면면히 흘러내러온 강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쌀과 누룩만으로 만든 증류식 소주는 기실 많지 않다. 대표적인 소주로 안동소주를 꼽을 수 있다. 안동에 5개의 안동소주 제조장이 있고, 대구 금복주에서도 안동소주를 만들어내니 그 중에서 한국 전통 증류주의 성적표를 뽑아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동소주 중에서는 박재서 선생과 그 아들 박찬관 씨가 이 만드는 명인안동소주가 이번 행사에도 주목을 받았고, 또 우리술 품평회에서도 상을 잘 받는 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소주 화요가 이제 제법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상표가 되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화요는 쌀로 만든 소주로, 평평한 들판처럼 싱거워보이지만, 그 특유의 은은하고 포근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2013년에 대통령령으로 희석식소주와 증류식소주의 경계를 없애고, 이를 통틀어 소주라고 이름한다는 조처를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전통소주의 존재감이 희박한 이때에, 1919년에 평양에 처음으로 들어선 기계식 소주에서 시작된 희석식 소주가 ‘희석식’이라는 명칭을 떼고 싶었다는 정도가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필요한 것은 술을 더 구분하는 것이다. 증류방식 뿐 아니라, 재료에 따라, 숙성기간에 따라 좀더 차별화된 약속을 만들어내서, 소주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취하기 위해서 소주를 마셨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제는 즐기기 위해서 마실 수 있어야 한다. 술에 취하는 것은 일에 취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술을 즐기는 것은 일을 즐기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소주열전을 위해서 검색한 대한민국 증류식 소주 목록
지역 |
양조장 |
상품 |
알코올 |
홍천 |
옥선영농조합 |
옥선주 |
40 |
영월 |
영월더덕 영농조합법인 |
동강더덕술 |
20 30 |
횡성 |
국순당 |
백옥주 |
25 40 |
파주 |
농업회사법인 (주)감홍로 |
감홍로 |
40 |
김포 |
문배주양조원 |
문배주 |
40 23 |
김포 |
경원리큐르 |
장수홍삼주 |
25 |
수원 |
(주)가양주조 |
불휘 |
40 33 21 |
용인 |
옥로주 |
옥로주 |
45 |
포천 |
배상면주가 |
오메락 |
40 |
산자락 |
40 |
||
아락 배 아락 감 아락 녹차 아락 사과 완주 감 |
17 25 40 |
||
서울 |
더한 |
매실원주 |
15 20 |
서울 |
삼해소주 |
삼해소주 |
40 |
안성 |
한주양조 |
주 |
20 25 35 |
안성 |
정헌배인삼주가 |
인삼주 봉 |
40 |
화성 |
(주)배혜정도가 |
우곡소주 |
25,41 |
이담 |
55 |
||
여주 |
화요 |
화요 41, 25, 17 |
41,25 17 |
X 프리미엄 |
41 |
||
제천 |
제천한약 영농조합법인 |
의림소주 |
40 |
한비오가피술골드 |
35 |
||
한비 써큐란 |
35 |
||
제천 |
용두산조은슬 |
금휘 |
30 |
소나무와 학 |
43 |
||
보은 |
보은송로 |
송로주 |
48 |
천안 |
두레앙 |
두레앙/포도증류주 |
40 |
두레앙백주 스페셜 |
|
||
공주 |
계룡백일주 |
계룡백일주 |
40 |
공주 |
(농)한국산삼 |
계룡산양산삼주 |
40 21 |
금산 |
(주)금산인삼주 |
금산인삼주 |
43 23 |
수삼500 |
|
||
서천 |
한산소곡주 |
불소곡주 |
40 |
익산 |
한국민속대통주 |
죽력(竹力) |
41.1 |
전주 |
전주이강주 |
이강주 38 명작 |
38 |
이강주 25 |
25 |
||
완주 |
송화백일주 |
송화백일주 |
38 |
진안 |
태평주가 |
진심홍삼인삼주 |
19 |
김제 |
모악산새순 영농조합법인 |
황금보리소주 |
19 |
모악산 이화주 |
40 |
||
정읍 |
태인양조장 |
죽력고 |
32 |
담양 |
추성고을 |
추성주 |
25 |
타미앙스 |
40 |
||
강진 |
병영주조장 |
병영 설성사또 |
40 |
함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