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마오타이주의 고향을 찾아가다


중국술을 두고, 우리는 배갈, 고량주, 바이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중국 증류주의 공식 대명사는 바이주다. 바이주는 백주(白酒)의 중국식 발음이고, 바이주의 다른 이름이 배갈인데 이는 허베이 성(河北省) 헝쉐이현(衡水縣)의 양조장에서 만들어지는 특정 브랜드인 바이간(白干)에서 유래했다. 고량주는 수수의 다른 이름이 고량이어서 부른 이름이다. 바이주이자, 고량주로서 중국 대표 술을 꼽으라면 단연 마오타이주다. 마오타이주는 중국에서 국주(國酒)라는 명칭을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마오타이주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출범에 기여한, 개국공신의 자취를 담고 있어서 감히 다른 양조장의 술들이 얕잡아보거나, 무시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다.

그 마오타이주를 맛보기 위해서 중국을 찾아갔다. 마오타이주가 생산되는 곳은 중국의 서쪽인 구이저우 성(貴州省) 런화이현(仁怀縣) 마오타이진(茅台鎭)이다. 서쪽 변방의 작은 마을이 마오타이진이다. 요즘은 한국을 여행하는 중국인이 늘어나서, 구이저우 성에서 인천공항까지 간간이 전세 비행기가 뜨지만, 한국에서 구이저우 성을 가려면 직항노선이 없어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야 한다. 나는 광저우 공항을 거쳐 구이저우 공항으로 들어갔다.

내가 머문 곳은 마오타이진에서 가까운 도시인 런화이시(仁怀市)였다. 그곳은 마오타이진에 기반을 둔 술 회사들이 돈을 벌어 판매장을 두고, 호텔도 짓고, 아파트 단지 투자도 하는 곳이다. 마오타이진은 술 제조장이 밀집해 있고, 런화이시는 유흥이 가미된 번화한 도시였다. 런화이시 호텔 입구에는 주중주(酒中酒)라는 회사의 간판이 크게 걸려있었고, 방방마다 주중주의 술이 가격표와 함께 놓여 있었다.

런화이시에서 15분 정도 자동차를 타고 가니 마오타이진이 나왔다. 마오타이진이 들어서자 나를 맞이한 것은 진한 장향 냄새와 먼지바람이었다. 도시를 재정비하는 것인지, 이제 개발이 시작된 것인지, 공사장 먼지가 날려 길가 건물들은 온통 흙빛이었다. 평지를 찾아보기 어렵고, 가파르고 비탈진 길들이 이어졌다. 요즈음 중국의 많은 도시들은 개발 바람이 불어 한창 변화를 겪고 있는데, 마오타이진도 그렇다고 관광 안내인은 덤덤하게 말했다.

마오타이진 마을 안에는 독립문 같은 큰 문이 있었다. 마오타이 그룹의 문이라지만, 정문인지 뒷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의 안쪽과 바깥쪽 경계가 불분명했다. 그저 마을 한복판에 세워진 상징물처럼 보였다. 문 바깥으로 술판매장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고, 문 안쪽으로는 비탈진 길을 따라 화물차와 일반 차량들이 검문도 받지 않고 드나들고 있었다. 문 안쪽으로 마오타이 그룹이 있는데, 직원이 1만 명이라고 했다. 나는 그 직원의 숫자에 놀랐지만, 마오타이 그룹 말고, 바이주 제조장이 마오타이진에 800여개가 있다는 말에 더 놀랐다.

이때부터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마오타이주가 마오타이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면, 마오타이진에서 만들어진 800여개의 술들은 모두 마오타이주란 말인가? 마오타이주에 가짜가 많다는데 그럼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 말일까? 현지 안내인에 물어보니, 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마오타이주라는 명칭은 마오타이 그룹에서만 쓰고, 마오타이진에 있는 다른 회사들을 그 명칭을 쓰지 않고, 제각기 다른 술 이름을 갖고 있다고 했다. 가짜라는 술들은 마오타이진 외에 다른 지역에서 비슷하게 만들어 파는 일이 벌어지다보니 생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지 안내인은 요즈음 마오타이 그룹의 매출도 줄고, 마오타이진 경제도 좋지 못하다고 했다. 최근에 시진 핑 국가주석이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부패 척결을 외친 바람에, 국주인 마오타이주의 매출이 줄었는데, 마오타이 그룹의 2013년 1분기 생산액을 보면 65억46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12% 줄었다고 했다.

마오타이진의 큰 길 양쪽에는 주류 판매장들이 줄지어 있었다. 누가 와서 저 판매장의 술을 사갈까? 유지는 될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판매장들이 늘어서 있는데, 중국 전체를 상대하고, 세계 시장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니 그 규모가 납득이 갔다. 판매장에서는 병에 든 완제품을 팔기도 하지만, 항아리에 담긴 것을 1근 단위로 팔기도 했다.

마오타이진에서 처음 찾아간 주창(酒廠)-중국에서는 양조장을 이렇게 부른다-은 주중주(酒中酒)라는 회사였다. 주창은 산 하나를 통째로 점유하고서 술을 빚고 있었다. 산 비탈에 회색 건물들이 아파트처럼 늘어서 있는데 그곳이 모두 술을 제조하거나 저장하는 공간이었다.

주창 안내인은 나를 술을 빚는 공간으로 안내했다. 주창이 넓어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이곳 바이주는 수수를 사용해서 빚는 고량주였다. 젊은 일꾼들이 삽과 빗자루를 들고, 바닥에 펼쳐진 수수를 뒤집고 쓸고 쌓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청결한 식품을 만드는 제조장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시멘트와 모래를 뒤섞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국술은 고체 발효다. 우리처럼 물을 사용하지 않고, 술을 빚는다. 술은 액체인데 어디서 수분이 나와서 술이 될까? 의문스러웠다. 술 빚는 공정을 한참 살펴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원료인 수수를 큰 솥에 넣고 쪘다. 수분은 수수에 포함된 것과, 찌면서 수수가 머금은 정도가 전부였다. 찐 수수에 당화효소를 섞어서 큰 구덩이에 몰아넣었다. 구덩이 깊이는 4~5미터는 되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야 했다. 당화효소와 함께 수수를 구덩이에 밀어 넣어 두고 윗부분은 진흙으로 밀폐시켰다. 발효가 진행되면서 속에서 열기가 발생하고 수수가 팽창하는지, 진흙으로 봉한 윗부분이 둥글게 부풀어 올라있었다. 근 한 달가량 발효시킨 뒤에 윗부분의 진흙을 거둬내고, 큰 증류 솥에 발효된 수수를 붓고 불을 지피면 증기의 형태로 알코올이 분리되어 냉각관을 타고 나와 투명한 바이주가 된다.

이 바이주를 저장 숙성시킨 곳으로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천정이 낮고 서늘한 곳에서 수백 개의 술항아리들이 도열해 있었다. 1년 된 술이 담긴 술독, 3년 된 술이 담긴 술독, 몇 번째에 증류된 술이 담긴 술독 등 다양했다. 침묵과 어둠 속에 잠긴 술독들을 보고 있자니, 바이주는 세월이 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차를 타고 주창 안의 누룩 만드는 곳으로 이동했다. 직접 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는다는 것, 그것은 그 술의 고유성을 확보하는데 중요한 요소다. 누룩방을 보고서 나는 기겁했다. 긴 터널 같은 복도의 양편에 누룩방들이 있었다. 그 복도의 중간에 천정 높고 넓은 공간에서 누룩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들이 누룩을 디뎌 만드는데, 우리 누룩 틀보다는 3배 정도는 컸고 무거웠다. 여자들이 맨발로 밀을 다져 누룩을 만드는데, 마치 손으로 북을 두드리듯, 양발로 누룩을 연신 밟아서 모양을 잡았다. 누룩의 가장자리는 단단하게, 가운데는 볼록하면서도 엉성하게 빈틈이 있게 만들었다. 왜 가운데를 단단하게 밟지 않냐고 물었더니, 가장자리에는 단단하게 해서 공기가 들어가게 하지 않지만, 가운데는 공기가 들어가게 해서 다른 누룩균이 서식할 수 있게 한다고 했다. 한 장의 누룩이지만, 조건을 달리해서 균을 배양하고 있었다.

누룩방 안을 보니 볏짚 지푸라기가 헝클어져 있었다. 안에는 지푸라기와 누룩을 얼기설기 쌓아놓았지만, 마지막에는 지푸라기를 적당히 덮어 공기도 통하고 열기도 발산하게 해두었다. 누룩방 복도에는 작은 모기들이 먼지처럼 날고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누룩모기라면서 이 모기가 있어야 누룩이 잘 띄워진다고 했다.

마오타이 그룹의 술빚는 모습은 비공개라고 하여 볼 수 없었다. 마오타이주 제조장은 산자락에 아파트 단지처럼 거대하게 도열해있는 모습만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오타이진의 주중주 주창만으로도, 마오타이주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중국은 인구가 많다보니 오래 숙성하는 향기로운 바이주를 만들다보니, 대형화의 길을 걸었고, 그 속에 중국다운 것을 담고 있었다.

마오타이진에서 만들어진 술들은, 마오타이주의 기질과 비슷한 장향형의 술들이다. 바이주는 크게 향기에 따라 장향형(醬香型), 농향형(濃香型), 청향형(淸香型), 미향형(米香型), 겸향형(兼香型), 봉황형(鳳香型)이 있다. 마오타이주와 마오타이진의 술은 장향형을 대표하는 술이다. 술에서 장 달이는 냄새가 난다. 마오타이진에 들어왔을 때도 맡았던 냄새다. 중국의 발효주 황주에서도 장 냄새가 난다. 왜 장 냄새를 좋아할까? 바이주에 스민 장 냄새는 술의 바닥에 주춧돌처럼 박혀 있어서 그 특징을 금방 잡아낼 수 있다.

주중주를 나와 마오타이주의 역사와 문화를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마오타이국주문화성(茅台國酒文化城)을 찾아갔다. 국주문화성에서는 마오타이주가 국주가 된 이유를 설명한 저전시관을 포함하여, 맛과 향을 즐기는 유료 시음장을 갖추고 있었다.

시음장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잔에 마오타이주를 맛보면서, 나는 또 다른 여행을 꿈꿨다. 그때는 술맛을 잘 아는 친구들과 와야지! 숙성년도별로, 주창별로, 가격별로 다른 술을 맛보면서, 마오타이주가 어떠한지 낱낱이 갈래를 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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