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에서 三은 인간의 숫자이다
◇ 홀수가 양 짝수가 음
음은 땅이고 양은 하늘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여 만물을 생성하고, 키워내며 순환하여 모든 만물이 무궁히 발전하는 것이 음양의 조화이다. 그리고 ‘木火土金水’의 오행의 특수한 기는 우주만물의 원천을 이루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의 근본의 기(氣)에 있다. 술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므로 1로부터 시작됨은 모두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동양에서는 홀수가 ‘양(陽)’, 짝수를 ‘음(陰)’으로 본다. 중국의 자금성에는 모든 곳에 홀수가 존재한다. 즉 성문의 개수가 하나가 아니면 3개이다. 성문에 박힌 못의 개수조차도 홀수이다. 황제는 남자(양)이고, 따라서 홀 수 중에 가장 큰 9가 많이 사용된다. 제사상도 마찬가지이다. 제사는 남자 중심으로 생겨난 제도이고, 따라서 모든 것이 양을 나타내는 홀수로 이루어진다. 음식은 보통 3줄이나 5줄로 차린다. 과일을 놓을 때도 홀 수 개로 놓는다. 생선도 한 마리나 3마리를 놓는다. 나물도 3가지나 5가지를 놓는다.
술좌석에서 잔이 한 바퀴 도는 것을 한 순배(巡杯)라고 하는데 술이란 대개 석 잔은 훈훈하고, 다섯 잔은 기분 좋고, 일곱 잔은 흡족하고 아홉 잔은 지나치므로 7잔 이상은 절대로 권하여 돌리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홀 수 돌리기 원칙이었다. 그러나 지나친 술잔 돌리기는 금하였다.
조선 세종 때 아끼는 신하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의미에서 ‘삼배계주(三盃戒酒)’를 권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도 홀 수배인 석 잔을 넘기지 말 것을 왕명으로 금하고 있다. 3의 의미는 삼강오륜(三綱五倫),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삼일장(三日葬), 삼배(三拜), 삼탕(三湯), 삼색실과(三色實果)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삼황(三皇), 삼도(三道), 삼족(三族), 삼계(三戒)라는 사용 예를 볼 수 있다. 술을 마실 때 왜 홀 수배를 하는지, 심지어는 죽은 자에게도 홀 수배로 올리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주당들에게는 흥미 있을 것이다.
◇ 홀수의 시작점 3이라는 의미성
3(三)은 ‘모든(every)’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최초의 숫자이며, 처음과 중간과 끝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전체를 나타내는 숫자다. 3의 힘은 보편적이며 하늘, 땅, 바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3중성을 나타낸다. 또한 인간의 육체·혼·영, 탄생·삶·죽음, 처음·중간·끝, 과거·현재·미래, 달의 세 가지 상(초승달, 반달, 보름달)을 나타낸다. 3은 천계의 숫자이며, 4가 육체를 나타내는 데 비해 3은 영혼을 상징한다. 3은 4와 합쳐서 7이라는 성스러운 숫자가 탄생된다.
동양에서 3은 인간의 숫자이다. 1은 하늘의 숫자이고, 2는 땅의 숫자이고, 3은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만나서 만드는 인간의 숫자이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만나서 만드는 것은 인간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것이다. 하늘 天자의 상형을 일컬음이다. 그래서 그것들의 구조와 생리는 3가지의 마디가 있다. 그것이 생명일 때는 그 마디가 뚜렷하다.
사람마다 짐승 또는 곤충은 머리, 몸통, 다리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머리는 두개부, 상악, 하악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잇고, 몸통은 흉부, 복부, 골반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척수는 크게 경추, 흉추, 요추로 나뉘어 있다. 팔은 주관절과 외관 절에 의해서 상완, 전완, 손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다리는 슬 관절과 족관절에 의해 대퇴와 경골부, 발로 나뉘어 있다. 손가락 발가락 역시 3마디로 되어 있다.
인체를 세로로(상에서 하로) 나누었을 때 3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고, 가로로(좌에서 우로) 나누었을 때는 2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눈도 2개이고, 콧구멍도 2개이고 귀도 2개이다. 입은 하나이나 좌우 대칭으로 되어 있으니 2개라고 할 수 있고, 목구멍의 생김새를 보면 목젖이 강ㄴ데 있어서 2개였던 흔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팔도 2개이고 다리도 2개이고 몸통도 대칭으로 되어있으니 2개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만물은 횡으로 2와 3의 구조와 작용을 가지고 있고 주역의 궤상이 우주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데 얼마나 적합하게 되어 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옛날 사람들은 숫자를 가지고 미래를 점칠 정도로 수의 ‘개성’을 지나치게 존중했는데 이런 경향은 동서양 모두 공통적이다. 영어에 ‘There is one above(위에 1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모든 것 위에 신이 계신다는 뜻이다.
◇ 朝酒三杯 不可廢
‘조주삼가 불가폐(朝酒三杯 不可廢)’란 글은 민속학자인 임석재(任晳宰, 1903~1998)가 전래되는 구전설화를 모아서 출간한 책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도 술 석 잔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옛날에 술을 아주 좋아하는 이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외아들을 장가보내면서 며느리와 같이 살게 되어 술을 삼가고 있었다. 며느리가 들어 온지 한 달 여정도 되었을 때, 처숙모 회갑잔치와 먼 일가친척의 환갑잔치가 같은 날에 있게 되었다. 이 사람은 마누라와 함께 먼저 처갓집에 들렀다가 술을 얼큰하게 마신 후, 마누라는 처갓집에서 며칠 있게 하고 자기는 혼자 환갑잔치 집에 가게 된다.
이 사람의 마누라는 남편이 술을 좋아해서 실수를 할까봐 잔치 집에 가서 술을 적당히 하고 집으로 바로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또한 잔칫집에 가기 전에는 집에 있는 며느리에게 다음날 시아버지의 해장국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두 잔칫집에서 과음을 하여 만취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마침 그 때 며느리는 뒷간에 있었다.
마침 며느리의 인기척이 없는 것을 눈치 챈 이 사람은 혹시라도 며느리가 볼까 얼른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잠자리에 누었다. 만취한 상태에서도 새 며느리한테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시아버지 위신을 상하지 않았다는 자존감에 드르릉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잠을 깨보니, 세상에 이런 망신이 있나! 이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난 곳은 자기 방이 아닌 새 며느리의 방이었다.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님을 깨달은 이 사람은 얼른 자기 방으로 가서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자책을 하면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각오로 지필묵을 꺼내서 커다랗게 글을 서서는 벽에 척하고 붙였다. 다음부터 내가 술을 마시면 말새끼, 개새끼, 소새끼라는 것이다.
此後 飮酒之者 馬之子 犬之子 牛之者也
이때 며느리가 해장국을 따끈하게 데워 시아버지에게 가져와서는 해장술로 속을 풀어야 한다며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자기가 한 실수도 있고 해서 그걸 만화하고자 며느리에게 자기는 앞으로 술을 안마시기로 했다고 말하고는 벽에 붙인 글을 보여준다.
하지만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가 해장을 시켜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였고, 해장에는 해장술을 곁들여야 하는데 시아버지께서 해장을 안 하시면 자기는 불효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니 이번에만 마시고 다음부터 그리 하라고 간곡하게 설득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듣기에 며느리의 말이 귀에 솔깃하게 들어오기는 하는데, 방금 써 놓은 맹세문도 있고… 술은 마시고 싶고… 고민을 하다가 조금 전에 써서 붙여 놓은 글귀 밑에 하나를 덧붙여 써 놓았다.
但 朝酒一杯 不可廢
즉, 단 예외로 아침술 한 잔은 없앨 수 없도다!
그리고는 술을 한 잔 마시는데 고맙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난처하게도 며느리가 주불단배(酒不單杯)라면서 한 잔을 더 권하는 것이었다. 난처해진 이 사람은 但 朝酒一杯 不可廢의 一자에 줄을 하나 더 그어서 二자로 만들고는 한 잔을 더 마신다.
但 朝酒二杯 不可廢
즉, 단 예외로 아침술 두 잔은 없앨 수 없도다!
그런데 빈속에 술이 들어간 이 사람은 기분이 도도해지자 며느리에게 주불쌍배(酒不雙杯)라면서 술이란 모름지기 삼배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는 但 朝酒二杯 不可廢의 二자에 줄을 하나 더 그어서 三자로 만들었다.
但 朝酒三杯 不可廢
단 예외로 아침술 석 잔은 없앨 수 없도다!
이렇게 하여 이 사람은 며느리 앞에서 위신도 세우고 술도 석 잔이나 마셨다고 한다.
此後 飮酒之者 馬之子 犬之子 牛之者也 但 朝酒三杯 不可廢
명나라 때 쓰인 ‘서담개(敍譚槪)’라는 책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난징(南京)의 진(陳)씨 성을 가진 어느 학자가 산동에 가서 훈장을 지냈다. 그가 평소에 술을 무척 즐긴다는 것을 아는 그의 아버지가 하루는 편지를 보내어 술을 너무 마심으로써 가르침을 게을리 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었다. 아버지의 글을 받은 훈장은 즉시 술잔을 하나 맞추었는데 이 잔은 두 되들이의 초대형 잔이었다고 그 잔 속에는 이런 글귀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것이 동양에서 삼배계주의 효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버님께서 술을 삼가 석 잔만 마시도록 하였노라”
이 처럼 술 석 잔은 모든 술꾼들에게 암묵적인 약속의 잔이었다. 약속의 잔이 깨지면 성격이 방자해지고 언행이 단정치 못하기 때문에 항시 삼배계주령을 내려 신하를 보호하고자 하는 임금들의 노력이 곳곳에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