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폭탄주 문화
비빔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농번기에 바쁜 일손을 덜기 위해 밥과 찬을 섞어 먹었다는 설, 산신제나 동제(洞祭) 후 제물을 신인공식(神人共食)해야 하니 그릇 하나에 이것저것 받아 섞어 먹게 됐다는 설 등이다. 문헌상으로는 1800년대 말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비로소 등장하고 있으니, 비빔밥의 역사는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이런 웰빙식(食)에 대해 지난해 일본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지국장이 비빔밥을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내걸어 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이라고 비하하는 말을 했다가 네티즌은 물론 이어령 석좌교수로부터 “일본음식이야말로 양두구육”이라고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술꾼들이 즐겨 마시는 폭탄주도 따지고 보면 비빔밥처럼 여러 가지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폭탄주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비빔밥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나라의 위스키시장 규모는 맥주나 소주에 비해 작지만, 술집에서 폭탄주의 핵으로 소비되는 위스키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이 소비되고 있다. 폭탄주의 원조는 보통 맥주와 위스키를 섞은 것이지만 요즘은 ‘소맥’ 즉, 맥주에 소주를 탄 폭탄주도 주당들 세계에서 인기다. 이런 폭탄주는 제조 원가가 저렴한데 반해 반응속도가 좋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막걸리가 대유행하고 있다. 주당들은 또 한 번 변신을 꾀해, 막걸리에 소주를 탄 폭탄주를 제조해 내고 있다. 한 때 백세주에 소주를 탄 ‘50세주’가 유행을 하자 술도가들은 숫제 이 50세주와 도수가 비슷한 ‘50세주’를 출하시켰지만 큰 성공을 보지 못했다. 이는 주당들의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한데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주당들의 섞어 마시는 재미를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주당들은 도수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마신다는데 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맥주와 위스키, 맥주와 소주, 막걸리와 소주, 또는 와인과 위스키는 섞는 비중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개 알코올 도수는 10도 정도다. 이 정도가 목 넘김이 수월하고 몸에 흡수되는 속도도 빨라 주당들은 ‘중성자탄’을 비롯해 ‘태권도주’, ‘타이타닉주’, ‘드라큐라주’ 등 다양한 폭탄주를 제조한다.
위스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글라스에 얼음 혹은 물과 함께 희석시켜 마시는데 반해 우리는 다양한 술을 섞어 마신다. 폭탄주가 아니더라도 소주를 마시다가 생맥주를 마시거나 혹은 양주를 마신다. 결국 뱃속에서는 모두 섞이게 되니 차라리 처음부터 비벼 마시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위스키건 맥주건 소주건 간에 따로 따로 마시면 각각의 독특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다소 무지한 폭탄주는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폭탄주에는 조화와 융합, 어울림이라는 한국적 정서가 배어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폭탄주 문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잘못된 음주문화라는 지적도 있지만 사라지지 않고 점점 번창하는 것은, 우리 문화와 자연스럽게 융화시켜 독창적인 우리만의 것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