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혼자서 술 마시는 사람은 ‘나뿐 놈’

혼자서 술 마시는 사람은 ‘나뿐 놈’

 

 

꽃 속에 술단지 마주 놓고/ 짝 없이 혼자서 술잔 드네. 밝은 달님 잔속에 맞이하니/ 달과 나와 그림자 셋이어라/ 달님은 본시 술 못하고/ 그림자 건성 떠돌지만/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 동반하고/ 모름지기 봄철 한 때나 즐기고저/ 내가 노래하면 달님은 서성대고/ 내가 춤을 추면 그림자 흔들대네. 깨여서는 함께 어울려 놀고/ 취해서는 각자 흩어져 가세/ 영원히 엉킴 없는 교유 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리.

 

이백(李白·701~762)의 ‘달 아래 홀로 술 들며(月下獨酌)’란 시다. 아마 이백이 대작(對酌)할 상대가 없어서, 잠시 혼자서 달과 벗하며 술을 마신 모양이다. 친구가 없어 혼자서 마시는 술을 독작(獨酌)이라 한다.

며칠 전 지인과 식사자리에서의 일이다. 지인이 느닷없이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고 묻기에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한 사람의 답이 “나뿐 놈”이란다. 그러면서 “불쌍한 놈”이라고도 했다. 문제와 답을 낸 이가 풀어내는데, ‘놈’은 남자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者)’를 의미한다. 때문에 ‘나뿐 놈’은 ‘나 혼자뿐인 사람’이며, 결코 ‘나쁜 놈’이 아니란다. 또 ‘불쌍한 놈’은 ‘불쌍(不雙)’, 즉 쌍이 아니라는 뜻의 개그란다. 결국 ‘나뿐 놈’이나 ‘불쌍한 놈’은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다. 필자도 가끔은 ‘나뿐 놈’이 될 때가 많다. 달 아래서 혼자 술잔을 드는 이백도 이런 우스갯말로 치면 ‘나뿐 놈’이 되는 것은 아닐까? 이백이야 달과 그림자를 친구 삼았으니 혼자가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우스갯말을 생각해낸 것은 아마 우리의 ‘술잔 돌리기’ 문화와 무관하지는 않을 테다. 음주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고, 한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다르다. 서구의 경우 대부분 자기가 마실 만큼 자신이 따라 마시는 ‘자작(自酌)문화’가 많은데 반해 우리나라는 누구나 술잔을 주고받기를 즐기는 독특한 ‘수작(酬酌)문화’권이다. 혼자서 술집에 들어가 술을 시키는 처량한 짓보다 여럿이 모여 술자리를 만들어야 흥이 나는 게 우리의 술 문화다.

우리나라의 수작문화는 신라 화랑(花郞)들이 한 솥의 차를 나눠 마시며 공생공사를 다진 차례(茶禮)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또 전통사회에선 관청에 대포(大匏·큰 바가지)라는 큰 술잔을 비치해놓고 날을 잡아 상하차별 없이 술잔을 돌려 마심으로써 일심동체를 다졌던 풍습이 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술 문화는 독작보다 수작이 훨씬 풍류가 있어 보이고 술맛도 난다.

그런데 외국의 술 문화 탓인지 언제부턴가 혼자서 바에 앉아 술 마시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혼자서 술 마시는 남자는 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혼자서 담배 피우는 여자는 남자에 지쳤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설마 여자가 필요해서 혼자 술을 마시지는 않겠지.

어떤 30대 초반의 남자가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술을 자주 마십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마시며, 한 병 정도를 혼자 마십니다. 사람들과 마시고 싶지만, 같이 마실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또 “사실 혼자 마시는 걸 더 즐깁니다. 돈도 적게 듭니다. 집에서 안주 만들어 마시지만….”

‘주선(酒仙)’ 조지훈이 꼽았다는 ‘주도(酒道) 18단’ 중에서 바둑으로 치면 6급 정도 되는 단계를 ‘은주(隱酒)’라 했다. 이는 ‘마실 줄 알고 겁내지 않으며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 숨어 마시는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 사회에도 점점 이런 ‘은주파(派)’가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나이 들어 술친구가 하나둘 떠나면 인생도 막을 내려야 한다. 막 내리기 전에 처지 어려운 친구 불러내 대폿잔이라도 기울여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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