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神(Bacchus)은 海神(Neptune)보다 더 많은 사람을 익사시켰다”고 주당들은 탄식한다. 그러면서 해질녘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청맹과니들의 노래’의 작가 김수용 소설가는 “한 잔은 건강을 위하여, 두 잔은 쾌락을 위하여, 석 잔은 방종을 위하여, 넉 잔은 발광을 위하여”라고 노래했다.
주석(酒席)에서 첫잔의 그 짜릿함이란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보석이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이라지만 주당들은 변명이 많다. 대표적인 게 술 마시는 핑계를 대는 것 아닐까. 또 술자리를 바꾸는 차수(次數)도 나름대로 변이 있다.
△ 1차의 술좌석은 몸에 촉촉이 배게 하기 위한 시동 걸기이다.
△ 2차의 술좌석은 몸에 제법 적응시키려는 전면돌기이다.
△ 3차의 술좌석은 담아라, 부어라의 재놓기이다.
△ 4차는 헤어지기 아쉬워, 입가심이란 미명아래 종전의 차수에 안 먹었던 비교적 순한 술로 섞는다.
이쯤 되면 흑백의 판가름이 난다. 여기서 자칫 정도를 넘어서면 사람이 술 마시는 게 아닌, 술이 사람을 마시게 돼 흔들린다. 술 마시는 사람에 따라 어울림으로 그 날은 외박행차를 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양심은 있어 이른바 ‘메인코스’의 선을 벗어나 귀가행차를 타는 부류도 있다.
권하는 술잔을 거절 말게나
봄바람 웃으며 불어오거늘
복숭아 오얏나무 구면식이라
꽃송이 고개 숙여 우리를 보네
여기 저기 푸른 나무 꾀꼬리 울고
밝은 달은 황금 술잔 속에 둥글게 떴네
어제의 홍안 소년 오늘에 백발 성하고
석호전에 가시덤불 자라났고
고소대에 들사슴이 뛰노네
자고로 제왕들의 대궐이나
성곽은 흙먼지에 묻혔거늘
자네 술 마시지 않다니
뉘라 불로장생했던가?
이태백(李太白․이백)의 ‘술을 대작하며’란 시다.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인 이백은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힌다. 이백이 수많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술이란 매개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요즘의 문학에는 술 이야기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술의 해악만 지나치게 부각시키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쨌거나 술 한 잔 들어가면 노래 못 부른다고 빼던 사람도 마이크를 독차지하고 시인인 양 시 한 수 읊조리는 것 역시 술의 힘일 것이다.
중앙대 남태우 교수(문학박사)는 그의 저서 〈홀수배 飮酒法의 의식과 허식〉에서 술꾼들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알코올 시조론’으로 책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중 막걸리 편의 “돈 없는 놈 가난한 놈 한 잔이면 그만이지”란 표현이 재밌다. 그래서 요즘 막걸리가 뜨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알코올 시조론
제1탄 소주편……소주(소주빛 순수)
소주들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현혹하니
남성들의 희망이요 살아가는 긍지로다
골수백번 먹고먹어 간장위장 빵꾸나고
골이가도 우찌할꼬 너무좋다 우리소주
대왕중의 대왕소주 자식들도 많다하니
악바칠때 어케할꼬 병째불자 나발소주
귀찮을때 기냥먹어 막시키자 막소주라
술못먹는 년놈들은 약하단다 오이소주
지지배들 꼴각꼴각 잘먹는다 레몬소주
고상한년 다리꼬고 기분낸다 체리소주
소주먹는 사람들아 이말한번 들어봐라
수입불가 신토불이 우리소주 사랑하자
제2탄 맥주편……맥주(현실의 도약)
바다건너 저기건너 코큰사람 먹던맥주
이맛이야 제맛이야 그놈한번 시원하네
부담없다 맥주먹고 기분좋다 맥주먹네
배고플때 배채우고 더위싫어 맥주최고
연인이랑 오순도손 동기들과 왁자지껄
여기원샷 저기원샷 바쁘구나 화장실아
하이트다 생맥주다 너는카스 나는오비
주동이도 주책이지 이놈저놈 까다롭다
연인이랑 맥주먹고 입술에다 키스해봐
향기로운 트림내용 연인얼굴 웃음꽃펴
그러다가 술깨면은 연인에게 따귀맞지
취하도록 마신다음 깨고나서 다시먹자
맥주먹고 취한사람 소주보다 더럽더라
제3탄 양주편……양주(이상의 추구)
돈있을때 양주먹자 가난하면 우찌먹나
기분이다 뻐기다가 양주먹고 이쑤시자
술모르는 놈팽이들 으스대며 양주먹고
까불까불 먹더니만 눈딱지에 불이났어
요건워커 요건조커 이름하난 잘외운다
기분째진 사장님은 김마담뚜 싸롱이다
이놈저놈 다모여서 여자끼고 헤롱헤롱
잘나간다 룸싸롱아 사장님들 어서와용
개나소나 사장이고 깡패들은 회장이다
양주처럼 좋은술이 있는자의 전용이라
잘먹으면 약이되고 못먹으면 븅신된다
우리양주 먹고먹어 외세양주 막아보자
우리양주 개발하여 양주시장 세계화로
제4탄 막걸리편……막걸리(향수와 낭만)
우리서민 애환담긴 막걸리를 먹어보세
돈없는놈 가난한놈 한잔이면 그만이지
일할때도 막걸리고 밥먹을때 막걸리라
우리곡식 곱게담가 다둑다둑 막걸리고
힘든농사 결실맺힌 우리농산 곡주나라
연인이랑 막걸리로 걸죽한정 이어보세
친구들과 한잔두잔 따스한정 막걸리라
영양많고 맛도좋은 막걸리를 먹고먹어
스테미나 정력부족 막걸리로 해결하세
이어가는 손끝마다 막걸리향 정이든다
쌀막걸리 사랑하고 가짜들은 멀리하세
진짜곡주 약이되고 화학주는 병이된다
신토불이 신토불이 우리걸리 사랑하세
제5탄 폭탄주편……폭탄주(절망과 좌절)
이놈저놈 기분이다 폭탄주로 해결하네
막걸리에 소주타서 양주먹고 폭탄주라
그거먹고 취한사람 제정신이 아니구나
폭탄맞은 머리하고 삼일동안 고생하지
돈없으면 어떡하나 폭탄주가 최고란다
나는술세 폭탄주니 널리널리 퍼졌구나
먹는사람 잘도먹고 못먹는놈 맛이간다
엠티가서 폭탄맞고 군대가서 폭탄이니
먹을때는 먹더라도 뒤감당은 자기책임
민주국가 민주정부 술먹는거 자기마음
술먹는거 따지자니 못먹는놈 할말없네
자기재량 먹은술은 정신건강 사람건강
개나발로 먹은술은 맛이가고 패가망신
한국 사람들의 술버릇은 혼자서 술을 못 마시고, 핑계 없이는 못 마신다. 또 해진 후에 마신다. 이는 주(酒)자가 물 수변(氵)+酉=酒, 유시(酉時)는 저녁 6시라는 데서 기인한다. 주(酒)의 시간 변화는 해구(解口․입이 풀린다) → 해색(解色․곰보다 예뻐 보인다) → 해원(解怨․숨겨둔 원한이나 분통이 풀린다) → 해망(解妄․인사불성이 된다)으로 이어지는데, 이 순서는 주당들이 음주시간을 늘려 잡기 위한 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술은 해망이 될 때까지 마시지 말고, 해원까지만 마시면 장수할 수 있다.
병아리가 물 마시는 모습을 보았는가?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쳐다보고, 또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쳐다보는 것을 반복한다. 닭이 물마시듯 그렇게 마시는 것이 술이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파자(破字)로 해석하면, 술을 물로 봤을 때 땅이 두 개로 보이고 다리가 휘청거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쳇말로 사람이 술을 마셔야지 술이 사람을 마시면 그렇게 되니 조심하라는 뜻이다. 술에는 장사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