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8시에 떠나네
그네들에게 내밀 수 있는 것은 맑은 우조(oyzo)지만 가슴의 뜨거움으로 술이 붉게 익는다.
먼저 떠나보낸 것은 그녀가 아니라 세월이었음을….
마시자, 한잔의 술!
비빔밥은 왜 젓가락으로 비비는가?
와인은 돌려 따른다는 것을 안 곳은 어느 와인 바였다. 다른 술처럼 술잔에 와인을 채우던 내게 누군가가 말했다. 와인은 돌려 따르는 것이라고. 그 후로 와인을 접할 때마다 돌려 따랐지만 나는 왜 와인은 돌려 따르는지 궁금했다. 지금은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상태지만 와인은 왜 돌려 따르는가에 대한 물음은 코냑은 왜 돌려 따르는 가로 이어졌다. 또한 와인을 받을 때 왜 잔을 들어 받지 않고 테이블에 놓고 받는가에 대한 물음이 생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술잔이 와인 잔이라고 생각한다.
와인 잔으로는 한국식 건배를 하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술잔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와인 잔은 세척하기에도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잔을 씻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와인 잔은 금이 가거나 깨진다. 이렇게 깨진 와인 잔을 쓰레기통에 버릴 때는 비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러한 와인 잔의 목을 일단 쥐면 주위사람들과 살포시 건배를 해야 할 것 같고 소주 같으면 단번에 들이킬 것을 와인은 향을 맡으며 입안에서 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술을 따를 때도 와인은 그네들의 인사말 봉주르의 발음처럼 병을 살짝 공글린다. 술이 흐르지 않도록 병을 돌려 술 따르는 뒷마무리를 깔끔하게 하는 것이다.
와인은 포도의 당으로 술을 만드는 것이기때문에 잔류된 당이 존재한다.
당은 점성이 높기 때문에 술을 따를 때 흐르기 쉽다. 이런 문제를 우아하고 섬세하게 해결한 것이 와인을 돌려 따르는 것이다.
나는 와인 병을 돌려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보며 때때로 감탄을 한다. 증류했기에 점성이 없는 코냑까지 돌려 따르게 만드는 그들 문화의 저력이 새삼 부러웠다.
전주에서 비빔밥을 시켜 비빌 때 숟가락을 사용하지 마라. 더군다나 마주 앉은 사람이 전주사람이라면 당신이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것을 보며 한마디 던질 것이다. 젓가락으로 비비라고.
그 후로 당신은 어디가든 숟가락으로 비빔밥을 비비는 사람에게 한마디 던질 것이다. 마치 와인은 돌려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현대적인 한국와인의 시작- 마주앙
산업화의 초석을 놓는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보리 이삭은 팼으나 먹을 수 없고 쌀은 이미 떨어져 버린 초봄을 일컫는 보릿고개는 굶기를 밥 먹듯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실한 문제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식량사정을 해결할 방안을 찾던 중 곡물을 쓰지 않고 포도로 술을 만들 것을 생각한다. 당시 과실주는 파라다이스라는 사과주와 진로에서 만든 포도리큐르고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효 포도주에 대한 연구나 노하우가 당시의 업체에는 전혀 없었다. 포도주 개발은 결국 오비에서 하게 되었다.
1973년 경북 청하에 포도 농장을 처음으로 조성하였고 1975년 공장을 착공한다. 1976년 완공이 되었고 마주앙도 저장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1977년 드디어 마주앙이 나오게 된다.
눈치만 살피며 포도주 생산에 뛰어들지 않던 다른 업체에서도 마주앙이 나온 이후 포도주를 만들었으나 참혹한 실패를 본다. 이후 마주앙은 로마교황청의 승인을 얻어 미사 집전 때 미사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주앙은 더 이상 대중화되지 못하였고 1984년부터 외국산 포도주가 들어와 시장을 잠식하였으며 지금은 세계 각국의 포도주에 위축되어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폐터널에서 한국와인의 기적소리를 듣다
특히 경부선은 일본과 대륙을 잇는 사닥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경부선을 이루는 구 남성현 터널(경북 청도 소재)은 그러나 1937년 새로운 남성현 터널이 생겨 폐터널이 되었다. 그동안 검은 숨을 몰아쉬던 증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로 교체가 되고, 최근에는 KTX로 더욱 진화하게 된다.
터널을 달리던 기차가 진화하는 사이 우리의 술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한 때 막걸리가 전 국민의 술이었지만 지금은 소주와 맥주에 밀려있는 상황이다. 또한 와인도 급속하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와인은 풍부한 향과 세련된 모습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넓게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거기에 맞서 우리 농산물을 활용하여 만든 토종 와인의 도전이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펼쳐지고 있다.
경북 청도에서도 청도의 명물 감(반시)으로 만든 감 와인이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폐터널 속에서 숙성되고 있다.
폐터널 안은 습하고 냉랭한 기운이 감돈다. 암흑에 적응을 하자 윤곽만 잡히던 터널 안의 사물들이 찬찬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려 100여년이 넘은 터널의 상층부는 빨간 벽돌로 마감이 되었고, 세월을 덧입어서 무척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벽돌 사이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져 더욱 청량감을 더하고 있다.
터널 안은 계절이 바뀌어도 섭씨 12~15도의 온도를 유지하고 있어 감와인의 숙성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입구에서 끝까지 약 700미터 정도 되는 터널 안을 산책하듯 걸어보았다. 선로와 침목을 걷어내고 바닥에 잡석을 깔았으며, 사이사이 와인 병으로 벽을 막은 곳이 있으며, 터널 양 벽 쪽으로 와인 병을 쌓아 둔 곳도 있다. 끝에는 관람객들의 출입을 제한하여 와인이 깊은 잠을 자는 숙성실을 두었다. 그 깊은 어둠이 있기에 별처럼 빛나는 와인이 태어나리라 생각하며 발길을 돌린다.
문득 저 터널 끝까지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울려 퍼질 것 같은 비 내리는 저녁이었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