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최 명의 <술의 노래>
정치학자인 최명 서울대 명예교수가 인문학적 시각으로 술 이야기를 풀어썼다.
음주, 여행, 등산, 인물을 주제로 술 마시는 일화를 전한다. 동서고금의 시, 소설, 영화 등을 풍부하게 인용했다.
저자는 술 이야기를 빌어 인간, 삶, 관계를 말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술벗 이야기도 흥미롭다.
최명 교수는 나보고 지난날의 이야기를 남기라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제자들이다. 어디까지가 지난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여러 이야기 가운데 주로 술 먹는 이야기를 쓰라는 주문이다. 술을 마시면 속이 쓰린데, 그 속 쓰린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다. 써도 되고 안 써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들이나, 나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또 속이 쓰리다. 술을 아니 마시든가, 아니 적게 마시고 공부를 더 했으면 하는 회한(悔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마시지 않고는 살 수 없었나?”
술 마시는 이야기로 말하자면, 도연명(陶淵明, 365-427)이나 이태백(李太白, 701-762)은 그만두고, 가까이는 변영로(卞榮魯, 1898-1961)의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과 양주동(梁柱東, 1903-1977)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가 생각난다.
그분들이야 당대의 석학이고, 사시던 시대도 술을 마시지 않고는 지낼 수 없던 그런 시대였다.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비교적 평탄하고 좋은 세상에서 살았는데, 술 마시는 이야기를 하라니 딱한 일이다. 변영로와 양주동 선생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수십 년이 되었다. 선배들이 다 못 마시고 가신 술을 내가 마시고 하는 이야기인가?
여기의 글들은 거의가 술 먹는 이야기다. ‘음주행각飮酒行脚’이라면 좀 무엇하나, ‘음주편력飮酒遍歷’일 수도 있고, ‘주유편력酒遊遍歷’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은 다소 진부한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직설적으로 아무개의 ‘술 먹는 혹은 술 마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없어서, 제목을 어찌할까 오래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나, 오래전에 ‘음주송飮酒頌’이란 제목의 시를 하나 쓴 적이 있다. 우연히 그 시를 다시 읽다가 이것이 바로 ‘술의 노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유치한 글이지만, 아래에 적는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술의 노래>가 된 것이다. ‘무엇의 노래’란 제목의 소설들도 읽은 기억이 있으나,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그저 나의 노래를 불렀을 따름이다.
책은 크게 4장으로, 음주, 여행, 등산,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총 4장의 글들은 주제만 다르지 실은 술 먹는 얘기다. 음주를 주제로 한 글들, 여행가서 마신 일화, 산을 좋아하는 필자가 산에 가면서, 산에서, 그리고 내려와서 마신 일들, 마지막으로는 그의 사회 각계각층에(?) 걸친 다양한 술벗들과의 얘기이다.
“갑자기 이백의 ‘장진주(將進酒)’란 시의 일구가 떠올랐다. ‘인생은 득의양양할 때 마냥 즐겨야 하니, 황금 술잔을 달 앞에 빈 채로 놓지 마라’ 나는 득의양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친구와 더불어 달을 대하면, 아니 달이 없어도, 술잔을 비우지 않은 적도 없다”(135쪽)
선. 480쪽. 비소설. 1만5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