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이상향 샹그릴라에는 무슨 술이 있을까?

이상향 샹그릴라에는 무슨 술이 있을까?

 

글 ․ 사진/ 허시명

 


중국 윈난 성에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고 한다. 윈난 성에 다녀온 지가 얼마 되지 않다보니, 지진 소식에 등 뒤로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상향의 이름을 지닌 윈난 성 샹그릴라 협곡을 지날 때 지진이 없었는데도 돌이 무너져 내려 길이 막힌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 돌을 하천으로 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길을 가면서 샹그릴라가 나올까? 샹그릴라는 이런 곳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샹그릴라는 1933년에 작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펴낸 소설『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이상향이지, 현실 속에 존재하는 마을이 아니었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어로는 ‘마음속의 해와 달’이라는 어여쁜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소설에 등장하는 마을과 흡사하다하여 중국 정부가 1997년에 윈난 성 중뎬(中甸)을 샹그릴라로 추정하고, 2001년에 샹그릴라로 지명까지 바꿔버렸다. 그 뒤로 중뎬 샹그릴라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한해 6만 명 정도 찾아오던 관광객이 6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관광 스토리텔링의 승리인 셈이다.

이상향이라는데, 어찌 술이 없겠는가? 술을 찾아 샹그릴라를 찾아갔다. 윈난 성 소문난 관광지 리장 공항에 내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샹그릴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샹그릴라로 입성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해발 3459미터나 되니, 숨이 얕아졌고, 머리가 조여오기 시작했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야 했고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산소가 부족해서 생긴 고산증 증세가 찾아온 것이다. 심호흡을 해야 하고, 목욕은 하지 말아야 하고,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 상책인 동네가 어찌 이상향이란 말인가?

그래도 하룻밤을 자고나니 좀 거뜬해졌다. 비로소 술을 찾아 나설 의욕이 생겨서, 중국식 짜장면도 맛을 보고 나서 마을 안에 있는 양조장을 찾아갔다. 양조장 입구에 칭커주창(靑稞酒厂)이라고 쓰여 있었다. 칭커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보리다. 중국인들은 칭커라는 말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 보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쏜다’라는 의미를 지닌 我请客의 请客이 칭커로 발음되다보니, 특히 술자리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찾아간 칭커주 제조장은 민가에 딸려있었지만, 살림집과 주창이 분리되어 있었다. 3명 정도의 직원이 일하는 주창-중국에서는 양조장을 주창이라고 부른다-은 하나로 트여 있어서 큰 창고 같았다. 다만 불을 이용하기 때문에, 불을 지피는 하단과 발효통과 증류시설이 있는 상단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주창을 들어서자 왼편 안쪽으로 곡물 자루가 쌓여있었다. 칭커였는데, 생김새는 보리처럼 가운데 줄무늬가 있고 색깔은 수수에 가깝게 검붉었다. 보관 상태가 안 좋은 것인지, 원래 그 색깔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칭커를 옮기는 사람은 여자였다. 족히 40kg 정도 되어 둘이서 마주 잡아도 힘들 정도의 무게였는데, 여자가 거침없이 힘을 쓰고 있었다. 마른 칭커를 통에 붓고, 물을 부어 불리는 작업을 했다. 잘 불려진 칭커는 큰 찜솥에 넣고 불을 지펴 쪘다. 찐 칭커는 넓은 대 위에 펼쳐놓고 송풍기를 틀어 빨리 식힌 뒤에, 분말 형태로 가공된 발효제를 엷게 뿌려서 잘 섞었다. 곡물을 찌는 것까지는 한국 전통술을 빚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큰 나무 솥을 사용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발효 공법의 큰 차이는 한국은 찐 곡물의 분량에 물을 한 배나 한 배 반 정도를 붓고 발효시키는데, 중국은 찐 곡물을 그대로 구덩이에 쏟아 담고 진흙으로 밀봉하여 발효시킨다는 점이다. 이른바 물 없이 고체 발효를 시키는 점이 중국술의 특징이다. 왜 그럴까? 술을 많이 빚기 위해서, 구덩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강렬한 향기를 잡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증류주를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공정들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남자 둘과 여자 둘이 작업하는데, 여자들이 일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더니, 아직 30살이 안된 젊은 여성이 공장장이었고, 그의 언니처럼 보이는 이가 사장이었고, 남자 둘은 바쁠 때 일을 도와주는 보조 인력이었다. 젊은 여성 공장장은 어머니의 일을 이어받았는데, 어머니는 이 주창에서 평생 일하다가 은퇴했다. 원래 가정에서 술을 빚던 전통이, 상업화되면서도 그대로 여성의 노동으로 옮겨와 있는 형태였다.

발효제를 섞은 칭커를 구덩이에서 20일 정도 발효시킨 뒤에, 칭커를 증류 솥에 넣고 불을 지펴 증류주인 바이주를 내렸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증류솥 위에 얹힌 구리로 된 냉각 장치였다. 유럽에서는 구리 증류기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은 옹기로 된 증류기인 고조리를 사용하고, 증류주를 대량 생산하는 현대식 양조장에서는 스테인리스 증류 솥을 많이 사용한다. 고전적인 증류기는 목통인데, 이곳은 커다란 목통 증류기를 사용하면서도, 윗부분은 구리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차마 고도로 들어온 아랍이나 유럽 문화의 영향으로 짐작되었다.

증류 솥에서 금방 내려진 바이주 맛을 보니, 코끝이 찡할 정도로 독했다. 알코올 도수는 50도가 넘었다. 이 술을 저장용기에 담아두었다가, 찾아오는 손님에게 팔았다. 주창에서는 술을 오래 숙성시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샹그릴라에 오기 전에 티베트 민족이 즐겨 마시는 보리술, 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하는 이들도 창이 막걸리와 흡사하다고 하면서, 맛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티베트 민족인 장족들이 사는 샹그릴라에 독주보다는, 향기로운 과일주나 부드럽게 취할 수 있는 술이거나, 불로초가 담긴 신선주 따위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칭커주 주창의 공장장이나, 샹그릴라 마을 사람들이나, 술 가게의 주인들에게 물어도 도수 낮은 발효주는 모른다했고, 한결 같이 도수 높은 바이주 칭커주만을 소개했다.

예컨대 티베트의 창을 소개한 글 중에 “티베트에서 자라는 보리를 이용하여 만든 술로서 도수는 그리 높지 않지만 마시다보면 취하기도 하는데, 티베트에 살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창을 즐겨 마시는 현지인들을 자주 보았다”는 게 있었다. 그런데 샹그릴라는 중국 바이주의 문화에 철저히 동화되어 있었다.

도수 낮고 탁하고 소박한 칭커주는 어디로 갔을까? 그 술을 찾기 위해 샹그릴라의 옥룡설산을 넘어가보았는데도 맛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술의 탐사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근원이 사라져버리거나, 근원을 알 수 없는 술들이 도처에 있다. 만드는 사람마다, 이용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변형되다가, 그 이동하는 거리가 멀어지고 시간이 길어지면 오래된 기억은 사라지고 만다. 술은 공기처럼 떠다니고, 물처럼 흘러 다닌다. 그래서 지역마다 술이 다르고, 술 문화가 달라진다. 이 때문에 술기행의 묘미는 깊어진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술 마시기 전에 치르는 관행 하나가 있다. 술잔을 받으면,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 약지에 술을 적셔 튕긴다. 한번은 하늘을 향해, 또 한 번은 땅을 향해, 그리고 마지막은 마주앉은 사람을 향해 튕긴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하늘에 고하고, 땅에 고하고, 그리고 상대방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첫잔을 들이킨다. 술자리에서마다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기원하는 것이다. 술에 취하다보면, 우리는 곧잘 술을 창처럼 사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데, 샹그릴라의 칭커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샹그릴라에서 이상향의 술은 맛보진 못했지만, 이상향의 술 문화는 엿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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