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향 샹그릴라에는 무슨 술이 있을까?
글 ․ 사진/ 허시명
중국 윈난 성에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고 한다. 윈난 성에 다녀온 지가 얼마 되지 않다보니, 지진 소식에 등 뒤로 절벽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이상향의 이름을 지닌 윈난 성 샹그릴라 협곡을 지날 때 지진이 없었는데도 돌이 무너져 내려 길이 막힌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그 돌을 하천으로 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그 길을 가면서 샹그릴라가 나올까? 샹그릴라는 이런 곳일까?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이상향이라는데, 어찌 술이 없겠는가? 술을 찾아 샹그릴라를 찾아갔다. 윈난 성 소문난 관광지 리장 공항에 내려,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 샹그릴라로 들어갔다. 그런데 샹그릴라로 입성하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해발 3459미터나 되니, 숨이 얕아졌고, 머리가 조여오기 시작했다. 뛰지 않고 천천히 걸어야 했고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산소가 부족해서 생긴 고산증 증세가 찾아온 것이다. 심호흡을 해야 하고, 목욕은 하지 말아야 하고, 조용히 누워있는 것이 상책인 동네가 어찌 이상향이란 말인가?
그래도 하룻밤을 자고나니 좀 거뜬해졌다. 비로소 술을 찾아 나설 의욕이 생겨서, 중국식 짜장면도 맛을 보고 나서 마을 안에 있는 양조장을 찾아갔다. 양조장 입구에 칭커주창(靑稞酒厂)이라고 쓰여 있었다. 칭커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보리다. 중국인들은 칭커라는 말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 보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내가 쏜다’라는 의미를 지닌 我请客의 请客이 칭커로 발음되다보니, 특히 술자리에서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
주창을 들어서자 왼편 안쪽으로 곡물 자루가 쌓여있었다. 칭커였는데, 생김새는 보리처럼 가운데 줄무늬가 있고 색깔은 수수에 가깝게 검붉었다. 보관 상태가 안 좋은 것인지, 원래 그 색깔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칭커를 옮기는 사람은 여자였다. 족히 40kg 정도 되어 둘이서 마주 잡아도 힘들 정도의 무게였는데, 여자가 거침없이 힘을 쓰고 있었다. 마른 칭커를 통에 붓고, 물을 부어 불리는 작업을 했다. 잘 불려진 칭커는 큰 찜솥에 넣고 불을 지펴 쪘다. 찐 칭커는 넓은 대 위에 펼쳐놓고 송풍기를 틀어 빨리 식힌 뒤에, 분말 형태로 가공된 발효제를 엷게 뿌려서 잘 섞었다. 곡물을 찌는 것까지는 한국 전통술을 빚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큰 나무 솥을 사용하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중국과 한국의 발효 공법의 큰 차이는 한국은 찐 곡물의 분량에 물을 한 배나 한 배 반 정도를 붓고 발효시키는데, 중국은 찐 곡물을 그대로 구덩이에 쏟아 담고 진흙으로 밀봉하여 발효시킨다는 점이다. 이른바 물 없이 고체 발효를 시키는 점이 중국술의 특징이다. 왜 그럴까? 술을 많이 빚기 위해서, 구덩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강렬한 향기를 잡기 위해서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증류주를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공정들인 것만은 분명했다.
발효제를 섞은 칭커를 구덩이에서 20일 정도 발효시킨 뒤에, 칭커를 증류 솥에 넣고 불을 지펴 증류주인 바이주를 내렸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증류솥 위에 얹힌 구리로 된 냉각 장치였다. 유럽에서는 구리 증류기를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한국은 옹기로 된 증류기인 고조리를 사용하고, 증류주를 대량 생산하는 현대식 양조장에서는 스테인리스 증류 솥을 많이 사용한다. 고전적인 증류기는 목통인데, 이곳은 커다란 목통 증류기를 사용하면서도, 윗부분은 구리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차마 고도로 들어온 아랍이나 유럽 문화의 영향으로 짐작되었다.
증류 솥에서 금방 내려진 바이주 맛을 보니, 코끝이 찡할 정도로 독했다. 알코올 도수는 50도가 넘었다. 이 술을 저장용기에 담아두었다가, 찾아오는 손님에게 팔았다. 주창에서는 술을 오래 숙성시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샹그릴라에 오기 전에 티베트 민족이 즐겨 마시는 보리술, 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하는 이들도 창이 막걸리와 흡사하다고 하면서, 맛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티베트 민족인 장족들이 사는 샹그릴라에 독주보다는, 향기로운 과일주나 부드럽게 취할 수 있는 술이거나, 불로초가 담긴 신선주 따위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왔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예컨대 티베트의 창을 소개한 글 중에 “티베트에서 자라는 보리를 이용하여 만든 술로서 도수는 그리 높지 않지만 마시다보면 취하기도 하는데, 티베트에 살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창을 즐겨 마시는 현지인들을 자주 보았다”는 게 있었다. 그런데 샹그릴라는 중국 바이주의 문화에 철저히 동화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