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古典에 나타난 酒道가 正道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간 고리타분하다고 타박이나 받을지 모르지만 그들도 세월이 가면 언젠가는 이해돼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모든 면에서 우리는 온고지신을 하고 있다. 삶 자체가 온고지신인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인 의식주에서 온고지신을 빼 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탓도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먹을 것 입을 것이 많아도 이를 티내지 않고 살았으며 생활이 궁핍한 이웃에게는 티내지 않고 도움을 주며 살아온 순박한 백성들이었다.
논두렁 밭두렁에 차려 놓은 새참이나 대청마루에 차려 놓은 밥상 옆으로 누군가 지나가면 ‘밥 먹고 가라’고 청할 만큼 인심이 후했던 시절도 있었다. 객은 염치불구하고 수저를 들고, 따라주는 막걸리 사발을 주저 않고 받아 마시던 시절이 그립다.
요즘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논두렁 밭두렁에서도 중국집 배달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막걸리 대신 맥주를 마신다니 할 말이 없다.
막걸리를 농주(農酒)라 불렀던 것은 말 그대로 ‘농사일에 쓰는 술’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농삿일하면서 막걸리를 멀리 하니 이제 농주란 말은 잊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농사를 지으면서 막걸리를 마셨던 것은 취함에 있었던 것에 있지 않았고, 잠시의 출출함을 잊기도 하고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함에 있었던 것이다.
술은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복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한다.
옛 어른들은 술의 효용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같이, 한 잔 술에 일의 성패가 달려 있을 수 있다. 그만큼 한 잔 술의 비중은 크다. 술을 권해야 할 때 권하지 않으면 그것도 실패요, 권하지 말아야 할 때 권하면 그것도 실패다. 실례가 아니면 낭패를 보게 된다. 한 잔 술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한 잔의 술잔이 그만큼 예민한 것이다. 술을 잘 다스릴 줄 알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사업이나 인간관계에 두려울 것이 없다.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지혜요 처세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또 이런 말도 있다. 周나라 武王이 스승인 太公에게 물어 말하기를 집안에 소모적인 낭비 요소가 없는데도 부유하지 않은 것은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이 물음에 太公이 열 가지를 말했다. 그 중 9번째가 술에 관한 것이었다.
끽타주권타인(喫他酒勸他人)이 위극우(爲九愚)요<명심보감 입교편(立敎篇)>라 말했다. 남의 술을 마시면서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 아홉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이 새삼스러움은 것은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9번째 어리석음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남의 술 얻어 마시면서 남에게 권하는 정도가 아니라 술사는 사람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비싼 술 마구 시키고, 비싼 안주시키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아홉 번째 어리석음이라는 것이다. 술 권하는 것도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초상집 술 가지고 친구 사귀려고 한다는 말도 있다. 내 돈은 아까워서 술은 못 사고 남의 술 가지고 생색을 내는 사람, 자기는 똑똑한 줄 아나 역시 어리석은 사람이다.
周나라는 기원전 나라다. 이때부터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때나 이때나 술은 결코 쉽게 다룰 음식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올 추석도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향 찾아 성묘도 하고 차례 상도 올려야 한다. 추석에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잘 익은 국화주라도 만나게 된다면 세월아 네월아 하며 술잔이 오갈 것이다.
주부취인 인자취(酒不醉人 人自醉)요 색불미인 인자미(色不迷人 人自迷)라 했다. 술이 사람을 취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술 취하는 것이요, 색정이 사람을 미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 되는 것 이라 했다.
추석이라 지나치게 마시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 저 적당히 마시고 한가위를 즐기는 옛 선조들의 지혜를 배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