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와 손님이 몰트위스키를 논한다, 클래식 바는 이래야 한다
서울 신천역 근처의 ‘미스터 사이몬(Mr. Saimon)’은 꽤 많이 알려진 명소다. 2001년 오픈했으니 햇수로 13년째다. 유명세만큼 찾아드는 발길도 잦다. 이 바는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가 피크. 손님 중 상당수는 위스키 애호가다. 굳이 따지면 전체 손님 가운데 60% 이상이 싱글몰트를 즐기러 온다. 그 같은 분위기는 이곳 안성진(安成振) 사장이 만들었다.
요즘엔 취미생활도 점점 고급화 돼 위스키 관련 지식이 상당한 손님들도 꽤 늘었다. 물론, 바텐더는 그만큼 더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겼다.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는 콘셉트의 메뉴가 그것. 예를 들어 A코스를 선택하면 스코틀랜드의 5개 지역별 위스키를 한 잔씩 맛볼 수 있다. 들을 준비가 돼 있는 손님에겐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원하는 만큼 자세한 설명도 곁들인다.
이 바에는 현재 25개 브랜드의 75가지 싱글몰트가 준비돼 있다. 이달 중 4개 브랜드의 18종이 더 들어올 예정이다. 당연히 정상 유통되는 제품들이다.
분명한 목표는 완벽을 만든다
포항이 고향인 안 사장은 대학 전공으로 호텔경영학과를 택했다. 그즈음 관광 쪽 전망을 밝게 본 때문이다. 졸업 후 호텔 근무를 하던 중 “내가 호텔 지을 것도 아닌데 좀 더 전문직으로 진로를 좁혀보자”고 생각했다. 그때 처음 바를 해보기로 맘먹었다. 현장업무 6년 동안에는 한 체인사업본부에서 인테리어도 배웠다. 그리곤 입지 선정 후 지금의 자리에 오픈 준비를 했다. ‘일부러’ 배운 인테리어 기술 덕에 바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바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그러나 이곳에선 음악이 시끄럽지 않다. 단 둘이 마주보고 얘기해도 음악이 방해되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스피커들이 죄다 천정을 향해 있다.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점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소품이나 집기들도 처음 오픈했을 때의 그것들인데 전혀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는 10년이 지나도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더불어 1년이 지나도 아주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도록 꾸몄다고 했다. “애초 내 이름을 건 바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분명했기 때문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인생 중 2년 정도는 인테리어와 바꾼 듯 보였다.
‘나홀로 손님’도 점점 늘어
“10가지의 맛을 보고 거기서 꼭 특별한 것을 찾지 않아도 돼요. 조급해 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내게 맞는 위스키는 즐기면서 천천히 찾아도 되죠.”
문득 ‘이곳에선 플레어(flair)를 하지 않나?’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안 사장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곧바로 “원래는 했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나 후배 바텐더들이 손님 만족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곤 그날 이후로 “앞으로 플레어는 절대 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그는 플레어에만 빠져 있는 모습이 미워서가 아니라 공부가 뒷전인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30세를 넘기면 플레어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후엔 어떻게 바텐더 생활을 이어갈지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대기업 직원 은퇴 연령이 60세도 되지 않아요. 그에 반해 바텐더는 공부만 꾸준히 하면 70세에도 계속 할 수 있거든요. 그게 매력이기도 하고요. 우리 바엔 저와 공부할 수 있는 후배 바텐더들만 있어요.”
“이제 나만의 가게가 아니다”
안 사장은 “이제 이곳은 나만의 가게가 아닌 게 됐다”고 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손님들이 왔다갔는데, 저마다 자신들만의 추억이 서려 있으니 예전 모습 그대로이길 바라죠. 그중 한 커플은 여기서 소개팅을 했고, 청혼을 주고받았고, 결혼기념일을 챙겨요. 한 아버지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아들에게 이곳에서 주도를 가르치죠. 모두 저와 인생을 같이 가는 사람들이예요.”
문을 여는 저녁 6시에 찾아가 케이크 두 조각을 먹으며 쉴 새 없이 얘기했더니 시계가 다음날 새벽 2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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