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河南省의 아름다운 山川景槪에 관광객들 혼이 빠지다

河南省의 아름다운 山川景槪에 관광객들 혼이 빠지다

 
숭양서원… 중국 4대 書院 중 하나
소림사…한해에 300만명 넘게 찾아
윈타이산…기암괴석 즐비, 산세 험해
룽먼석굴…중국 3대 石窟로 유명세

 

 중국에선 얼마 전 제17회 ‘싼먼샤(三門峽) 국제황하관광축제’를 맞아 황하 유역 9개 성(省) 대표들이 참석, ‘황하유역 9개성관광연맹’을 결성했다. 이들 대표들은 전 세계에 녹색문명의식을 제창하고, 화합과 기술적 협력을 통해 황하(黃河)유역의 관광발전을 기하자는 ‘싼먼샤 선언’을 채택했다.

쿤룬산(崑崙山)에서 발원된 황하는 중국의 쓰촨(四川)을 시작으로칭하이(靑海)~간쑤(甘肅)~닝샤(寧夏)~네이멍구(內蒙古)~산시(山西)~쌴시(峽西)~허난(河南)~산둥(山東) 등 9개 성을 거쳐 황해로 들어간다.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황하는 중국에서 창장(長江) 다음으로 길며, 중국인들에겐 젖줄로 통하는 중요한 강이다. 황하의 길이는 자그마치 5464㎞이며 유역면적은 75만2443㎢에 이른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도 황하에 대해 “모든 것을 멸시할 수 있지만 황하는 멸시할 수 없다”고 했고, 더불어 “물질 만능시대에 변함없이 흐르는 어머니강을 보면서 잃어버린 정신을 되찾자”고 했을 만큼 중국인들에게 있어 황하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황하가 허난성(河南省)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싼먼샤댐이 들어서고부터 황하(누런 강물)는 맑은 물로 변했다. 이 때문에 누런 황톳물이 흐를 것이란 상상은 깨진다. 우리의 한강물처럼 깨끗하고 맑은 물이 넘실대며 흐른다. 싼먼샤시(市)를 흐르는 황하에서 두어 시간 배를 타고 돌아봤지만 금방 떠서 마셔도 될 만큼 물이 맑다.

싼먼샤시는 황하강 유역과 중원지역에 위치한 양사오문화(仰韶文化)의 발원지로 고대 유적지가 많이 분포해 있다. 교통의 중심지이며 인구 220만명, 면적 1만357㎢의 광활한 도시다. 이곳에 댐이 생기기전만 해도 그저 그런 농촌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젠 어엿한 도시로 변했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금광을 비롯한 지하자원이 풍부해 2차 산업이 발달했고, 현재 중국 정부의 관심 속에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동두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지난 18일 시작된 싼먼샤 국제황하관광축제는 기존의 허난성 주최에서 올해부턴 중국 국가급 주최로 격상돼, 이날 전 세계 10대 강을 갖고 있는 나라의 대표들이 참석해 관광축제를 축하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을 대표하는 이집트의 나일강(6690㎞)을 비롯해 브라질의 아마존강, 중국의 양쯔강과 황하, 미국의 미시시피강, 러시아의 오비강과 아무르강, 콩고민주공화국의 콩고강, 나이지리아의 나이저강 대표들은 “황하가 중국 문명의 발산지인 것처럼 각 나라들도 큰 강으로 인해 인류문명이 발달해 왔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황하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 중부에 위치한 허난성은 5000년 중국 역사 속에서 3500년 동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 돼 왔다. 요즘도 중국의 동서남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허난성이 중국에서 중요한 위치로 자리매김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산천경개’가 있고, 중국의 4대 서원(書院) 중 하나가 있을 만큼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8개의 이름난 국가급 관광지와 199개의 문화재는 전 세계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큼 아름답다. 그들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내포돼 있어 이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 권의 역사책을 읽는 느낌이다. 며칠 동안의 팸투어를 통해 보고들은 이야기를 간추려 본다.

 

중국 4대 書院 중 하나인 ‘숭양서원’

북위(北魏)시대인 효문제 8년(서기 484년)에 건조돼 북송(北宋) 인종(仁宗) 때인 1035년에 숭양서원(嵩陽書院)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북송시기의 4대 서원 가운데 으뜸이며 이학(理學)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다. 송대에 이름난 유학자 정호, 정이, 사마광, 법중엄, 주희 등이 모두 이곳에서 학문을 강의 했다고 한다.

서원 안에는 오래된 측백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BC 110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쑹산(嵩山)을 유람할 때 우뚝 솟은 이 세 그루의 측백나무를 보고 각각 대장군(大將軍), 이장군(二將軍), 삼장군(三將軍)으로 봉했다고 전해진다. 이들 가운데 삼장군은 명나라 말기에 불에 타버리고 지금은 두 그루만 남았다. 지금도 싹을 틔우며 살아있는 측백나무의 연륜이 4500여년이나 된다고 하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서원 밖 서남쪽 모퉁이에는 당나라 현종(玄宗) 때인 744년에 건립된 ‘대당숭양관기성덕감응지송(大唐嵩陽觀紀聖德感應之頌)’이라는 비석이 있다. 당나라의 걸작으로 꼽히는 높이 8m의 이 비석은 사면(四面)에 귀신 모양의 돋을새김 장식물이 10개 있다. 아랫부분의 네모난 받침대 표면에는 당나라 때 유행한 사자와 선동(仙童) 등이 새겨져 있다.

 

영화 덕분에 세계적 관광지로 뜬 ‘소림사’

허난성 덩펑(登封)시에 자리잡은 쑹산은 해발 1491.7m로 중국에선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타이산(泰山), 헝산(恒山) 등과 더불어 중국 5악(岳)산 가운데 하나다. 쑹산이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로 서쪽 끝자락인 샤오스산(少室山)에 ‘천하제일명찰(天下第一名刹)’ 소림사가 있기 때문이다.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본산이라는 큰 명예를 지닌 천년고찰이다. 493년 남북조시대의 북위 황제 효문제가 인도에서 온 고승 발타선사(跋跎禪師)를 위해 창건한 절인데, 이것이 소림사의 시초다. 소림사는 ‘샤오스산 숲속에 지은 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수십 년 뒤 쑹산에 온 또 다른 인도 고승 달마(達摩)대사가 소림사의 운명을 뒤바꿨다. 527년경 북위로 온 달마는 쑹산의 한 동굴에 들어가 9년간 면벽(面壁) 참선수행을 했다. 달마는 면벽 수행 과정에서 맹수와 화적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호신술을 익혀 나갔다. 벽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수행하는 참선법과 호신술은 중국인 승려 도육(道育)과 혜가(慧可)에게 전해져 중국 선종과 소림무술로 꽃피우게 됐다. 618년 ‘왕세충(王世充)의 난’이 일어나자 담종(曇宗)을 비롯한 13명의 소림사 승려는 뛰어난 무술로 당시 왕자였던 이세민(李世民)을 구해 난을 진압했다. 뒷날 당태종이 된 이세민은 소림사에 친필 비석과 많은 전답을 하사하고, 승려들에게 술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1500여년간 중국과 함께 흥망(興亡)을 해온 소림사지만, 오늘날 소림사에 남아있는 역사 유적은 그리 많지 않다. 긴 세월의 억겁을 견뎌오는 도중 4차례의 큰 화재로 옛 사찰은 모두 파괴됐다. 1974년 산문을 보수하기 시작한 중국정부는 대웅전을 보수해 1979년 대외에 개방했다. 소림사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후 일반인에게 개방한 최초의 종교 시설이었다.

지난 30년간 중국 최대 관광지 중 하나로 발전하면서 소림사는 지역경제에 큰 공헌을 해왔다. 한 해 동안 소림사를 찾는 관광객 수는 300만 명을 넘는다. 관광객이 내는 입장료와 기타 수입이 엄청나 덩펑시 전체 재정수입의 30%를 차지할 정도다.

덩펑시는 소림사를 브랜드화 해 여러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특히, 1999년 소림사 주지로 임명된 스융신(釋永信)은 ‘소림사의 CEO’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소림사의 상업화와 현대화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쿵푸쇼와 영화촬영, 기념품 판매 등 적극적인 수익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영국․독일 등 외국에 40여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소림사에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오게 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스융신이 소림사를 지나치게 상업화하며 불교를 돈벌이로 전락시켰다는 비난도 하고 있다.

쑹산과 덩펑시 일대에 널려있는 무술학교는 덩펑시 무술산업의 핵심이다. 현재 덩펑시에는 83개의 무술학교가 운영 중인데, 규모가 큰 학교의 경우 학생 수가 1만8000명에 이른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소림사에선 매일 소림무술쇼가 펼쳐지는데, 이보다 더 큰 볼거리는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2억3000만원의 제작비를 들여 직접 연출했다는 ‘선종소림음악대전’이다. 매일 밤 열리는 이 공연은 밤하늘의 별과 어우러진 쑹산이 무대다. 실제 산을 배경으로 500여명의 배우들이 등장해 공연을 펼치는데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사방에 볼거리가 천지다.

그러나 과도한 상업화와 선종 불교의 고유 정신을 망각한 소림사의 행태는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거세다. 무엇보다 선승(禪僧)의 독경소리는 사라지고 관광객의 발걸음과 무승(武僧)의 기합소리만 요란한 오늘날 소림사에서 달마의 꿈과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 게 더욱 안타깝다.

 

기이한 산, 절묘한 물이 흐르는 ‘윈타이산’

허난성 서부 쟈오즈오시(焦作市)에 속한 윈타이산(云台山)은 ‘기이한 산, 절묘한 물, 아늑한 수풀, 유구한 역사’로 표현되는 산으로 유명하다. 험준한 산세와 기암괴석이 즐비한데 협곡의 깊이가 168m에 달하는 홍석협(紅石峽), 중국에서 가장 높은 폭포로 낙차 314m의 운대천폭(云台天瀑), 중국에서 가장 맑은 물을 자랑하는 담폭협(潭瀑峽) 등이 자리하고 있다.

윈타이산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이자 중국 국가중점풍경명승구, 국가5A급풍경구, 국가지질공원, 국가삼림공원, 국가수력풍경구, 국가미후자연보호구 등 다양한 국가급 칭호를 갖고 있다.

윈타이산은 붉은색 협곡이 이어지는 홍석협의 경치 때문에 중국판 그랜드캐니언으로 꼽힌다. 80대의 셔틀버스 노선이 홍석협 입구부터 산 정상까지 이어져 산행은 어렵지 않다. 도보 1시간 코스의 홍석협에는 2명이 겨우 설만한 좁은 절벽길이 이어진다. 바위를 뚫기도 하고 절벽을 깎아 만든 길이 퍽 인상적이다. 홍석협에서 바라보는 윈타이산은 마치 쇠뿔을 엎어놓은 것처럼 뾰족해 사람들이 전혀 오르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데 이 산에 셔틀버스가 오르고 있는 것이다. 총 23개의 터널은 나사처럼 뾰족한 산을 휘감고 있다. 5년 전 개통된 터널은 입구와 출구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많은데, 이런 터널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허난성 관할은 19개로 더 이상 가보지 못해 아쉬웠다.

 

중국 3대 석굴로 꼽히는 ‘룽먼석굴’

룽먼석굴(龍門石窟)은 허난성 뤄양(落陽)의 남쪽 14㎞ 지점에 있다. 북위~초당시대의 불교석굴군(群). ‘이궐(伊闕)’이라고 하는 석회암 암산에 있으며 동굴은 1352개, 불감은 785개 있다. 북위의 뤄양 천도(494) 후 곧 조영이 개시됐으며, 빈양삼동으로 대표되는 북위굴에는 운강(雲岡)석굴과 달리 탑묘굴(塔廟窟)이 없고, 존상은 중국식 복제(服制)에 의해 상현좌(裳縣座)가 발달했다. 초당시대에 석굴 조영이 다시 성하해져서 봉선사동(奉先寺洞)의 비로자나불 대불은 용문 전체의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초당 말에는 서산 남단까지 개척하고 동안까지 미쳤으나, 성당 이후는 쇠퇴했다.

룽먼석굴은 중국의 불교문화뿐만 아니라 빼어난 건축․조각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룽먼산과 샹산(香山)의 암벽을 따라 약 1.5㎞에 걸쳐 벌집처럼 늘어선 크고 작은 굴 안에 불상이나 불탑이 조성돼 있다. 불상은 10여m 넘는 것부터 몇㎝에 불과한 작은 것까지 실로 다양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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