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막걸리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당진 막걸리’

허시명의 명주 여행

 

막걸리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당진 막걸리’

 


당진은 국가지정문화재인 면천두견주가 있어 술로 이름을 얻은 고장이다. 그 기운 때문인지 당진에 있는 막걸리 양조장들도 만만치 않은 이력을 지니고 있다. 순흥면의 미담 막걸리가 2010년 우리술 품평회의 생막걸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고, 면천 샘물 생막걸리는 면천 두견주 옛 양조장에서 빚어진다.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하여 산학연대로 개발된 왕매실막걸리는 2012년 우리술 품평회의 생막걸리부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당진 생탁주는 당진탁약주양조장의 옛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서 새로 만들어졌으며, 80년 전통의 신평양조장은 2012년 우리술품평회의 살균 막걸리부분에서 대상을 받았다. 쟁쟁한 막걸리 양조장들이 서해대교 건너 당진 땅에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9년부터 막걸리 바람이 분 이래로, 막걸리의 명산지로 포천, 전주, 부산산성마을 들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근자에 새롭게 부각되는 고장이 있다. 바로 서울에서 서해대교 건너면 다다르는 당진시다. 인구가 늘어나서 2012년에 당진군에서 당진시가 된 곳이기도 하다. 이고장의 막걸리 양조장 다섯 곳이 벌이는 각축전을 보고라면, 한국 막걸리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당진시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양조장은 당진탁약주양조장이다. 당진시 서문1길 23-13번지에 있다. 그런데 철제 정문이 굳게 닫혀 있고, 잠긴 자물통은 녹이 슬어있었다. 양조장 마당에는 인기척이 없고, 철문 안으로 뒤집힌 스테인리스 발효통이 보였다. 무성하게 가지를 뻗은 향나무 밑으로 모란 꽃잎이 떨어져 있었다. 술 받으러 왔던 동네 사람들이 향기를 맡았을 모란이 이제는 봐주는 사람이 없었다.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니 양조장이 문을 닫은 지 5년쯤 되었다고 하니, 막걸리바람이 불기 전에 양조장은 문을 닫은 셈이다. 조금만 더 견뎠으면 운명이 달라졌을 텐데 아쉬움이 들었다.

양조장 근처 상점을 찾아가보니, 당진에서 생산된 막걸리가 네 종류나 있었다. 성광주조의 미담막걸리, 순성왕매실영농조합법인의 왕매실막걸리, 당진면천주조의 면천샘물 생쌀막걸리, 당진양조장의 당진생탁주 들이었다. 당진 신평양조장에서 빚은 백련막걸리를 제외하고 모두 모인 상태였다. 상점 주인에게 “여기는 막걸리 종류가 많아요?”라고 묻자, 주인은 양조장 근처라서 막걸리가 잘 팔린다고 했다. 그래서 “양조장 문 닫았잖아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그 양조장 아래편으로 새로운 양조장이 생겼다는 답이 왔다.

새로 생긴 양조장은 당진1동 서문1길 20-5번지에 설립된 당진양조장이었다. 막걸리 상표에는 당진 왜목마을의 일출 장면과 고개 숙인 벼이삭이 그려져 있었다. 양조장을 운영하는 이은석 씨는 당진탁약주양조장이 있는 마을에서 성장했다. 당진탁약주양조장으로 술받으러 아버지 심부름을 다녔는데 몇 년 전에 양조장이 문을 닫은 뒤로 자기가 직접 차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은석씨는 홍성군 문당리에서 내포 막걸리를 만들었던 경험을 갖고 있었다. 문을 닫은 당진탁약주양조장을 인수할까도 했는데, 그 땅에 재개발 논의가 있어서 바로 부근에 양조장을 세웠다고 했다. 그가 2011년에 양조장을 차리면서 구입했던 소품 하나는 짐 싣는 자전거였다. 예전 말통 막걸리를 배달하던 시절, 양조장 사람들이 술을 싣고 달리던 자전거였다. 그 자전거를 타고 그는 아침이면 당진 시내로 막걸리 배달을 다닌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네 어른들로부터 향수 어린 막걸리를 다시 만들어준 것에 대해 “고맙다, 잘 했다”는 격려를 듣는다고 했다.

당진시에서는 가장 오래된 양조장은 신평양조장이다. 신평양조장은 삽교천 방조제에서 5km쯤 떨어진 당진시 신평면소재지에 위치해 있다. 1933년에 문을 열었으니 근 80년의 역사가 되었다. 양조장은 벽돌로 외벽을 한 ㅁ자형 목조 단층 건물로 보온 효과를 높였다. 양조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양조장 사무실이 있다. 술 주문하러 온 사람들, 술 배달 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 있는 창이 딸린 방이다. 미닫이문이 달린 고풍스런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공간이다. 신평양조장은 햅쌀 막걸리 바람이 불기 전인 2008년부터 당진 해나루쌀로 술을 빚고, 연잎을 재료로 사용한 하얀 백련 막걸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페트병뿐 아니라 병에 담긴 제품까지 내고 있는데, 서울 강남의 가로수길과 홍대 앞에 막걸리를 판매하는 전문 주점 ‘셰막’ 체인점까지 낸 곳이다. 백련 안에 선비가 앉아있는 상표는 충남 농특산물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골막걸리, 시금털털한 막걸리의 인상을 털어버리고, 세련되고 기품있는 막걸리를 내는 양조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담 막걸리를 빚는 성광주조는 충남 당진시 순성면에 자리 잡고 있는데, 2009년에 설립 허가를 받고, 2010년 5월에 첫 상품을 출시한 신생 양조장이다. 그런데 양조장을 설립하여 상품을 출시한 첫해인 2010년 전국대회 막걸리 품평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신생 양조장이 80~90년 전통을 지닌 양조장과 전국유통을 하는 대형 양조장의 술을 제치고 당당히 최고상을 받은 것이다.

최고상을 받은 연유를 살펴보니, 성광주조의 막걸리를 빚는 이는 누구보다도 막걸리를 많이 빚어본 이였다. 양조장 대표 성기욱 씨는 1974년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탁주제조협회에 입사하여 2010년까지 근무했다. 서울탁주에서 생산하는 장수막걸리의 품질개발과 관리를 책임지는 일을 해왔다. 장수막걸리에서 퇴직할 무렵까지 그가 한 일은 연구소를 관리하고, 서울에 일곱 군데에 산재해 있는 장수막걸리 제조장의 품질을 관리하고 균질한 누룩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성기욱 대표는 당진에 내려와 가족과 함께 술을 빚고 있었다. 누룩을 만드는 것부터 발효와 제성하는 것까지 그의 손끝을 거쳐서 술이 나온다. 성광주조는 작은 양조장이지만, 성광주조에서 나온 막걸리는 결코 작은 술이 아니다.

당진시에서 2012년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팔린 막걸리는, 예전에 면천두견주 제조장으로도 사용되었던 당진면천주조에서 만드는 면천샘물 생쌀 막걸리다. 면천 샘물의 명성도 있지만, 술이 부드럽고 향긋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역 내의 인기가 급상승한 막걸리다.

순성면의 왕매실 막걸리는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하여, 산학연대로 만들어진 제품이다. 고려대학교와 신성대학교의 기술 자문을 받아, 1일 1만 7천병을 생산할 수 있는 현대화된 시설을 순성왕매실영농조합법인이 갖추었다. 매화는 순성면 농가에서 2002년부터 심기 시작하여 현재는 10만 그루가 넘는다. 매실막걸리는 쌀로 빚은 술덧에 매실 원액을 적당량 넣어 만든다.

당진 막걸리 양조장들은 제각기 특색을 지니고, 당진 시내와 수도권 상권을 공략하고 있다. 그런데 당진 막걸리들의 장점은 저마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하고, 이를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평양조장과 당진양조장은 당진의 브랜드인 해나루쌀을 사용하고 왕매실영농조합법인은 당진 매실을 사용하고 있다. 면천 샘물 막걸리는 면천 두견주를 탄생시킨 샘물을 강조하고 있다.

요즘 막걸리 유통은 운송수단의 발달로 지역 경계가 사라졌다. 냉장고와 냉장차가 생겨나면서, 외지의 막걸리가 당진 안에서도 팔리고, 당진 막걸리가 외지로 나가고 있다. 지역의 경계가 없어졌지만, 당진 막걸리에는 당진의 쌀과 당진의 바람, 당진의 물이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어쩌면 당진 막걸리는 당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여행지 정보

 

양조장 정보
당진양조장 : 당진시 당진 1동 서문1길 20-5번지 041-353-3326
신평양조장 : 당진시 신평면 금천리 350-1번지 041-362-6080
순성왕매실영농조합법인: 당진시 순성면 매실로 398 번지 041-354-1205
당진면천주조: 당진시 면천면 동문1길 11-23번지 041-356-037
성광주조: 당진시 순성면 봉소리 839-3 번지 080-357-2123

* 막걸리 택배 주문 가능.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