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손맛이 살아 숨 쉬는 양촌양조 李東重 대표이사
100년의 역사를 이어가는 논산 양촌양조장
‘송광소주’ 복원한 증류식 소주 ‘여유’에서는 발효향이 살아 있다
‘논산’하면 떠오르는 것은 훈련소다. 한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논산훈련소(육군 제2훈련소). 물론 지금은 많은 병력이 각 지역 사단에서 훈련을 받고 있어 논산훈련소에 대한 추억은 덜 할 것 같다. 그렇지만 꼰대 소리를 듣는 기성세대들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 대한의 남아로 거듭 태어났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기자 역시 논산 훈련소 출신이다.
훈련병 시절, 선배들 충언(?)에 의하면 당시 독도법 훈련을 받는 날은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날이라고 했다. 지역 아주머니들이 훈련병들에 접근하여 막걸리 잔술을 팔았다. 물론 불법인줄 알지만 조교들도 이 날만은 슬쩍 눈감아 주어서 막걸리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몰래 마셨던 막걸리가 어느 양조장 술인지도 모르고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맛있는 술이었다고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먹었던 막걸리가 혹 훈련소와 인접해 있는 양촌양조장(71. 대표 李東重)이 빚은 막걸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양촌양조장은 논산훈련소가 생긴 1951년 11월보다 훨씬 전인 1923년 故 이종진(현 이동중 대표의 조부)씨가 가내주조를 시작해 1931년 현재의 양조장을 설립하고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역사가 오래된 양조장은 더러 있다. 그런데 그 동안 양조장 건물들을 현대식 건물로 개조하면서 옛 양조장 건물은 철거된 곳이 많은데 양촌양조장 건물은 1931년 지은 옛 건물 그대로다. 집을 지을 때 상량식(上樑式)을 했던 대들보엔 소화6년신미6월초9일(昭和六年辛未六月初九日)이란 글자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건물로는 현대식 건물이었을 양조장은 반 지하에 발효실을 두었다. 온도의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로 보인다. 지금도 건축 당시의 모습 그대로니 90세를 넘긴 나이다. 발효실 입구에는 양조장 건물을 지으면서 팠던 우물이 있는데 아직도 이 우물물을 이용해서 술을 담근단다. 물론 6개월마다 수질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통과하지 못한 적은 없다고 하니 양촌양조장 술맛이 좋은 것은 혹 이 우물물 때문은 아닐까. 술맛은 물맛이라고 하지 않던가.
주류박람회에서 인기 끈 양촌의 증류식 소주 ‘여유’
기자가 양촌양조장을 방문 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10월 ‘찾아가는 양조장’선정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했었다.<삶과술 211호(2016. 10. 25)게재>
그 때도 많은 이야기를 이 대표로부터 듣고 감명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된 ‘2022 서울국제주류 박람회’와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aT센터에서 개최된 ‘2022대한민국 막걸리엑스포’에 양촌에서 출품한 증류식 소주 ‘여유’가 많은 참관객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다시 논산에 위치한 양촌양조장을 찾게 된 것이다.
해묵은 역사가 그렇듯이 외향적으로는 변화가 없는 양조장 건물. 아주 오래전에는 장터 사람들로 번잡했을 것 같은 너른 장터에는 양촌양조장만이 버티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런 한적한 시골 양조장을 뻔질나게 찾아 드는 사람들은 미디어 쪽에서 찾아오는 기자들이거나 전통주를 아주 좋아하는 마니어들, 그리고 양촌이 생산하는 술을 배달하는 사람들이대부분이다.
기자가 양촌을 찾던 날 서울지역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는데 논산으로 접어드니 파란 하늘에는 하얀 뭉게구름이 웃고 있었다.
때맞춤 양조장에서는 삼양주(三釀酒)에 첨가할 찹쌀 고두밥이 완성돼 덧술 작업이 한창이다. 한 덩어리 집어 맛을 보니 약밥처럼 맛나다.
‘여유’소주에서는 기분 좋은 발효주 향이 난다
양촌양조장에서 올 초부터 출하하고 있는 증류식 소주 ‘여유’(375㎖. 19%, 25%, 40%)에서는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과일향이 그대로 유지돼 이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술이다.
일반적으로 증류식 소주에서는 이른바 화덕 냄새가 나서 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유’에서는 그런 냄새 대신 향이 난다.
좋은 쌀과 누룩, 맛좋은 물로 담근 막걸리에서는 참외나 바나나 향이 올라온다. 이 향이 증류과정에서 사라져 인공적으로 향신료를 첨가하는 증류주도 있지만 ‘여유’는 절대로 인공 향을 첨가하지 않고도 발효과정에서 올라오는 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게 100여년 역사의 양조장만이 갖고 있는 노하우가 아닐까.
이 대표는 오래전부터 1956년, 양촌양조장에서 ‘송광소주’으로 출시했던 전통 방식의 소주를 복원하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소주 개발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 “최근 전통주시장에서 증류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며 “바쁜 현대인들에게 ‘여유’ 한 잔을 선물해주자”라는 의미를 담아 소주를 개발하게 되었고, 술 이름도 ‘여유’로 작명했다고 했다.
‘여유’는 시대에 맞게 복원한 프리미엄 급 증류식 전통 소주인데 좋은 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좋은 재료의 선택이다.
증류식 소주를 내리기 위해서는 우선 막걸리를 담가야 한다. 양촌에서는 고급약주를 빚을 때 사용하는 백국(白麴:밀가루에 찹쌀가루를 더 넣어 빚은 누룩)과 논산지역에서 생산되는 쌀로 막걸리를 빚는다. 밑술을 담근 지 5일 만에 덧술을 하고 10일간 더 발효시켜 막걸리가 완성되는데 총 15일이 걸린다. 이양주(二釀酒)로 완성된 18%의 막걸리를 1,000ℓ가 넘는 증류기(減壓式)로 증류하면 45%의 소주 약 370ℓ를 얻게 된다.
이 소주를 1년간 저온 숙성시켜 출하하게 되는데 45%의 원액 소주에 일체의 첨가물을 삽입하지 않고 가수(加水)만으로 40%, 25%, 19%의 소주를 생산한다.
그런데도 깊고 부드러운 풍미와 함께 독특한 과일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곡물 특유의 달콤한 향을 느껴지지만 실제로 달지 않은 심심한 듯한, 복합적인 향이 매력인 술이다.
3년여 준비기간을 걸쳐 출하되고 있는 ‘여유’소주 가운데 가장 대중성 있는 소주는 25% 소주. 그렇지만 찐 주당들은 역시 40% 소주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일부 고객 가운데는 병도 예쁘지만 글자가 예뻐서 집에 소장하고 싶을 정도라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여유’소주의 또 하나 특징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손쉽게 사서 마실게 하겠다는 이 대표의 신념이 있어서다.
▴증류식소주여유19%:11,200원▴여유25%:12,900원▴여유 40%:25,800원.
‘여유’ 상표는 서예가 강병인 씨 작품
인터넷 시대에서 온라인 판매는 상표 디자인이 좌우 한다는 말이 있다.
이동중 대표는 선견지명이 있어서일까. ‘양촌’막걸리를 출시하면서 ‘양촌’ 의 상표 디자인을
디자이너 이태희 교수에게 의뢰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2014년 10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독일 ‘레드닷 디자인상(Red Dot Design Award)’을 양촌양조장이 받아 막걸리업계를 놀라게 했다.
그 동안 국산 맥주나 소주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사례는 있었지만, 국산 막걸리가 상을 받는 다는 것은 생각을 뛰어넘는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를 보고 이동중 대표는 “‘막걸리는 촌스럽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지방 막걸리가 품질은 물론 디자인 또한 대기업 막걸리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걸 알리려는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여유’소주를 출하하면서 상표를 서예가 강병인 씨에게 맡겼는데 좋은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상표 디자인과 주병은 전통주업계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이다. 인터넷 판매에서 맛은 볼 수 없으나 상표가 예쁘고 술병이 잘 생겨야 구매욕구가 생기기 때문이다.
양촌막걸리의 디자인은 단순하면서도 전통의 현대화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와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다는 평을 함께 받기도 했다.
현재 ‘여유’는 일부 종합주류도매장에서도 판매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 판매로 이루어진다.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쌀로 빚은 청주는 미국에 수출도
엄청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양촌양조장이 생산하고 있는 알코올 14% ‘우렁이쌀 청주’는 2019년부터 미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양촌양조장이 전통주업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우렁이 쌀로 막걸리를 빚었다는데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양촌이 출하하고 있는 주병에는 ‘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햅쌀로 빚은 생막걸리’하는 리본이 붙어 있다.
내용인즉, “양촌 우렁이 쌀 손 막걸리는 충남 논산시 은진면 와야리 전일영 님의 농가와 우리 술의 상생을 도모하고자 양촌양조장에서 빚은 믿을 수 있는 수제 막걸리입니다.”
“‘우렁이 쌀’이 뭐여?” 이런 질문이 나옴직하다.
이는 비료나 농약 대신 우렁이(일반식용 우렁이와는 다름) 종패를 논에 뿌려두면 농약을 친 것보다 훨씬 벼가 잘 자란다. 유기농 농법에서는 필수 농법이다. 이렇게 재배한 쌀은 일반 쌀 보다 비싸다. 하지만 밥맛이 좋고 술을 담그면 술맛도 좋다.
‘우렁이쌀 청주’는 이런 쌀로 삼양주 기법으로 담근 술이다. 60일간 자연 발효와 저온 숙성을 거쳐 멸균 처리되어 유통기한이 길다. 이 ‘우렁이쌀 청주’는 2020년과 2022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청주·약주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술은 투명하고 옅은 금색 빛을 띤다. 저온 숙석된 술에서는 특유의 달큼한 참외향이 난다. 청주는 원래 제주로 개발된 술인데 시원한 단맛부터 시작해 기분 좋을 정도의 산미가 혀를 스친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삼킨 뒤 입 안에 달콤하고 쌉싸래한 여운이 남는다.
인터넷에는 우렁이쌀 청주를 맛본 사람들은 “그 어떤 와인보다 간이 된 한식에 잘 어울리는 깔끔한 감칠맛이 일품” “마실수록 질리지 않는 우아한 맛” 이란 평을 남기고 있다.
양촌양조장 이동중 대표는 지역민들을 우해 공급되는 양촌생막걸리(6%)는 저렴하게(1,500원)공급하고 있다.
그 밖의 술은▴양촌생동동주(10%):3,000원▴양촌우렁이쌀손막걸리(7.5%):3,000원▴양촌우렁이쌀 손 막걸리 드라이:3,700원▴양촌 우렁이쌀 청주:16,000원에 출하하고 있다.
양조장이 위치하고 있는 양촌면 매죽헌로는 고즈넉한 산자락이 마을을 감싸고 해맑은 천이 흐르는 논산의 작은 마을이다.
100년 동안 3대에 걸쳐 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지형적인데도 원인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6․25 같은 전화(戰禍)를 겪지 않은 것은 마을이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는 못되더라도 외적이 모르고 지나칠 정도의 시골 마을이다.
양조장 뒷마당에는 과거 1960년대 막걸리 제조를 위한 항아리, 막걸리를 짜던 압착기와 당시의 숙성도구, 술독 등 선조들이 사용하던 술 만드는 도구들이 박물관처럼 전시되어 있다.
특히 술춘(많은 양의 술을 멀리 운반할 목적으로 옹기로 만든 용기)이 즐비하다. 술춘은 많은 양의 술을 멀리 운반할 목적으로 만든 용기이며 옹기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술통과 다르다. 술춘은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져 쓰였으나 너무 무거운 까닭에 오래 사용되지 못했다.
양촌양조장은 술항아리를 비롯한 술춘을 이용하여 증류식 소주를 장기 보관 숙성시켜 20년 30년짜리 명품소주도 개발 중이라고 했다. 그 때 그 술을 취재할 수 있을까. 욕심이겠지….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