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주류업계 왜 말 한마디 못하나

주류업계 왜 말 한마디 못하나

 

 

지난 해 한 메이저 급 신문사가 ‘주폭(酒暴)’문제를 끈질 게 다루었다. 사회에 만연돼 있는 주폭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가를 새삼 느끼게 한 시리즈는 각계각층으로부터 주폭을 근절하자는 공감대를 끌어 내놓는데 성공한 기획이었다고 본다.

급기야는 올해부터 서울 시내버스 외부광고에 주류광고를 못하도록 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유인 즉, 사회 미풍양속에 반하거나 시민 정서에 해를 끼치는 광고라는 것이다.

술이 어느 순간부터 미풍양속에 해를 끼치는 못된 음료수로 전락하고 있으며, 술 취한 사람은 사회의 적으로 몰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는 술을 밥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이나 종교적 같은 이유로 인해 술을 멀리하는 사람도 있고, 술을 먹고 싶어도 건강이 따라주지 않고 체질적으로 알코올 분해를 하지 못해 평생 술 한 잔을 먹지 못한 사람도 있다.

술은 인류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해온 음식이다. 술을 구태여 음식이라 칭하는 것은 우리의 술을 만드는 원재료가 거의 곡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술을 마신다’기 보단 ‘먹는다’는 표현을 써왔다.

어쨌거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축하 할 일이 있거나 명절이면 술 한 잔 하는 것이 보편 적으로 행해지는 일상사다. 그 만큼 술이란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과 같이 하는 음료수다.

그런데 술의 긍정적인 면은 사라지고 역기능만 부각되는 오늘의 현실을 놓고 이를 대변할 만한 주당들은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또한 술을 만들어 파는 것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양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주류업계에 너무 화가 난다.

진짜로 술이 나쁜 것이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라면 이사회에서 술을 근절시키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신입생 오리엔테션에서 술이 지나쳐 목숨을 잃는 사례가 가끔 있었다하여 숫제 술 한 방울도 없이 행사를 치른 것이 대단한 뉴스로 떠오르는 것이 반드시 오른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자고로 우리의 음주 문화는 선비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말하자면 어느 정도에서 자족하며, 아랫사람들이 술을 마실 때도 예절과 도리가 그 근간이었다. 이런 음주문화에 대한 홍보가 우선돼야 주폭문제를 근절시킬 수 있는 것이지 이미 습성화된 술버릇을 고치기란 어려운 것이다.

가령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공백기에 음주문화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성인이 되면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는데 술에 대한 올바른 상식, 예절 같은 것을 특강을 통해 가르친다면 술을 모르고 마시는 것 보다는 났지 않을까.

술은 비단 어제 오늘에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선 중종 11년 별시문과 책문의 주제는 ‘술의 폐해를 논하라’였다고 한다. 술을 마시느라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술에 중독돼 품위를 망치는 사람도 늘고 술로 흉년 곡식이 다 없어질 지경에 있다며 대책을 물은 것이다.

이 시험에서 을과로 급제한 김구는 술은 폐해도 크지만 쓰임새도 많다며 법이 아니라 마음으로 구제해야 한다고 대책을 제시했다. 술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닌 만큼 지배층이 간절한 마음으로 풍속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술의 폐해를 지적하는 책문과 대책으로 만난 중종과 김구 역시 흉금을 털어놓을 때는 술의 힘을 빌렸다. 중종은 잠 못 이루는 밤 술병을 들고 찾아가 임금과 신하의 예를 버리고 서로 벗으로 상대했으며 깊은 밤 둘은 마음이 가는 대로 술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옛 어른들은 술 酒자를 풀어 병아리가 물을 마시듯 조금씩 음미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술은 酉時(오후 5~7시)에 먹고 그쳐야 하며 戌時(오후 7~9시)까지 이어지면 개가 되고 다시 亥時(오후 9~11시)까지 뻗치면 돼지처럼 짐승이 된다고 경계했다.

설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설 차례를 지내고 나서 자식들과 음복주를 나눌 때 술에 대한 올바른 지식도 함께 나눴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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