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昨醉가 未詳인 상태로 조종간을 잡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昨醉가 未詳인 상태로 조종간을 잡다

 

 

조선 후기의 시인이자 한어역관(漢語譯官)인 이상적(李尙迪․1804~65)은 술 사랑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주신(酒神)이 왕림한 다음에는 슬픔이 찾아오죠. 훌쩍거리며 울게 됩니다. 기쁜 마음이 들면 으아 으아 노래도 하고요. 말을 아끼지 않기에 욕설도 나갑니다. 미친놈 소리 듣지요. 흥이 나면 춤도 춥니다. 죽림칠현에 내가 빠져 팔현이 되지 않았고, 팔선에 내가 끼지 않아 구선이 되지 못한 겁니다.”(次悲而哭啾啾 喜而歌鳥鳥 或放言罵座人謂之狂 或高冷起舞 自以爲樂 七賢不足八賢 八仙不足九)

‘죽림칠현(竹林七賢)’은 중국 진(晉)나라 초기 죽림에 모여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산도(山濤)․왕융(王戎)․유영(劉伶)․완적(阮籍)․완함(阮咸)․혜강(康)․향수(向秀) 등 7명의 선비들을 말한다. 이들은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숭상했다. 주당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인물들이다.

술은 사람들을 한없이 즐겁고 홀가분하게 해준다. 적당한 취기 속에 정(情)은 피어오르고, 신체․정신적으로 쌓인 온갖 찌꺼기들을 씻겨주니 자주 마시게 된다. 이것이 술이 지닌 매력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권태와 피로, 흥분, 우울, 그리고 좌절감 속에서 허덕여야 하는 수많은 현대인들은 한때나마 얽매인 속박들을 털어보려고, 혹은 술이 술을 부르는 그 술의 마성(魔性)에 이끌려 온통 술에 마음을 뺏기고 몸을 맡기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술을 예찬한 독일의 작곡가 브람스는 암으로 운명하기 전 한 잔 술을 들이키고는 “아, 그 맛이 너무나 좋구나, 고맙기 그지없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났을 만큼 죽어가면서까지 술을 마셨다.

이상적은 “술병이 비었다면 술독의 수치”라면서 술독이 빌 때까지 술을 마셨다니, 오늘날 표현대로라면 2, 3차는 보통이요 4~5차까지 했을 듯싶다.

보통은 소주로 시작한 술자리가 파하고 나면 입가심으로 맥주 딱 한 잔만 하자는 꾐에 빠진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되는 것은 시간문제, 이른바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돈짝만큼 작아 보이면 단란주점으로 직행한다. 혹은 동네 포장마차에서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는 주당들도 흔하다.

이렇게 마시고도 아침에 멀쩡하다면 이는 보통사람이 아니다. 오장육보가 쇠가죽으로 만들어졌든지, 아니면 비닐호수로 돼 있지 않고서야 배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고 속은 쥐어짜듯 쓰리다. 소위 작취가 미상(昨醉未詳)인 상태로 출근 채비를 하며 “다시는 안 마시겠다”고 벼르는 것이 주당들의 작심이다.

어젯밤 마신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출근하는 일이야 보통 직장인들에겐 다반사지만, 작취미상인 상태가 돼선 절대 안 될 사람들이 있다. 많은 인명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의 책임자들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백여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여객기 조종사들 중 일부가 술이 덜 깬 상태로 비행기를 운전하려다 당국에 적발돼, 항공사들에 비상이 걸렸다”는 뉴스가 나오면 가슴이 섬뜩 해진다.

조정사든 선장이든 운전자든 술을 마시고 조정간이나 핸들을 잡는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 대중 교통수단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술이 덜 깬 상태에서 핸들을 잡는 다는 것은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들도 조정사들의 음주문제가 부각 되었을 때 자체적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법정 기준인 0.04%보다 강화된 0.02%로 조정하고, 항공법에선 운항 12시간 전에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있지만 일부 조종사들은 이를 잘 지키지 않는 모양이다.

전문가들은 조종사가 혈중 알코올 농도 0.04% 이상인 상태로 비행을 하면 이·착륙에 대한 판단이 흐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앞으로 조종사들은 각별히 신경 써가며 술을 마셔야 할 것 같다. 비단 조종사가 아니더라도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한두 잔만 마시는 등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착한 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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