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음주문화
조 성기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경제학 박사)
도심에서 맥주병을 들지 않고 길을 걷는다면 이방인이 된 기분
독일인은 생활규율이 엄격하고 매사 격식과 진지함을 중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외가 있다. 술에 취한 경우이다. 월드컵 축구에서 브라질에 패하자 만하임의 시민 1명이 술로 인해 죽었고, 전 역에서 900여명이 난동 죄로 체포되었다. 함부르크에서는 경찰에게 돌과 병 조각을 던졌다. 라이프치히에서도 폭력이 발생했고, 자동차나 점포 파손행위도 있었다.
최근에는 많이 변했지만 유럽에서 독일은 오랫동안 음주문화가 좋지 않은 나라로 악명이 높았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근엄한 독일인이 만취 난동이라니.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술문제에 관대하다는 것이다.
그들도 취한 상태에서는 술집이나 길거리에서 고성방가를 하고, 싸우고, 심한 사고나 죽음에까지 이르는 사례가 발생한다. 사실 이 좋지 않은 음주문화는 로마시대 이래로 독일에서 가끔 발생한 바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금요일 저녁 퀠른 시내에 가보라! 도심에서 맥주병을 들지 않고 길을 걷는다면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치 맥주의 사제가 집정을 하는 분위기다. 공공정소 음주 규제가 없는 서구의 도시는 많지 않다. 음주와 만취에 대해 허용적 태도는 독일사에 어김없이 이어 내려온 사실이다. 지금도 그 문화가 존재한다. 그래서 독일사에는 와인이나 맥주, 증류주의 폐해에 대한 자료가 그득하다.
종료개혁을 주도한 마틴 루터는 음주자들을 ‘포도주 푸대’라는 의미를 가진 말로 ‘술고래(Weinschlauch)’라고 불렀다. 또한 “음주는 페스트와도 같다. 신이 노해서 우리에게 보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외부의 압력, 경고조치, 처벌, 그리고 개신교적 근검정신만이 개선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 중반에 증류주 생산이 늘자 문제가 커졌다. 19세기 후반에는 카우츠키가 맥주를 통제하자는 제안을 했다. 공산주의 사상가 엥겔스는 “예전에 볼 수 있던 안락과 일시적 무절제가 이제 칼부림, 살인사건이 빈발하는 폭력적이고 황량한 잔치로 변했다.”라고 적었다. 그로 인해 도덕재무장운동이 생길 정도였다. 문제가 컸었던 것이다.
음주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라인밸리, 쉬바비아, 팔라티나트 지방 등의 와인생산지역, 엘베 동부의 증류주 생산지역, 바바리아, 베를린, 기타 서부의 맥주생산지역 등 지역별로 음주형태가 달랐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전 되면서 지역 간 사회계층간 음주문화의 차이는 점차 비슷해졌다. 물론 지역별로 각기 자기 지방의 술을 선호하는 경향은 유지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수준이 술소비 증가의 포화점일까?
독일의 알코올소비량 통계를 보면 1인당 소비수준이 여러 변수에 영향을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가 크다는 거다. 상황에 따라 독일인들은 술소비를 크게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급격함을 알 수 있다. 100% 순 알코올을 기준으로는 1900년대에 1인당 소비량은 10리터 정도였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때 급격히 하락했다. 1920년대에는 경제적인 문제로, 1930년대에는 사회적인 문제로 덜 마셨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전쟁 후 1950년대에 음주량이 3.3리터 정도로 회복되었다. 그렇지만 1960년대에는 다시 10리터 이상을 마셨고, 1970년대 중반에는 15-17리터 정도의 고도 음주수준을 자랑한다. 그 이후 꾸준히 줄었지만 2003년-2005년 평균자료로도 12.8리터의 높은 음주량이다. 세계보건기구는 12-13리터에서 정체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독일의 경우 평균 12리터 수준에서 30년 이상 장기 정체 중이다. 이 같은 정체상황은 우리나라와 유사하다. 우리는 9리터에서 정체되는 통계를 가졌다.
1인당 연간 음주량 (1900년-1990년) 단위 : 리터
주종 |
1900년 |
1950년 |
1960년 |
1970년 |
1980년 |
1990년 |
맥주 와인 증류주 |
125.1 6.7 11.1 |
38.1 5.1 3.0 |
95.6 16.0 5.1 |
141.1 19.5 7.9 |
145.7 26.6 8.8 |
143.1 26.1 6.2 |
주종별 자료를 보면 독일인은 저도음주를 주로 마신다. 맥주, 와인, 증류주 순이다. 그 순위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험을 볼 때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가 되면 음주소비량이 줄 것인가?”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소득수준 증가와 함께 음주량도 증가하였다. 여성들도 남편들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집에서 주로 마셨지만 점점 음식점이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는 소득증가와 소비량증가의 관계가 명시적이다. 그런데 1970년대나 1980년대, 그 이후에는 소득이 더 늘어도 소비량은 정체한다. 즉 술소비량은 늘어나는 것이 한계를 보인다. 독일 사람들은 전쟁 때 절주를 하였고, 전후 경제성장과 함께 음주량이 급팽창한다. 이러한 징후는 사실 국가 간 차이가 없는 보편적 현상이 아닐까.
독일인의 선호 주종도 다양하고 변화한다
오늘날은 맥주가 누구나 마시는 대중주다. 각 지방의 특산 주는 그 지방에서 즐겨 마신다. 와인지방에선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고 증류주 지방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자주 마시는 사람이나 정기적 음주자들은 맥주를 가장 선호한다. 독일인들이 맥주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와인을 매일 마시는 사람들이 와인 선호자 중 1%밖에 안 되지만 가끔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꽤 된다. 주종의 선택에 술값이 중요하다. 와인 가격이 맥주보다 비싸므로 상대적으로 고소득자들이 마신다. 일요일 만찬, 축하하는 자리, 의식이 행해지는 곳에서 와인이 소비된다. 여성들이 와인을 애호하는 경향은 남성보다 강하다. 2009년 통계로는 맥주선호 53%, 와인 27%, 증류주 20%였다.
브랜디나 위스키, 리큐르 등 증류주 선호자들은 적다. 더욱이 증류주를 매일 마시는 사람(1%)은 와인(3%)과 마찬가지로 많지 않다. 증류주는 남성들이 가끔 마시고, 맥주와 섞은 폭탄주를 마시기도 한다. 수입증류주는 상층민이나 중산층들이 즐겨하고, 노동자 들은 독일산 증류주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성은 단맛의 술을 좋아한다.
독일인의 음주성향은 조금씩 계속 변화 중이다. 맥주가 대중주이지만 와인 선호 층이 늘고 있다. 부유층이나 여성들의 선호가 느는 것이다. 주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등등을 이유로 증류주 수요는 줄고 있다. 이 또한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독일 남성들의 음주선호는 사회경제 계층과 관련이 있다. 비싼 술이나 수입 주는 소득이 높은 사람들의 몫이다. 독일도 양극화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싼 술이나 수입 주는 독일인에게 풍요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소득과 음주와의 비례관계는 여성들에게서도 확인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고소득여성들이 와인을 즐겨 마신다.
술문제도 상당 수준이며, 여성과 청소년들의 음주가 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음주유형 비교결과를 보면 그 차이가 분명하다. 남성이 많이 마시고 여성은 적게 마시는 것은 독일에서도 당연지사다. 술을 안마시거나 1-2잔정도만 입에 대는 여성은 32%, 남성은 그러한 사람이 13%다. 한편 과음하는 남성은 44%다. 남성의 절반 정도가 과음자인 것이다.
독일에서 1.7백만 명이 중독치료를 요하고, 해로운 음주자가 2.7백만 명이라는 자료가 있다. 정신의학적 조사결과로 보인다. 음주친화적인 독일에서 그 정도 문제음주자가 현실적일 수 있다.
음주자 유형별 남녀비교 (단위 : %)
|
남성 |
여성 |
금주 또는 가끔 음주 |
13 |
32 |
적정음주 (1주일에 140g 이하) |
43 |
55 |
과음자 (1주일에 280g 이하) |
20 |
9 |
고도음주자 (1주일에 280g 이상) |
24 |
4 |
독일 여성들은 대체로 적당량을 마시고 있다. 독일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맥주, 와인, 증류주 모두 적게 마신다. 좀 빡빡한 보건계의 기준이기는 하지만 여성문제 음주자가 13%나 된다는 것은 여성들의 술 문제도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남성들은 주종에 상관없이 과음을 한다. 폭음자도 상당수 된다.
그러니 술 마시는 독일 남성들의 경우 필름이 끊어지는 현상을 자주 경험한다. 필름이 끊어진 경험은 여성의 경우 6%, 남성의 경우는 30-40% 정도다. 대부분의 남성은 정기적으로 폭음과 과음을 일삼지만 여성은 그렇지 않다. 독일의 남성과 여성은 음주나 만취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청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또래들의 음주강요와 압력에 시달린다. 독일에는 “일생에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사나이가 아니다” 는 금언이 있다. 독일 청소년들의 과음은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년이 군대에 가면 정기적으로 음주를 하게 된다. 군대 음주는 ‘단지 즐기기 위한’ 수단이거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음주습관이 평생을 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누군가에게 술을 한잔 사는 것이 독일 남자세계의 덕목이다. 독일의 청년들은 음주기술을 자랑하려고 음주게임을 일삼는다. 그 결과는 보나마나 과음이다. 군대 이외에도 학생클럽이나 기숙사에서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 많은 청소년이 알코올을 오용하게 되고, 일부는 알코올에 중독된다.
다행스럽게도 소녀들은 소년들과 상황이 다르다. 또래 압력도 많지 않고 마시더라도 대부분 일시적인 일이다. 여자는 적당히 마셔야 한다고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남학생들과 다른 점이다. 여학생의 만취는 특히 금기다.
주점에서 마시고, 떠들고, 카드놀이를 하거나 친구들과 사교생활을 한다. 이 때 여성은 남성과 같이 오지만 취한 남편을 집으로 데리고 가거나 술이 깨도록 돕는 일이 임무가 된다. 일부 여성들이 변했지만 적어도 1990년대 중반 때 까지는 그랬다.
독일의 술집들이 정치에 기여했을까? 정치가 펍을 만들었을까?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도 생산지역별로 다른 주종이 선호되는 현상이 있다. 자연히 지역 간 음주패턴과 음주습관이 다르다. 그런데 어디가나 비슷한 것도 많다. 목로주점(Kneipe), 여관 겸용 주점(Wirtshaus), 작은 주점(Weinstube), 비어가든(Bier Garten) 등 다양한 주점들은 맥주, 와인, 증류주나 칵테일 등을 마시는 장소이다.
독일 전역에 퍼져있는 펍(Pub)이나 바(Bar), 살롱(Saloons), 볼룸(Ballrooms), 비어홀(Beer Hall) 등은 대다수 19세기에 생겼다. 하층민들의 스트레스 관리에는 술집만한 것이 없다. 엥겔스는 산업혁명 초기 노동자의 생활조건이 매우 나빴다고 썼다. 노동자들은 집보다 밖에서 퇴근 후 자유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했다. 일부 사장들은 공장 근처에 주점을 차려놓고 시장가격보다 더 높게 받아 추가 이윤을 챙겼다는 일화도 있다. 독일의 펍은 산업화 이후 노동자들의 휴식 장소였던 것이다. 펍이 ‘가난한 자들의 사교장소’라는 것은 영국이나 독일에서도 유사하다.
1869년에서 1900년 사이에 사회민주당원들의 집회장소가 되었다. 이 일은 1878년- 1890년 까지 사민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남성들은 펍에서 ‘맥주’를 주문하였고, 정치에 대해 논의하였다. 경찰들은 사민당원들을 일반 손님과 사민당원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펍은 노동자들의 피로회복처이자 정치가들의 은신처로서 기능하였다.
그 이후 독일의 펍은 일반 파티장소로 변화했다. 독일 사민당이 펍의 태동에 관여한 셈이 된다. 지금은 펍은 정치가 논의되는 곳이 아니다. 다만 술을 마시기 위해 오는 곳일 뿐이다.
독일 음주문화의 현장, ‘펍(Pub)’
맥주가 가장 일반적인 주류였다. 나중에는 증류주도 판매되었다. 라인지방 등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의 펍에서는 와인이 판매되었다. 다른 지방에서 와인을 마시려면 레스토랑으로 가야 한다. 독일의 술집 대부분은 남성이 주요 고객이어서 여성 음주자들을 위한 시설이나 특별한 장소는 없었다.
독일의 펍에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저녁시간 휴식을 하기 위해 단골 술집을 하나쯤 만드는 것이 독일 사람들의 습성이다. 단골손님들은 일주일에 한두 번 들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부 손님들은 거의 매일 와서 마신다.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자마자 단골집에 와서 맥주 한두 잔을 마신다. 주로 바에 둘러서서 마시거나 바텐더나 다른 손님들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 말 없이 혼자 마시는 사람들도 있다. 오후 5시에서 6시 정도까지는 술집 안이 조용한 편이다.
술집에서 여성손님들은 환대를 받지 못하는 편이다. 바는 대체로 남성들의 차지이고 용감하게 술집으로 들어선 여성 고객은 성과 관련된 부당행위를 당할 수도 있다. 여성의 술집출입은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침범했거나 허용되지 않은 일을 시도한 것이 된다. 독일의 펍에는 성문률은 없지만 일종의 룰이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그 중 금기는 여성에 대한 것이 많다.
일찍 온 손님들은 30분정도 술을 마시고는 떠난다. 그 중 일부는 저녁식사 후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 때 혼자 오는 사람, 친구들이나 부인과 오는 사람 등 다양한 행태를 보인다. 펍에서는 음식을 별로 팔지 않고 음주위주의 장소다. 저녁 8시나 9시가 되면 술집은 많은 손님으로 그득 찬다. 술집은 큰 소음에 휩싸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 아일랜드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에서도 익숙한 광경일 것이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게 되므로 술집 안은 매우 혼잡하다. 더욱이 담배를 피는 것이 일상적이다. 처음에는 대체로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취기가 돌면 분위기가 상승하고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급기야는 가끔 더 큰 아우성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들어가면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일부 펍에서는 자주 싸움도 벌어진다. 어떤 펍에서는 그런 일이 매우 드문 일이다. 즉 그 차이는 주로 바텐더가 취객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이는가에 달려있다. 독일의 음주문화를 가름하는 주인공이 바텐더인 것이다. 바텐더는 독일 술집의 통치자다. 조금 잃더라도 취객에 대해 엄격히 하여 술집을 우애와 평화의 장소로 만드는 바텐더도 있다. 그 술집의 단골손님들은 그 분위기를 좋아하여 자주 들르는 것이다. 술꾼들마다 선호하는 술집의 유형이 각각 다르다.
날 잡고 폭음하는 방식으로 변한 난폭했던 독일 음주문화
독일의 음주문화는 그야말로 대폭 개선되었다. 펍에서 서로 소리치기는 하지만 격렬한 싸움까지는 이제 드물다. 19세기 초 노동자들의 음주형태와 비교하면 많이 변했다. 그 때는 술집에서 싸우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는데 이제 비정상적인 일이다.
예외는 뮌헨의 맥주축제(Octoberfest)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Weinachtsbock Bier)와 같은 축제, 그리고 큰 행사가 벌어지는 경우다. 세계적인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날이 그렇다.
맥주축제의 광경은 다음과 같다. 낮에는 가족들이 공원에 모여 오락을 즐긴다. 밤에는 끝없이 술을 마시고 취한 광경이 펼쳐진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 독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술에 취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규율이 사라진다. 경찰마저도 그러한 상황에 동조한다.
술이 주는 마력에 대해 독일인들과 함께 세계인이 함몰되어 간다. 절제로 유명한 독일인들의 유전자 속에 과음의 욕망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그대로다. 싸움, 상처, 급성 알코올 중독. 정상상태는 비정상상태로 돌변한다.
오늘날 독일의 음주문화는 대체로 순탄하다. 그러나 음주시 야성적이었던 독일인들의 모습을 특정일을 정해 반복적으로 재현하는 현장이다. 과연 술이 뭐 길래. 독일인에게 술이란 무엇일까? 모든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음주문화가 완전히 변하거나 사라지기 어려운 일인가? 의문이 사라지지 않게 된다.
독일의 음주문화를 검토할 때 한국의 폭음문화가 사라지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사의 제천행사로부터 내려온 신 내림 같은 폭음, 고성방가, 싸움의 술자리가 과연 언제나 사라지게 될까. 더 고민해볼 일이다. 또한 늘 그러한 우리의 경우 날 잡아 놀고 그러는 독일에서 배울 것이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통제보다는 자율규제를 택한 독일의 음주규칙
독일의 음주문화 변화는 정부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따라 생활양식이나 인식이 변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독일의 일부 전문가들은 민간단체와 개인들의 노력, 의식 있는 술집 종사자나 바텐더들의 활동들로 인한 것이 아닌가 답변한다.
그러니 독일정부가 국가약물남용 통제계획(National Program on Drug Abuse Control)을 수립한 것은 1990년, 최근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2006년 파랑새 플랜이 그것이라고 한다면 더 늦었지만 말이다. 전에는 오히려 1516년의 순수 맥주법(Pure Beer Law)을 통한 품질 위생관리, 주세를 통한 가격조정 등의 수단으로 문제를 예방하는 정도였다.
민간의 절주운동은 19세기에 발생했다. 오래 계속된 악명 높은 음주문화가 이유였다. 19세기는 미국 등 서구사회의 절주운동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청교도들이 넘어간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과는 달랐다. 독일에서도 체계적으로 예방활동을 하는 것은 최근의 일로 보는 것이 맞다.
독일에서는 간질환, 음주교통사고, 중독, 알코올 사용장애, 음주관련 범죄 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단기의 급성알코올 중독 통계를 제외하고는 모든 문제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2000년 이후 최근 통계에서 그러한 현상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선지 전체 음주관련 폐해 액은 32,539.5백만 달러로 그렇게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알코올 사용장애자의 비율은 15-64세 인구를 기준으로 할 때 남성이 9.1%, 여성은 2.0%였고, 그 중 알코올 의존자는 남성이 5.4%, 여성은 1.3%였다. 2004년 통계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많은 숫자다. 2011년 우리나라는 알코올사용장애자가 4.4%이고 남성은 6.6%, 여성은 2.1%였다. 그 중 의존자는 전체 2.2%, 남성 3.2%, 여성 1.2%였다. 우리나라가 독일 보다 문제음주자가 적은 이유를 연구할 필요가 있지만 일단 고무적인 일이 아닌가.
독일의 주류업계 활동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증류주협회는 정기적인 절주캠페인을 벌인다. 그들은 문제음주자들에 집중하고 있다. 맥주협회는 주로 맥주페스티벌 등에서 음주운전을 막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의 맥주, 현명하게 마시자!”가 최근 메시지다. 주종별로 발생하고 있는 음주문제의 특성을 잘 보고 타깃중심으로 예방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조사 자료를 보면 독일에서 주류의 판매시간이나 광고, 특정장소의 음주, 스폰서 규제, 판촉규제 등이 공식적으로 없다. 그들은 음주문제를 자율적인 규범에 맡기는 것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주세도 낮은 수준이다. 그래선지 맥주가격이 물 가격 정도라고 한다. 법적 음주연령도 맥주와 와인은 16세, 증류주는 18세다. 우리나라나 미국에 비해 매우 허용적인 것이다.
1996년에 알코올음료 판매시간을 자유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976년에는 독일 보건성과 주류업계는 자율적인 광고규약으로 광고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하자는 의견을 교환한 흔적이 있다. 정부와 업계가 공동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주류 판매업소가 우유를 판매하는 곳만큼 많다. 규제수준이 높지 않고, 독일이나 우리나라와 같이 허용적인 음주문화와 과음과 폭음의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음주문제에 대해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현대의 독일에 음주문화가 나쁘다는 소문은 이제 일반적이지 않다. 한 국가의 음주문화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특히 독일의 경험을 볼 때 음주문화의 변화를 민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인 선례다. 독일의 음주문화는 생활방식, 정치 발전정도, 사회규범, 건강인식 등의 변화에 따라 잘 변화시켜 온 셈이다. 악명이 사라졌으니 말이다.민간 스스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린 독일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 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독일관광청이 제공했습니다. 사진의 지적 소유권은 독일 관광청에 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