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술 못한다고 찍히는 일은 없겠지만…
술이 약하면 술 한잔에 물 한 컵을 마셔라
못 만든다고 못 마실 것인가. 인간의 기분을 전환시키는 약물 중 술은 고금동서(古今東西)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사랑받아 왔다. 술이 ‘약이냐 독이냐, 아니면 음식이냐’ 또는 ‘술을 마시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문제는 예부터 논쟁의 대상이 돼 왔고,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직장인이든 백수건달이든 한국인은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 72%가 술을 마신다고 한다. 만약 술을 만들지도, 판매하지도 못하게 하는 금주령(禁酒令)이 발동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공상을 해보면 끔직하다.
“잘 나가는 회사는 회식이 잦고, 망해가는 회사는 회의가 잦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회식이라는 게 바로 술 마시는 자리가 아닌가. 잘 나가는 회사든 망해가는 회사든 직장인들에게 술자리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술 못한다고 하면 강권(强勸)하는 상사가 요즘에야 적어졌지만 예전만 해도 상사가 주는 잔을 받지 않았다간 찍히기 십상이었다. 사회생활에 술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술을 잘 못한다면 불편이 따른다. 특히, 업무상 마시는 이른바 접대성 술자리에선 술을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일이 성사되고 안 되고가 결정되기 때문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술이 약한 사람이 센 사람과 대작하면서 버틸 수 있는 비법이 있을까? 과학적인 뒷받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주당들 세계에서 전수(?)되는 바로는 꽤 많은 비법이 전해지고 있다.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공화당 시절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기 전 북측 인사들이 서울에 왔다. 이들은 우리측 인사에게 저녁에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측 대표가 술이 약했다.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술자리에 참석하기 전 참기름을 한 컵 마시고 들어갔다. 그 결과 술이 셌던 북측 인사가 더 취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처럼 술 마시기 전에 계란 노른자위를 먹는다든지 또는 약간의 식사를 한다든지 해서 가급적 술에 덜 취하기 작전을 편다. 그런데 이런 방법들은 번잡해 주당들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술자리에서 노골적으로 술을 피하면 분위기를 깨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상대방이 주는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면서도 덜 취하는 방법은 물을 많이 마시는 것이다. 주종(酒種) 불문하고 술 마시면서 물을 마시면 결국 술에 물탄 셈이니 덜 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은 예부터 음주가무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다. 지금까지 그 문화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직장인들이 어떻게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 생각보다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많이 마시는 것보다 우선 분위기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존 헤이란 사람은 “술은 비와 같다. 진흙 속에 내리면 진흙을 더 더럽게 하지만 옥토에 내리면 그곳에 꽃을 피게 한다”고 일갈했다. 직장인들이 새겨둘 만한 진리다.
일반적으로 술은 그 사용방법을 정확히 알고 적당량 마셨을 때 약이 되는 것이다. 과도하게 많이 마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피해를 줄 때에는 도리어 해가 된다. 이런 술의 양면성을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