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제주에게 맛을 묻다

제주에게 맛을 묻다

 
제주 사람에게 제주의 맛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며 삶이었고, 제주의 역사였다. 글·사진 박은경(한국관광공사 청사초롱)

 
“탐라의 王도 탐내던 게 바로 말고기”

 

우리에게 말고기는 소나 돼지에 비해 덜 익숙하다. 때문에 ‘질기다’ 또는 ‘누린내 난다’ 식의 편견을 갖고 있는 것 역시 사실
이다. 하지만 말고기에 대해 알고 나면, 아니 딱 한 점만 맛보고 나면 생각은 달라진다. 심지어 제주의 말고기는 임금의 진상품이었다고 하니 그 얼마나 뛰어난 맛이었겠는가.

예부터 제주 사람들에게 말고기는 보약 같은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육류에 비해 글리코겐과 단백질 함량이 월등히 높고 저칼로리, 저콜레스테롤인데다 노화방지와 피부보습에 뛰어난 불포화지방산도 다량 함유돼 있다.

그 때문일까. 말고기가 좋아 업종 변경까지 불사했다는 ‘조랑말과 흑돼지’ 대표 길용선씨는 나이에 비해 10년은 젊어 보이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9년 전 말고기를 처음 맛보고 그 맛에 홀딱 반해 말고기 전문점을 차리기로 결심했죠. 당시에는 말고기집이 몇 군데 없었는데 최근 2년간 우후죽순 생기더니 이제는 50곳이 넘어요.”

길씨의 음식점을 찾는 손님 대부분은 말고기에 푹 빠진 마니아들이다. 현지인과 관광객의 비율이 6:4를 이룬다. 하지만 관광객 역시 주기적으로 말고기를 맛보기 위해 찾는 경우가 많아 현지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한다.

“특히 말을 도축하는 화요일에는 생간과 싱싱한 고기를 맛보려는 미식가들로 꽉 들어차요. 뛰어난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눈이 좋아진다고 해서 생간을 많이 찾거든요.”

말의 생간은 물컹한 소간에 비해 아삭하고 단맛이 높기로 유명하다. 마치 배를 씹는 듯한 식감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막창 역시 마니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메뉴다. 제주 사람들은 말의 막창을 두고 ‘검은 지름(기름)’이라고 부르는데, 말 한 마리당 1m뿐인 귀한 부위다. 삶은 후 소금에 찍어먹는 맛이 꽤 중독적이다.

“귀한 걸로 치면 차돌박이도 빼놓을 수 없죠. 소의 차돌박이는 앞가슴에서 나오지만 말의 차돌박이는 목에서 나와요. 한 마리에 보통 한두 근 정도 나오죠. 하지만 모든 말이 차돌박이를 갖고 있는 건 아니에요. 오직 살찐 말의 목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도축 몇 개월 전부터 일부러 살을 올린다고 한다. 다행히 말은 식성이 매우 좋은 편이어서 살을 찌우는데 큰 어려움은 없단다.

이 집의 인기 메뉴는 모든 부위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코스요리다. A, B코스 모두 말 사시미와 차돌박이, 말 스테이크, 말고기 구이, 말 육회, 말 전골이 나온다. A코스에는 말뼈 엑기스와 말 갈비찜이 더해진다. 말고기 구이는 핏기만 가실 정도로 살짝 구웠을 때 가장 맛이 좋다. 또 말뼈 엑기스는 십전대보탕에 말뼈를 넣고 36시간 동안 푹 고아낸 것으로, 관절염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시 노형동 915-6 ☎ 064?743?7800

 흔한 듯 흔치 않은 제주의 맛

제주, 하면 말고기, 흑돼지, 물회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내공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제주의 또 다른 맛을 소개한다.

 제주 최고의 인기 국숫집 ‘올래국수’

이곳에선 잔칫날이나 큰 행사가 있던 날 즐겨 먹던 음식인 고기국수를 맛볼 수 있다. 흑돼지를 고아낸 육수에 수육을 올려 만드는데, 비계가 적당히 붙은 두툼한 살코기와 깊고도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공항과 가까워 제주에 막 도착했거나 비행기를 타고 곧 제주를 떠나기 전 들르기 좋다. 식사 때가 훨씬 지난 시간에도 사람들이 줄 서있을 때가 많은데, 줄을 서더라도 꼭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

제주시 연동 216-16 ☎ 064?742?7355

 

멜젓과 환상의 짝꿍 돈사돈

사람 수에 맞춰 고기를 주문하는 일반 고깃집과 달리 ‘근’으로 고기를 시키는 근고기 전문점이다. 600g(1근)을 기본으로 하며 추가분부터는 400g씩 주문이 가능하다.

덩어리째 나온 고기는 연탄불에 은은하게 구워 육즙을 최대한 보존한다. 게다가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종업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먹기 좋게 구워주기 때문에 항상 최상의 고기맛을 느낄 수 있다. 고기는 고추와 마늘, 그리고 소주를 섞어 팔팔 끓인 멜젓(멸치젓갈)에 찍어 먹는데, 그 맛이 환상이다.

제주시 노형동 2470 ☎ 064?746?8989

 

토종닭 요리의 완결판 성미가든

토종닭 요리로 정평이 나 있는 교래리 한복판에서도 쫀쫀한 육질을 제대로, 그것도 알차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닭을 주문하면 제일 먼저 샤브샤브 재료가 등장한다. 닭발을 넣고 푹 끓인 육수에 얇게 저민 닭가슴살을 데쳐 먹는데, 퍽퍽하지 않고 야들야들한 맛이 일품이다. 고기를 다 건져 먹은 진한 육수에는 라면사리가 찰떡궁합이다. 하지만 다음 코스인 백숙이 곧 등장하기 때문에 한 젓가락씩 맛만 살짝 봐두는 게 좋다. 고소한 녹두와 감자가 들어간 백숙은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좋다. 백숙을 다 먹고 나면 녹두죽이 나온다. 팥죽과 비슷한 식감이지만 덜 달고 부드러워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간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533 ☎ 064?783?7092

 

속 깊은 국물맛 교래손칼국수

제주산 토종닭을 가볍게 즐기려거든 교래손칼국수로 가자. 뜨끈뜨끈 걸쭉한 국물 맛이 진국이다. 뼈째 툭툭 잘라낸 토종닭이 들어간 토종닭칼국수와 매콤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인 바지락칼국수가 인기다. 8월 중순부터 이듬해 3~4월까지는 담백한 국물이 중독성 있는 꿩메밀칼국수도 맛볼 수 있다. 음식이 나오는데 30분 이상 걸리므로 전화로 미리 주문하는 게 좋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491 ☎ 064?782?9870

 

제주를 쏙 빼닮은 제주아일랜드 그린티

제주의 흙, 녹차밭, 한라산의 설경을 표현한 음료로 오직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다. 국내산 팥과 제주산 가루차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더없이 깔끔하다. 만약 팥의 단맛이 신경 쓰인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 오히려 너무나 담백한 맛에 놀랄 정도다.

음료와 함께 출출한 배를 채울 만한 메뉴로는 그린티 롤케이크를 추천한다. 고급 녹차가루와 제주산 꿀, 진하고 고소한 크림치즈와 부드러운 빵이 어우러져 마음까지 살살 녹인다.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1235-3 오설록 티뮤지엄 ☎ 064?794?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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