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정선 땅에는 휘영청 밝은 달과 초롱초롱한 별이 있다

정선 땅에는 휘영청 밝은 달과 초롱초롱한 별이 있다

 

 

오염되지 않은 자연이 숨 쉬는 곳

폐철로를 이용한 녹색관광의 발상지

‘스카이 워크’가 새로운 볼거리로 급부상

 


넘쳐나는 시간도, 뾰족한 계획도 없지만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가장 어울리는 탈 것은 무엇일까. 비행기, 자동차, 기차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단연 기차를 꼽고 싶다.

그것도 KTX처럼 빠른 기차가 아닌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달리는 3등(지금은 무궁화호) 기차다.

강원도 정선이 서울의 관광 전문기자들을 초청하는 팸투어를 실시하면서 기차여행을 실시한다기에 주저 없이 신청을 한 것도 기차여행을 하고픈 오랜 갈망 때문이었다. 그동안 기차로 출장을 떠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KTX를 이용했지만 KTX는 진정 기차 여행의 진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한 교통수단이다.

실로 오랜만에 3등 열차를 탔다. 서울 청량리에서 8시 50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는 순간 그 여여로움에 마음이 즐겁다. 좌석은 모두 순방향이지만 맘 맞는 사람 또는 가족끼리라면 의자를 돌려 네 명이 얼굴 맞대고 갈수도 있고, 싸온 간식거리나 도시락을 까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3등 열차의 백미는 느릿느릿 달리는 열차로 차창밖 풍경을 조망하는 것은 아닐까. 청량리에서 강릉으로 떠나는 무궁화호는 충청도와 강원도의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수도 없이 해묵은 이끼가 낀 터널을 지나고 구비를 돌아들면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거기에는 촌락들에서 느끼는 정겨운 풍경에서 이릴적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저기 저 집의 덕지덕지 때 묻은 벽지에는 나의 추억이 배여 있을 것 같고, 울안에서 김장담그는 손길에는 어머니의 손맛이 배여 있을 듯싶다. 이런 느낌이 바로 기차여행에서 맛보는 호사다.

강릉행 열차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깔려 있는 철로를 달린다. 경부선이나 고속도로에서 맛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맨 뒤 칸에서는 앞서 달리는 열차의 기관차를 바라보며 잘도 달린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마주 오는 열차가 있을 때는 먼저 온 열차가 역에서 한참을 기다려 상대 열차가 지나가도록 양보도 한다. 각박하지 않은 인정과 양보를 배울 수 있는 열차가 바로 3등 열차다. 넉넉한 3등 인생이 녹아나는 무궁화호는 3시간31분만에 정선땅 민둥산역(과거 증산역)에 도착했다.

 

■ 정선은 열차를 타고 가야 제 맛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만 해도 정선은 기차가 아니면 왕래가 힘든 오지였다.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정선으로 통하는 국도가 포장 되고나서도 정선은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그다지 많지 않던 고장이었다.

오히려 탄광이 각광 받고, 남한강 천릿길 물길 따라 목재를 운반하던 시절 유명한 뗏목 시발지점으로 각지에서 모여든 떼꾼들로 성시를 이루던 시절이 지나고 나서 한 적하기만 하던 정선이 최근에는 강원도 최고의 관광지로 각광 받고 있으니 이는 오로지 훼손 되지 않은 자연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게 싸리 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장철 임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아라리의 발상지 정선은 한 많은 고려인들이 산속에 숨어 지내며 한을 노래했다. 이것이 정선 아라리의 시초다.

이런저런 기대를 안고 민둥산 역에 도착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정선의 대표 밥상 ‘곤드레밥’이었다. 시장기도 돌거니와 강된장에 비벼먹는 곤드레 밥은 그대로가 시골인심 같다. 곤드레 밥상은 웰빙식단의 대표주자 답계 산나물과 고랭지에서 자란 김치 맛이 입맛을 돋운다.

 

■ 느림의 결정판 레일바이크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조치로 정선의 탄광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다. 아우라지를 거쳐 구절리까지 달리던 철마도 수송할 물동량이 끊기고 승객도 줄어들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탄광산업이 번창할 때 정선의 인구는 14만 명을 웃돌았는데 살길을 찾아 10여만 명이 객지로 떠났다.

정선군과 코레일관광개발은 머리를 맞대고 폐철로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을 한 결과 철로위에서 자전거를 타듯 레일바이크를 구상하게 된다.

기적이 끊긴 철길에 새로운 레포츠인 레일바이크가 첫 선을 보인 것은 2005년 하반기. 초창기에는 어린애 장난도 아닌데 사업이 되겠느냐는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평일에도 레일바이크를 타기가 어려울 만큼 레일바이크는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어느 해 봄 ‘1박 2일’에 정선 레일바이크가 방송된 이래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여 1회에 100대(4인승 50대 2인승 50대)의 레일바이크가 하루 5회(동절기엔 4회) 운행하고 있지만 거의 100% 예약률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해 만도 36억 원 매출을 올려 순 이익분이 13억 원이나 돼 정선군과 코레일관광이 절반씩 분배하여 레일바이크는 코레일관광과 정선 지역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철길을 달리되, 그 궤도 주행을 승객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레일바이크다. 레일바이크는 페달을 밟아 철로 위를 달리는 네 바퀴 자전거로 철로(rail)와 자전거의 약칭(bike)을 합친 말이다. 레일바이크는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시절에 부설된 철로가 그 기능을 잃자 버려진 철로에서 사람들이 바이크를 즐기기 시작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정선 말고도 문경선과 가은선 지역의 폐선을 이용하는 문경 레일바이크가 있지만 규모나 재미가 정선만 못하다.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는 7.2km, 보통 레일바이크는 15~20km의 속도로 운행할 수 있다. 일부 구간을 빼면 대체로 약 2%의 내리막길이어서 그리 큰 힘이 들지는 않았다. 레일바이크는 아우라지 강으로 이어지는 송천을 따라 각각 세 개의 터널과 다리를 지나고 건너 종착역인 아우라지역에 닿는다.

종착역에는 천연기념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는 잉엇과 민물고기인 어름치를 형상화한 열차 카페 ‘어름치의 유혹’이 아가미를 벌린 채 승객들을 반겼다.

구절리와 아우라지의 행정구역은 정선군 여량면이다. 여량은 남을 여(餘), 식량 량(糧)자를 쓰니 오곡이 풍성해 식량이 남아돌 만큼 여유롭고 인심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제 여량은 넉넉한 식량이 아니라 여행객에게 넘쳐나는 여행 추억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레일바이크 요금 : 2인승 22,000원 4인승 32,000원 ▲ 운행시간:△하절기 (08:40/

10:30/13:00/14:50/16:40 1일 5회 운행) △ 동절기 (08:40/10:30/13:00/14:50 1일 4회 운행)

▲ 여치의 꿈 카페

구절리역의 플랫폼에는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여치카페가 시선을 끈다. 거대한 강철다리와 더듬이를 가진 여치 한 쌍이 몸을 포개고 엎드려 있다. 무궁화호 객차를 이용해서 만든 카페 ‘’여치의 꿈’이다.

산 깊고 물이 맑은 구절리역 주변 경치와 어울리는 곤충 여치가 한 여름에 우리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듯이, 여치의 꿈 카페는 관광객에게 여행의 기쁨을 안겨줍니다. 무궁화호 객차를 이용해서 만든 여치의 꿈 카페의 암놈(아래층)은 스파게티 전문점이며, 수놈(위층)은 차를 파는 카페다.

 

■ 실로 오랜만에 초롱초롱한 별을 보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초롱초롱한 별들의 시녀를 거닐고 강원도 정선땅 구절리역 동산 위에 떴다. 늦은 밤이건만 하얀 달빛으로 뚝방길은 훤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뚝방 아래 개천에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뿐 사방은 쥐죽운 듯 고요하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밤의 정취다. 잘 손질된 뚝방길을 걷노라면 개천을 흐르는 물들이 친구하자며 따라나선다.

한 참을 벤치에 앉아서 목이 아프도록 밤하늘을 바라본다. 가만있자. 저렇게 아름다운 별들을 본지가 언제였던가! 모르긴 해도 기억조차 없는 오랜 세월 전일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또 이런 저런 사유로 우리는 저 영롱한 별들조차 바라보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 것일까.

서울에서는 초롱초롱한 별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공해 때문이다. 그러나 정선의 하늘은 깨끗하다. 그래서 공기가 달다.

여기 정선땅 구절리역도 해가 뜨면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치는 곳이다. 전국에서 ‘레일바이크’를 타려고 몰려든 여행객들이 하루에도 1천여 명 이상 몰려드는 유명 관광지다. 그러나 해 지면 이방인들은 썰물처럼 빠지고 구절리역사 부근은 조용해진다.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으니 오늘은 기차(기차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겠다.

 

■ 꿈은 기차를 타고… 기차펜션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했던가.

1967년 7월19일 미국에서 제작된 기관차는 경부선과 경춘선에서 37년간의 임무를 완수하고 2004년 7월20일 현역에서 퇴역한다. 보통의 기관차나 객차는 임무가 끝나 폐차되면 용광로에 들어가 생을 마감하지만 여기 구절리역에 서 있는 기관차는 비롯 젊은 시절처럼 힘차게는 달리지 못하지만 2008년2월1일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기차펜션의 파수꾼으로 여행객들로부터 사진 세례를 받아 새롭게 태어났다.

구절리역 기차펜션은 기관차 1량, 폐객차 4량을 개조하여 모두 10개의 객실로 되어 있고 관광객의 취향에 맞게 한실과 양실로 구성되어 있다. 방 크기는 21㎡ 6실, 31㎡ 4실로 월풀욕조를 비롯하여 컴퓨터, LCD TV, 정수기 등 최신식 시설을 모두 갖추어 호텔 못지않은 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한 가지 트집을 잡자면 너무 호텔 같아서 아쉽다. 기차펜션이라면 어디엔가 객차의 흔적 같은 것이 남았으면 좋으련만…. 객차의 시트라든가 하다못해 옷걸이라도 객차 것 그대로를 활용했으면 한다.

객차의 구조상 좁은 객실의 단점을 보완하여 송천강변 방향으로 테라스 시설을 설치하여 가족 또는 연인과 함께 구절리의 아름다운 전경과 간단한 야외파티도 할 수 있다. 테라스 밖 독립된 캡슐하우스는 둥근 원통모양의 단독 원룸하우스도 설치되어있다. 레일바이크와 연계한 관광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약은 인터넷(www.railbike.co.kr)을 통해 할 수 있다. ☞숙박료는 1호,2호,3호 20㎡ 7만원

 

■ 하늘에 놓인 전망대 ‘Sky Walk’

정선에 또 하나 새로운 명소가 생겨났다. 정선읍 북실리 병방산(해발 861m) 일대에 자연생태계와 관광자원을 연계한 친환경 생태체험 시설을 설치했는데 이름하여 ‘스카이 워크’다. 스카이 워크위에 올라서면 이름 그대로 하늘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에 설치된 스카이 워크를 연상하면 쉽게 이해되는 시설이다.

국내에서도 일부 지역에 이 같은 시설이 설치되었지만 규모가 작고 높지가 않아 스릴을 느낄 수 없는 것과 달리 병방산 스카이 워크는 높이가 900여m에 달해 스릴만점. 게다가 스카이 워크 발아래에는 한반도 지형 모습이 보여 풍광면에서도 일품이다.

2012년 6월 오픈했다. 스카이 워크 조성사업에는 모두 10억 원이 투입되었고, 허공에 길이 10m, 폭 2∼3m의 U자형 강판 유리를 설치해 짜릿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인근에는 ‘짚와이어(Zip-Wire)’도 설치했다.

짚와이어는 병방치 스카이 워크에서 절벽 아래 생태체험학습장까지 와이어로 연결해 투명공간의 타임캡슐이나 의자에 의지해 내려가는 ‘익스트림 레포츠’다. 길이가 대략 1.3㎞에 달하는 데다 높이도 280m여서 긴장감과 스릴감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다.

<정선에서 김원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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