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겨울에 떠나는 여행
200년 宗家의 기품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성주 윤동마을
성주는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고 평안을 유지해 온 몇 안 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혀 외부와의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던 자연환경은 훼손되지 않은 전통마을을 보존하게 만들었다.
성주를 대표하는 전통마을은 ‘윤동마을’과 ‘한개마을’이다.
성주군 수륜면 소재지를 지나 약 1㎞쯤 가면 윤동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윤동’이라고 새겨진 큰 바위 뒤로 여러 채의 기와집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마을 중앙에 유독 눈에 띄는 집 한 채가 있으니, 이곳이 ‘사우당 종가’다. 사우당은 조선 정조 18년(1794) 사우당 김관석의 후손들이 조상을 받들기 위해 건립했다. 평지에서 산 아래까지 여러 채의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어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멋진 소나무가 정원수로 심어진 기와집이 보이고, 그 뒤로 주인이 기거하는 안채가 자리한다. 종가의 주인공격인 사우당은 안채 뒤에 별도의 담장과 문으로 구역이 나뉘어 있다. 빛바랜 기둥, 처마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 아궁이에 불을 땔 때마다 묻어난 그을음이 고택(古宅)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고택임에도 사우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새롭게 단장했다는 점. 그렇지만 건물마다 마루나 처마 아래에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민속품들을 배치해 놓아 체험객들이 자연스레 우리 것을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성주 땅이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많이 품고 있음을 증명하는 곳으로 세종대왕자태실을 들 수 있다. 월항면 인촌리 태봉 정상에 위치한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된 19기의 태실(胎室)이 남아 있다.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탯줄과 태반을 안장했다. 예로부터 태아의 생명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태아가 출산된 뒤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했다. 왕실에선 태가 국가와 왕실의 안녕과 관련이 있다고 믿어 더욱 소중하게 다뤘다. 그런 이유로 전국에서 풍수가 뛰어난 길지를 찾아 태를 묻어 보관했다. 태실은 조선왕조 태실의 의궤에 따라 지상에 석실을 만들고 그 속에 분청사기로 된 태항아리를 묻었다. 그 위에는 기단석, 중동석, 개첨석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 19기의 태실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5기는 그렇지 못하다. 이유인 즉 수양대군이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을 반대한 동생 금성대군?한남군?영풍군?화의군과 계유정란 때 죽은 안평대군의 태와 장태비 등의 태실은 파헤쳐져 산 아래 던졌는데, 1975년에 기단석을 찾아서 복원했다.
전통마을과 태실이라는 다소 어려운 여행 소재를 벗어나 아이들과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면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 제격이다. 성주군에서 조성한 국내 유일의 군립식물원으로, 야생화를 주제로 꾸민 전문식물원이다. 1000여평 규모의 2층 야생화 학습원에는 멸종위기 2급식물인 대청부채,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시호 등 희귀 야생화를 비롯해 가야산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600여종이 식재돼 있다. 비록 겨울철이라 야외에서 야생화를 볼 순 없지만 대신 종합전시관과 유리온실에서 녹색의 싱그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식물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심원사’라는 조용한 사찰이 있다.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가야산이라도 이곳만큼은 딴 세상인 양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탓에 조용히 절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본래 심원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18세기 말경에 폐사돼 빈 터로 남아 있었다. 근래 들어 심원사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을 차례로 중창해 옛 모습을 되찾았다.
겨울이라 따끈한 아랫목을 찾게 되지만 이럴 때 과감히 몸을 움직여 성주 전통마을로 여행을 떠나보자. 오랜 세월 선조들의 삶의 흔적과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마을에서 우리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 기다릴 것이다.<자료 제공 한국관광공사>
경북 성주군 수륜면 478-1, ☎ 성주윤동마을 010-8855-0114, 성주한개마을보존회 054-931-4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