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술 마시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술 마시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조만간 꼭 술 한 잔 하자.”

지켜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약속을 하는 것이 주당들이다. 간밤 지나친 폭주로 억지로 일어나서는 “내 다시는 술을 마시나 봐라” 하며 금주라도 선언할 것 같은 주당들이 해질녘에 또 술집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다반사다. 아침에 그렇게 굳세게 맹세했던 것을 하루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이 주당들의 약속이다. 모두가 허세다.

왜 주당들은 지켜지지도 않을 약속을 하면서도 줄곧 술을 마시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깊은 연구결과가 나온 적이 없지만, 미국에서는 주당들에 대한 갖가지 연구가 자주 발표되고 있어 주당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의 과학뉴스 포털사이트 ‘피조그닷컴(Physorg.com)’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니스트 갤로 클리닉 연구센터는 술을 마시면 뇌의 쾌락과 보상 중추인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과 안와전두피질에서 아편과 유사한 효과를 일으키는 소단백질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밝혔다. 제니퍼 미첼 박사는 술을 마시지만 폭음하지 않는 사람 12명과 폭음하는 사람 13명을 대상으로 음주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관찰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동물실험 결과를 근거로 추측돼 왔던 것이지만 사람의 뇌에서 실제로 관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특정 뇌 부위가 확인됨으로써 알코올 중독 치료제 개발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PET 영상 분석에서는 두 그룹 모두 술을 마실수록 측중격핵에서 엔도르핀 분비가 증가하면서 만족감도 커졌다. 그러나 안와전두피질에서는 폭음하는 사람만이 엔도르핀 증가와 함께 만족감도 높아졌다. 폭음하지 않는 대조군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 미첼 박사는 “폭음자 또는 문제성 음주자가 더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들의 뇌 기능이 그런 방향으로 변화를 겪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아편유사수용체라고 불리는 뇌세포 표면의 특정 부위와만 결합하는(엔도르핀도 마찬가지임) 아편 유사 물질 카펜타닐(carfentanil)에 방사성 꼬리표를 붙여 실험 참가자들에게 주사했다. 그렇게 하면 방사성 카펜타닐이 결합하는 부위에서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그 부위가 PET 영상에 명확하게 표시된다. PET 분석은 실험 대상자들에게 술을 마시기 전에 방사성 카펜타닐을 1차 주사하고 이어 술을 마시게 하면서 두 번째로 주사해 PET 영상의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술은 크게 순기능 면과 역기능 면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각종 미디어에서는 술의 순기능 면보다 역기능 면을 강조하다보니 술은 나쁜 것이란 인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술을 빚거나 유통하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높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주류업계의 책임이기도 하다. 진짜로 술이 인간에게 해(害)만 입힌다면 벌서 술이란 존재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었을 것이다. 지구상에 아직 술이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술의 역기능 면보다 순기능 면이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술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히 이뤄지도록 생산자나 유통업계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회로부터 주류업계가 인정받고 명망 있는 업종이란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다. 대한주류산업협회 산하에 있던 문화연구원 마저 기구가 대폭 축소돼 제대로 된 연구를 하기가 힘들어졌다.

술 한 병 더 팔아 이익을 낼 생각보다는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하고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매개체로서 술의 역할이 강조되는 연구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술을 많이 마시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하니 술을 많이 마시자는 것이 아니다. 술을 많이 마시면 그만큼의 역기능도 나오기 때문이다. 〈채근담〉에 ‘화개반개 음주미훈 차중유가취(花開半開 飮酒微醺 此中有佳趣,꽃은 반만 핀 것이 좋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한 가취가 있다)’라고 했다.

주당들은 이런 생각으로 술을 마신다. “잘 마시는 자는 잘 자고, 잘 자는 자는 잘 생각한다. 잘 생각하는 자는 일을 잘하고, 일을 잘하는 자는 잘 마셔야 한다.” 이런 것이 술의 순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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