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지금도 천년의 세월을 빚는다
사찰법주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
水王寺 주지들이 代이어 계승
12대 벽암스님 송화양조 세워
고산病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줘
곡차(穀茶). 예부터 사찰에서 술을 가리킬 때 쓰던 말이다. 차(茶)를 ‘다’로도 쓰고 읽어 ‘곡다’라고도 한다. 수행(修行)하는 입장에서 대놓고 술이라 말하기 겸연쩍어 대신 그렇게 불렀다.
수왕사는 종교와 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는 이곳에서 만들어진다. 이 술은 애초에 수왕사의 스님들이 마시던 곡차였다. 조선 인조 때의 명승(名僧)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처음 만들어 지금껏 살아 숨 쉬고 있다. 주지가 다음 대(代)의 주지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그 비법을 잇고 있다. 그렇게 비전(秘傳)돼 온 까닭에 일제 강점기시절이나 밀주 단속이 심했던 때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다.
“해발 800m 부근의 수왕사에서 참선을 하던 스님들은 기압에 의해 발생하는 고산병(高山病)과 싸워야 했죠. 혈액순환도 잘 되지 않아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했고요. 그러던 차에 스님들은 지천에 깔린 소나무 꽃(松花)을 이용해 술을 만들었죠. 그것이 지금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전해져오는 송화백일주입니다.”
벽암스님은 92년 모악산 아래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에 ‘송화양조’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송화백일주를 빚기 시작했다. 명맥을 후대에 계속 잇게 하기 위함이다. 송화양조는 현재 벽암스님의 제자인 조의주씨가 맡고 있다. 조씨는 송화백일주 13대 전수자다.
먼저 찹쌀과 백미, 누룩을 원료로 송홧가루를 섞어 발효시킨다. 여기에 솔잎과 오미자, 산수유, 구기자 등의 한약재를 넣고 100일 동안 저온에서 장기 재숙성해 만든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원숙한 맛을 내기 위해선 3년을 더 묵혀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알코올 도수 38%의 깨끗한 송화백일주가 완성된다. 술에 송홧가루를 넣는 이유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송홧가루가 좋은 효모를 번식시키기 때문이다.
송화백일주는 특유의 향과 약재에서 우러나온 향미가 독특하다. 오래 두고 묵힐수록 향미는 더욱 좋아진다. 은은한 솔 향과 달짝지근한 뒷맛도 매혹적이다.
벽암스님은 재밌는 얘기도 해주었다.
“오래 전 일인데 어느 날 TV 드라마를 보니 우리 술이 나오는 거예요. 제품을 협찬한 게 아니어서 깜짝 놀랐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선물로 줄 때 비쳐졌는데 이름이 확실히 보이더라고요.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꽤 오래 나와서 한참을 그러고 봤네요. ‘정말 좋은 술이니 한 번 마셔보라’고까지 해요. 허허. 홍보 제대로 된 셈이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방송사의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 송화백일주를 무척 좋아했다 하더라고요.”
벽암스님은 내용의 진가(眞假)를 떠나 송화백일주가 일반사람들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잠시나마 흐뭇했다며 웃었다.
송화양조 전북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64-1 ☎ 063·221·7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