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란 성취 위해, 즐겁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어질기 위해 마시는 것
술은 오른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고 마시는 것
술자리의 음악은 안주와 같고 술 따르는 여자는 그릇과 같아
술을 혼자 마시는 것을 소작(素酌)이라 한다. 둘이 마시는 것은 화작(和酌), 셋이 마시는 것은 한작(閒酌), 넷이 마시는 것은 안작(安酌), 다섯이 마시는 것은 수작(秀酌), 여섯이 마시는 것은 전작(全酌), 일곱이 마시는 것은 등작(登酌), 여덟이 마시는 것은 임작(臨酌), 아홉이 마시는 것은 연작(宴酌)이라 말한다.
작인(酌人) 여럿이 모일수록 취흥은 더욱 높다. 그러나 군자(君子)의 술자리는 아무리 작인이 많아도 번거롭지 않고, 홀로 마신다 해도 도인(道人)은 천하를 떠나있지 않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여럿이 술을 마실 때면 천지의 근원(根源)을 잊지 않고자 하고, 홀로 술을 마실 때는 천지의 대용(大用)을 잊지 않고자 한다. 또한, 군자는 천지화육(天地化育)이 잘 행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더욱 즐거운 것이고, 술을 마셔 천하가 하나임을 알기 때문에 취하지 않았을 때에도 천지의 근원에 더욱 깊게 잠길 수 있다.
대저 도인의 길은 성인(聖人)을 따르는 것이지만, 하나의 근원이 여럿인 용(用)에 미치고 여럿인 작용(作用)이 마침내 하나에 귀속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술을 마심에 있어서도 깨고 취함을 반복한다. 술이란 오래 취해있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취중에도 깸이 있어야 하고 술이 없어도 이미 즐거울 줄 아는 자만이 술을 바르게 마실 수 있다. 술이란 성취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고, 즐겁기 위해 마시는 것이고, 강해지기 위해 마시고, 어질기 위해 마시는 것이다. 술이란 인간이 그것을 쓰는 것이지{용(用)하는 것} 술이 인간을 쓰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평상심을 잃는 자는 신용(信用)이 없는 자이며, 술에 취해 우는 자는 인(仁)이 없는 자이며, 술에 취해 화내는 자는 의(義)롭지 않은 자이며, 술에 취해 소란한 자는 예의(禮義)가 없는 자이며, 술에 취해 따지는 자는 지혜(智慧)가 없는 자이다. 그런 까닭에 속인(俗人)이 술을 마시면 그 성품이 드러나고 도인이 술을 마시면 천하가 평화롭다. 속인은 술을 추하게 마시며 군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마신다. 마음이 즐겁고 행동이 아름다운 것, 이것이 군자의 취함이다. 마음이 즐거운즉 곧 천을 즐거워함이요, 행동이 아름다운즉 곧 명(命)을 아는 것이다.
술과 장소는 작인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안주와 그릇이다. 안주는 술에 뒤따르는 것이고 그릇은 술과 안주를 받들어 주는 것이다. 예로부터 군자는 안주와 그릇을 잘 선별하였다. 안주는 기혈을 돕고 술 마시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그릇이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므로 아름다운 것을 귀히 여긴다. 상한 그릇은 술자리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술을 마셔 취정(醉情)에 드는(入) 것은 마음을 하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군자는 술을 마실 때 몸을 바르게 하며 마음을 경건하게 갖는다.
대저 술이란 인간을 이롭게 하고 천명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므로 술 마시는 일에는 많은 문화를 갖출 수 있다. 술이 갖는 뜻은 곧 천정(天情)이건만 술 자체는 인간이 만든 식품인 까닭에 상품(上品)이 있고 하품(下品)이 있다. 대체로 상품은 약이 되게 하고 하품은 독이 된다. 만일 작인이 상품의 술을 구하지 못한다면 이처럼 괴로운 일이 있을까?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이라는 물건을 소중히 한다.
술은 하늘의 고마움과 성인의 사랑이 담긴 물건이다. 작인이 이미 상품의 술을 구(求)했다면 좋은 장소에서 그것을 마셔야 할 것이다. 천명은 땅에 깃드는 것이므로 어찌 술 마시는 장소를 고르지 않을 것인가. 고언(古言)에 이르기를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했다. 상품의 술을 아무 곳에서나 마신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일까.
무릇 성인은 천명을 돕고 도인은 천명을 따르는 것이다. 술과 장소, 안주와 그릇 이 사자(四者)를 작화(酌花)라 하고, 이것을 모두 훌륭히 갖추었을 때를 명전(皿全)이라 말한다.
술자리에서의 음악이란 안주와 같은 뜻이 있고 술 따르는 여자는 그릇의 뜻이 있다. 어떤 사람과 술을 마시느냐 하는 것은 때에 따라 정해지지만, 가장 좋은 술자리는 아무런 뜻 없이 한가롭게 술만을 즐길 때이다. 일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이 가장 나쁜 술자리이다. 군자는 즐기기 위해 술을 들기도 하고 일을 위해 술을 들기도 하지만 어느 때라도 법도(法度)를 어기지 않는다. 술자리에는 먼저 귀인이 상석(上席)에 앉는데, 우선 편안한 자리를 상석이라 하고 장소가 평등할 때는 서쪽을 상석으로 한다. 귀인이 동면(東面)하고 자리에 앉으면 작인은 좌우와 정면에 앉고, 모두 앉았으면 즉시 상석에 있는 술잔을 먼저 채우고 차례로 나머지 잔을 채운다. 이때 안주가 아직 차려지지 않았어도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리고 술잔이 비었을 때는 누구라도 즉시 채운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안주를 먹고 있어선 안 되고, 술잔을 받는 사람은 말을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술을 받을 때나 따를 때는 술잔을 보고 있어야 한다. 술잔을 부딪치는 것은 친근함의 표시이나 군자는 이 일을 자주 하지 않는다. 술잔을 상에서 떼지 않고 술을 받아서는 안 되고, 마실 때도 일단 잔은 상에서 들어 올리고 멈춰서 사람을 향한 후에 마신다.
술은 잔을 입술에 대고 고개를 뒤로 젖혀서 마시고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 마신 잔은 직접 상에 내려놓지 않고 일단 멈춘 후 약간 밖으로 기울여 술잔 속을 보이도록 한 다음 내려놓는다. 마실 때 손을 많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술잔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술은 오른손으로 따르고 두 손으로 받으며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술을 귀히 여긴다는 뜻이다. 특히, 두 손으로 마시는 것은 술을 따라준 사람을 귀히 여긴다는 뜻과 술을 중히 여긴다는 뜻이 있다.
상대방 잔이 넘어져 술이 조금 쏟아졌을 때는 그대로 두고, 모두 쏟아졌으면 즉시 그것을 다시 채워주고 잔을 받은 사람은 채워준 사람에게 미안함을 표시한다. 술이 안주에 쏟아졌을 때는 그 안주를 먹어도 좋지만 안주가 술에 빠졌을 때는 그 안주를 버린다. 그 이유는 술은 천이므로 안주에 쏟아진 것이 허물이 되지 않지만, 안주는 지이므로 술에 빠진 것은 지가 요동하여 천을 범한 것이므로 버린다. 또 내가 남에게 따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따르면 자기 잔은 쳐다보지 않고 따르던 술을 모두 따른 후에 자기 잔을 약간 들어 따라준 사람을 향해 고마움을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