酒馬看山(4)
물의 노래, 도연명을 따른 이백
이백(701-762)은 중국 당(唐)나라 시대의 사람으로, 자는 태백(太白)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 한탄하며 유랑과 광기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한 말의 술에 시 백편을 짓는다는 시선(詩仙) 이백. 그는 술과 함께 인생을 희롱하며 자연을 쥐락펴락 했다. 「월하독작(月下獨酌)」에서 “술 석잔 이면 큰 도(道)에 통하고 한 말이면 자연과 통한다”고 일갈할 정도다.
호방하면서도 자유롭고 어떻게 보면 방약무인하다고 까지 할 수 있는 그의 태도 때문에 모처럼 얻은 관직을 떠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현종의 후궁이었던 양귀비에게 먹을 갈게 하고, 당시 세도가 하늘을 찌르던 환관 고역사에게 자신의 신발을 벗기게 한 일화는 후대에 글과 그림의 소재로도 이어지고 있다. 오두미(五斗米)에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도연명의 고절이나 니취(泥醉)한 이백이 황제가 떠주는 해장국을 먹은 얘기도 일응 통하는 바가 있다고 할 것이다.
도연명에서 이백으로 연결되는 흐름에 바로 술이 있다. 삶과 술이 어우러진 관조와 달관의 유유한 여정인 셈이다. 술의 미덕은 취함에 있고, 취한다는 것은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으로의 접목인 것이다. 이백은 인생의 고통이나 비수(悲愁)조차도 술로써 풀어내었다. 그는 맑은 물 따라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흰 갈매기를 보고 "나 또한 마음을 씻었으니, 간교함 잊어버리고 그대 따라 놀리라"며 주유천하의 길을 술과 함께 걷는다. 그의 시에는 중국 구석구석을 누비며 바라본 산천에서부터 하룻밤 묵은 저자의 소반에서 느끼는 감동, 현종의 실정과 안녹산의 난으로 어지러워진 세상에 대한 한탄, 그리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다양하게 녹아 있다.
당대의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는 「음주팔선인(飮酒八仙人)」에서 “이백은 한 말의 술에 시 백 편을 짓고,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잠을 자네.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않고, 스스로 술 취한 신선이라 부르네(李白斗酒詩百篇, 長安市上酒家眠. 天子呼來不上船, 自稱臣是酒中仙)”라며 이백을 주선의 반열에 올렸다. 그 팔선인 중의 한 사람인 하지장(賀知章)은 이백을 적선인(謫仙人), 즉 속세에 귀양내려온 신선으로 높이 평했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술과 더불어 벗을 사귀고 도가(道家)와 불가(佛家)를 넘나들면서 자연과 인생을 노래한 이백. 그의 타고난 천재성에다 삶과 술을 담은 시 1천여 편으로 물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실로 술과 자연을 사랑한 그였다. 만년에 만취한 상태에서 채석강에 비친 달을 잡겠노라며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설이 사실처럼 전해질 정도로 술과는 뗄 수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술에 취해 다음날까지 술집에 쓰러져서 황제가 찾아도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이백 정도는 되어야 주선(酒仙)이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술과 자연을 사랑한 인물이 어디 이백뿐이겠는가? 물의 노래는 그래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