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물의 노래, 술과 인간을 노래한 두보

酒馬看山(5)

물의 노래, 술과 인간을 노래한 두보

 

불은 위로 솟구치지만 물은 아래로 흘러내린다. 이백의 술잔에 담긴 물도 흘러 흘러서 도랑을 이루고 개울이 되고 폭포를 만든다. 비류직하 삼천척(飛流直下 三千尺)의 여산폭포 물줄기는 당대(唐代) 시인 묵객들의 마음을 흠뻑 적시게 된다. 천하를 맘껏 주무르지 못한 회한을 술에 담고, 그 술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서적 감흥이 물처럼 흐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이백과 함께 주유하며 서로의 문재를 확인했던 이가 두보(杜甫)다. 어느 시대건 인물은 걸출한 상대를 만나 서로 보듬어 가면서 새롭게 커 나가는 법이다. 이백이 시선(詩仙)이라면 두보는 시성(詩聖), 이백이 주선(酒仙)이라면 두보는 주성(酒聖)이다.

두보(712-770)는 중국 당(唐)나라 시대 인물로서, 자미는 자(字)이고 두릉(杜陵)의 포의(布衣) 또는 소릉(少陵)의 야로(野老)라 불리운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이백보다 11살 연하인 두보는 꼿꼿한 유교적 선비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술고래였다. 술을 마시면 끝을 봐야 할 정도였고, 술기운에 말을 타고 벼랑을 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다고 한다. 이백은 술잔에 담긴 달을 들고 달에게 묻는다(把月問月)며 술에 대한 그윽한 감상을 나타냈지만, 두보는 예로부터 70세까지 사는 사람이 드물다(人生七十古來稀)며 짧은 인생 번뇌를 잊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즐겁다고 노래한다.

마음 달래기는 마땅히 술이요, 기분 내기에는 詩만 한 것도 없다(寬心應是酒, 遣興莫過詩)는 두보. 그러나 그의 일생은 가난과 방랑의 연속이었다. 젊어서 관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수차례 응시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만년에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관직을 잠시 지낸 때를 빼고는 지독한 곤궁을 벗어나지 못한다. 두보는 ‘음주팔선인(飮酒八仙人)’의 이백이나 하지장처럼 호탕하고 질펀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오죽하면 손님이 찾아와도 반찬은 시장이 멀어 맛난 것이 없고, 술동이의 술은 가난하여 묵은 막걸리뿐(盤飧市遠無兼味 樽酒家貧只舊醅)라고 했을까? 공직에 있으면서도 퇴근하면 곡강(曲江)의 주막에다 관복을 잡히고 술을 마실 정도였다. 도처에 외상값이 즐비하였지만 술은 시름을 풀어주고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평생 친구이자 동지였기에 거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두보에게 있어 삶이 술이고, 술이 곧 삶이었다.

빈한한 속에서 삶의 고통을 술로 달랬던 두보는 뼈마디마다 저며 오는 아픔들을 주옥같은 글로 풀어냈다. 언제나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고 인간 속을 천착하면서 안타까운 현실을 노래했던 것이다. 성격은 강직하여 아부를 싫어했기에 높은 벼슬은 가당치 않았다. 그는 이백처럼 도교나 불교를 넘나들지 않고, 끝내 세속에 남아서 백성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를 승화시켰다. ‘삼리삼별(三吏三別)’ ‘춘망(春望)’ 등 만고의 명작을 쉴 틈 없이 뿜어내다보니, 그에게 시성(詩聖)이라는 찬사가 뒤따르는 것이다.

현존하는 두보의 시 1400수 가운데 술을 소재로 한 시가 300여수에 이를 정도로 술을 즐겨 노래했다. 근세의 문학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한 곽말약(郭沫若)은 저서『이백과 두보』에서 “술 취한 이백이 강물 위에 비친 달을 건지려다 죽었다는 전설은 거짓이지만 두보가 상한 쇠고기를 먹은 뒤 술을 마셔 독이 빨리 퍼져 죽은 것은 사실”이라고 지적하듯이 두보의 죽음 또한 술과 연결되어 있다. 삶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술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두보의 길은 그의 말대로 예로부터 드물다는 고희(古稀)를 멀찌감치 남겨둔 58세에 동정호(洞庭湖)에서 술과 함께 막을 내린다.

조선시대의 유명한 주당 시인들은 이백을 읊조리지만, 훈민정음 번역본에『두시언해(杜詩諺解)』가 실릴 정도로 두보의 우국충정과 애민사상은 아직도 우리의 숨결 속에 삶과 술의 표상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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