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마을 순창의 발효주, 삼해백일주
글·사진 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 술 기행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가잠마을에 삼해백일주가 전승되고 있다. 삼해주는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하고,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이기도 하여, 전라도 순창에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한 일이다.
삼해백일주를 빚고 있는, 순창읍장을 지냈던 권문길(81살, 2014년) 집을 찾아갔다. 마침 1월 초순 삼해백일주를 빚는 날이었다. 바깥 날씨가 차가워, 방안에서 술을 빚고 있었다. 거실에 가득 고두밥을 펼쳐두고 식히고 있고, 작은 방에 술 단지를 놓아두고 고두밥이 식는 대로 술밥을 섞고 있었다. 고두밥은 양이 많아 뒤꼍으로 돌아가는 통로에서 쪘고, 누룩은 창고에 저장된 것을 사용했다. 술은 권문길 씨의 아내인 안인영 씨가 고두밥 80kg 한 가마니 분량을 혼자서 빚고 있었다. 순창고추장단지에 입주해 있는 아들내외가 있지만 술 빚는 일이 힘들어서 관여하지 않으려하고, 다만 남편인 권 씨가 무거운 술밥을 나르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술 빚는 모습을 보니, 밑술과 덧술을 구분하여 빚고 있었다. 1주일 전에 두 솥단지 가득 찹쌀 죽을 끓여 밑술을 빚어둔 상태였다. 찹쌀 죽은 찹쌀을 24시간 정도 물에 불려두었다가 건져낸 후에, 팔팔 끓는 물에 부어 한소끔 끌어올라 퍼지면 불을 낮추어 눌지 않도록 잘 저어주면서 쑨다. 찹쌀 죽이 잘 식으면 누룩을 섞고, 항아리를 따뜻하게 이불로 감싸주면 일주일 뒤에 밑술이 완성된다. 덧술은 밑술에 술밥을 추가하는 것인데, 삼해백일주는 고두밥을 지어 덧술 한다.
덧술은 밑술과 고두밥을 반죽하기 좋을 정도로 적당량 섞어서 열심히 치댄 뒤에 술독에 담는다. 밑술에다가 물 없이 고두밥만 넣기 때문에, 열심히 치대주지 않으면, 고두밥이 따로 논다. 두 팔로 힘주어 치대야 하니, 술 빚기는 힘든 노동이다. 안인영 씨는 이제 나이 들어 술 빚기가 힘들다고 했고, 이제 그만 빚어야겠다는 넋두리를 했다.
안인영 씨는 시집 온 뒤로부터 줄곧 술을 빚었다. 그가 사는 가잠마을은 안동권 씨 동족 촌이다. 9대조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았는데, 삼해백일주를 잘 담았던 분은 시할머니인 창평 고 씨라고 한다. 안인영 씨가 시집왔을 때 고 씨 할머니는 작고해서, 실제 술빚기는 시어머니로부터 배웠다.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삼해주
삼해주는 서울을 대표하는 술로, 서울시 문화재로 삼해약주는 권희자 씨가, 삼해소주는 이동복 씨가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보고된 바에 따르면, 삼해주가 전승되는 곳으로 남원시 송동면 영촌 마을이 있다. 남원과 순창은 이웃한 마을이고, 순창읍 가잠마을로 시집온 창평 고 씨 할머니가 삼해백일주를 잘 빚었다는 것으로 전라도 남원, 순창, 담양 일대에서도 삼해주가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안인영 씨가 현재 빚고 있는 술은 삼해백일주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지만, 빚는 방식은 세 번 나눠담는 삼양주가 아니라, 밑술과 덧술로 두 번 나눠담는 이양주로 간편해져 있다. 예전은 돼지날에 술을 빚고 했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날짜를 맞춰 빚지는 않는다고 했다. 삼해백일주라는 ‘자부심 넘치는’ 술이 이 집안과 마을에 존재했지만, 밀주 단속의 엄혹한 시절을 거치면서 간편한 방식으로 물러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안인영 씨의 집안에 전해오는 또 다른 술로 과하주, 두견주, 찹쌀 진잠주, 백일주가 있다. 창평 고 씨 할머니가 빚었다는 술인데, 안 씨는 삼해 백일주 말고는 빚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백일주는 삼해백일주와 다른 술인데 흰무리 떡을 해서 빚는다고 했다.
안 씨는 방앗간에서 통밀을 빻아와 누룩을 직접 디뎌 술을 빚는다. 누룩은 술을 빚는데 꼭 필요한 발효제다.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삼복더위 때에 누룩을 빚는데, 안 씨는 조금 늦게 입추가 지나고 8월 하순인 처서 때에 누룩을 딛는다. 예전에는 놋대접에 삼베보자기를 깔고 빻은 통밀을 물에 개서 형태 잡아 만들었는데, 이제는 큰 포대자루에 통밀을 10kg, 20kg 넣고 디뎌서 만들어 쓴다. 누룩이 떨어지면 술을 안 빚으려고 하는데, 시장에서 파는 누룩은 사다 쓰면 술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 씨가 빚은 삼해백일주는 누룩향이 강한 편이다. 술을 한 잔 맛보면 누룩 향에 몸이 실리는데, 맥주의 진한 홉향을 연상시킨다. 술맛은 진한데 맛은 부드럽고 단맛이 돈다.
2014년 초 현재 가잠마을에는 53가구가 살고 있고, 그중 안동 권 씨가 40가구 정도 된다. 마을 안 경로당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아들딸 시집보낼 때에 직접 술을 빚기는 했지만, 그 술이 삼해백일주는 아니라고 했다. 그걸로 보아 삼해백일주를 가잠마을에서 두루 빚었다고 보기는 어려워보인다. 안 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집과 형님 댁만 삼해백일주를 빚는다고 하니, 아마도 창평 고 씨 할머니가 시집오고 난 뒤부터 집안 술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효마을 순창의 발효주
안인영 씨는 삼해백일주는 집안 어른들이 반주로 드시는 술이었기에, 사철 끊이지 않고 빚었다. 술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서 찾는 사람이 늘어나 도청에 들어가기도 하고, 총리가 찾아 서울로 올라가기도 했다. 손님이 와서 술상을 차려낼 때면, 안주가 푸짐한데 유과, 동아정과, 감단자, 송화다식, 육포, 깨강정 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양조를 하겠다거나 문화재 지정을 받으려 하지 않은 것은, 양반집에서 술을 빚는다는 말을 듣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순창 지역의 술 마시는 흥미로운 풍습 중의 하나는 밥뚜껑을 활용하는 것이다. 안인영 씨는 집안 어른들이 반주로 삼해백일주를 드실 때는 밥뚜껑인 복지개에 따라 마셨다. 또 음식점에서 반주를 마실 때에도, 복지개 위에 술잔을 올려놓고, 이 술을 마시고 나서 복지개를 열어 식사를 했다. 어른들께 반주로 술 한 잔 대접했던 풍습인데 이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삼해주는 조선 말 개항기에 한양을 중심으로 빚어졌던 술이다. 그 삼해주가 순창 고을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다. 순창에서 이웃한 담양에서 시집온 창평 고 씨 할머니가 친정에서 가져온 술이라는 증언이 있지만, 한양에서 벼슬을 했거나 한양 나들이 했던 집안 어른이 전해준 것일 수도 있다. 순창 가잠마을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삼해백일주는 순창의 특산품이 되기에 충분한 요건을 가지고 있다. 밑술을 빨리 수월하게 완성시키기 위해서 죽을 쑤는 것이며, 단맛이 도는 고급 술을 얻기 위해서 찹쌀을 사용했던 점도 가잠마을 삼해주의 특징이다.
삼해백일주는 순창의 술로 새롭게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문화콘텐츠다.
글 허시명/ 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