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 전통주 스토리텔링(13)
반드시 어린아이부터 마시고 나서 어른들이 마시는 屠蘇酒
귀신 쫒는 술 ‘도소주(屠蘇酒)’
술이란 성인들에 한하여 즐길 수 있는 기호음료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함께 마실 수 있는 술이 있다. 설날의 세시주(歲時酒)인 ‘도소주(屠蘇酒)’가 그것이다. 도소주는 설날 아침에 차례(茶禮)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나눠 마시는 술로서, 세시주(歲時酒)로 분류된다.
술 이름을 풀이하자면 ‘잡을 도(屠)’, ‘사악한 기운 소(蘇)’, ‘술 주(酒)’이니 ‘사악한 기운을 잡는 술’ 또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 ‘악귀를 물리치는 술’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도소주는 설날의 제의풍속(祭儀風俗)과 벽사풍속이 결합한 민간풍속에서 발생된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새 해 새 날의 새 시간을 맞이하는 엄숙한 시간으로, 매우 신성하게 맞으려 정성을 다했다. 설날의 어원을 ‘낯설다’에서 찾기도 하거니와, 다가올 미래의 세계에 대한 불안감이 오히려 겸허하고 순결한 마음자세를 갖게 했으며, 천지신명과 조상신에 대한 보은과 감사의 제사를 올리게 된 것이라는 풀이다.
한편, 옛날에는 과학과 의술,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질병(전염병)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가장 컸을 것이므로, 새 해 첫 날을 맞이하는 시간에 가족 모두가 일 년 내내 무병하고 건강하게 지내고자 하는 바람을 갖게 되었고, 그 처방으로 ‘도소주(屠蘇酒)’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풍속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은, 당나라와 교류가 깊었던 통일신라시대로 여겨지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는데, <오주연문장전산교(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도소주(屠蘇酒)’의 유래에 대하여 다른 설을 제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옛날에 어떤 사람이 움막에 거주하면서 해마다 제야가 되면 사람들에게 약 1첩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주머니에 담아서 우물 가운데에 잠기게 하였다가, 새해 아침 일찍 물을 취하여 술통(술두루미)에 넣고 이름을 ‘도소주(屠蘇酒)’라 하였다.” 한다고 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일에 이르러서는 ‘一人飮之一家無疫, 一家飮之一鄕無疫’이라 하여 “한 사람이 마심으로써 한 집안에 병이 없고, 한 집안이 마심으로써 온 고을에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여기게 될 만큼 도소음의 풍속이 성행했다고 전한다.
한편 <五洲衍文長箋散稿>에 도소음의 유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동원의 ‘도소주(屠蘇酒)’는 반드시 어린 아이부터 먼저 마시면서 노인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물으니, “어린 자는 세월을 얻고 늙은 자는 해를 잃는 것이다.”라고 하여, ‘도소음’의 유래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소주(屠蘇酒)’에 대한 우리나라의 문헌으로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하여 <고사촬요(故事撮要)>,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서 주방문을 볼 수 있는데, 도소주(屠蘇酒)의 주방문을 수록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기록은 1611년에 저술된 <東醫寶鑑>으로, 백미(白米) · 대황(大黃) · 천초(川椒去目) · 길경(桔梗) · 호장근(虎杖根) · 오두거피(鳥頭去皮) 등 7가지 약재가 사용되었는데, 1613년의 <故事撮要>에는 ‘백미’가 빠져있다. 이후의 <林園十六志> 에는 창출·계심·방풍·수유·촉초(蜀椒)·도라지·대황·오두·팥 등이 사용된 방문과 대황·도라지·천초·계심·오두·백출·수유·방풍 등 8가지가 사용된 두 가지 방문을 싣고 있어, 약재가 상당부분 바뀌고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또 <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는 백미(白米)·대황·길경·계심·호장근(虎杖根)·천오(천초)가 사용되었고, 가장 후기의 기록인 <韓國民俗大觀>에는 멥쌀·대황·천초·길경·호장근·오두 등 6가지가 사용된 것으로 되어 있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용되는 재료의 종류와 양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른바 ‘도소음’이 유행하면서 지역이나 사는 형편에 따라 조달할 수 있는 약재를 사용하여 ‘도소음’의 의미를 새기는 하나의 풍속 또는 문화로 뿌리내렸음을 암시한다.
술빚을 때 주의할 일은, ‘오두(烏頭:미나리아재비 과에 속하는 초본식물로 만든 약재)’와 ‘천초(川椒:초피나무의 열매)’와 같이 독성이 매우 강한 재료는 그 사용 양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오두(烏頭)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껍질을 벗긴 것을, 천초는 속의 심을 제거한 후에 사용해야 하고, 한두 차례 끓여서 차게 식힌 후에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KBS와 함께 설 특집 ‘설날 이야기’의 주제로 ‘도소주(屠蘇酒)’의 재현과정과 시음 풍속을 방송하기로 한 바 있었다. ‘도소주(屠蘇酒)’의 주재(主材)가 되는 순곡청주를 먼저 빚어놓고, 그 술이 익기를 기다려, 부재료인 오두거피를 비롯하여 대황·거목·길경·호장근 등 10가지 약재를 베주머니에 넣고 자정에 동네 우물에 매달아 두었다가, 이튿날 새벽 4시경(平明)에 약재주머니를 건져 올리고, 빚어 둔 술에 넣어 잠깐 끓여내니 ‘도소주(屠蘇酒)’가 완성되었다.
‘도소주’가 맥이 끊긴 지 실로 몇 십 년 만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제작진은 물론 동참했던 제자들까지 ‘도소주’ 제조과정을 지켜보았던 만큼 호기심에서라도 반응이 좋으리란 기대를 가졌으나, 어느 누구도 그 맛을 음미하려 들지 않았다. ‘도소주’에 들어간 약재 중에는 ‘오두’ 등 독성이 강한 약재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필자가 먼저 시음을 해 보기로 하였는데, 아무런 탈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모두가 달려들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닥을 보았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기만 하다.
둘째로, 오두, 대황의 사용은 아주 흥미롭다. 오두나 대황은 다 같이 아주 독성이 강하여 전문가가 아니면 처방할 수 없는 약재들이라는 점에서, 전염병과 같은 무서운 질병에 대하여 ‘이독치독’의 효과를 얻고자 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약재를 설날 회일(晦日, 그믐)에 우물에 담근다고 하였는데, 우물을 온 마을사람들이 다 같이 사용하는 것으로, 약재를 우물에 담가두어 온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눠 마심으로써, 온 마을에 질병이 없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우물은 동적(動的)으로 독에 길어 둔 물에 반하여 양(陽)으로 비유되는 만큼, 양기로 받아들임으로써 사악한 기운인 음(陰)을 물리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음력 섣달 회일(그믐)은 저무는 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로서 음일(陰日)을 가리키는데 비해, 정월 초하루의 평명(平明)은 솟아오르는 해(陽年)의 동이 트는 시간, 곧 양(陽)의 시간에 우물에 담가 둔 약재를 꺼냄으로써, 양의 기운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도소음(屠蘇飮)’은 전염병과 같은 질병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같은 시간에 그것도 나이가 어린 아이부터 마시는 것이 풍속이었고, 궁중에서는 왕이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술로 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공음풍속이 있었으므로, 자연히 ‘술 마시는데 따르는 예절’을 가르치고자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음주연령층이 초중등학생까지 확대되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는 시점에서, 부모나 어른들 앞에서 술을 배우게 하려는 조상들의 세심한 배려가 새삼스럽기까지 하다.
◇ 도소주(屠蘇酒) <東醫寶鑑>
술 빚는 법 : ① 12월 그믐날에 대황 1전과 길경 각 1전 5푼, 심을 제거한 천초 1전 5푼, 계심 1전 8푼, 포백출 1전 8푼, 수유 1전 2푼, 방풍 1냥을 매우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다. ② 생사로 된 주머니에 넣고 씻어 준비한 약재를 넣고 새어나오지 않게 끈으로 주둥이를 묶는다. ③ 12월 회일 자정에 우물 속에 넣어 담가두었다가, 다음 날 정월 초하룻날 동틀 무렵에 꺼낸다. ④ 맑은 술 (2~3되)에 우물에 우린 약재주머니를 넣고 잠깐 끓였다가, 다시 끓이길 몇 차례 반복한다. ⑤ 약재주머니를 꺼내고, 술이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베주머니는 건져 내고, 3일 후에 다시 우물 속에 담가 둔다. ⑥ 차례를 지내고 난 후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도소주를 마시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차례로 동쪽을 향하면서 먼저 마신다.
◇ 도소주(屠蘇酒) <故事撮要>
술 빚는 법 : ① 12월 그믐날에 백출 1냥 8전, 대황·심을 제거한 천초·길경 각 1전 반, 호장근 1냥 1전, 오두거피(껍질 벗긴 오두) 6전을 매우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다. ② 생사로 된 주머니에 넣고 씻어 준비한 약재를 넣고 새어나오지 않게 끈으로 주둥이를 묶는다. ③ 12月 회일(그믐날 자정)에 우물 속에 넣어 담가두었다가, 다음 날 정월 초하룻날 동틀 무렵)에 꺼낸다. ④ 맑은 술(2병)에 우물에 우린 약재주머니를 넣고 잠깐 끓였다가, 다시 끓이길 몇 차례 반복한다. ⑤ 약재주머니를 꺼내고, 술이 차게 식기를 기다렸다가, 베주머니는 건져 내고, 3일 후에 다시 우물 속에 담가 둔다. ⑥ 차례를 지내고 난 후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도소주를 마시는데,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차례로) 동쪽을 향하면서 먼저 마신다.
*주방문 말미에 “약재를 우렸던 우물물을 한 사람이 마시면 한 집안이 병이 없고, 한 집안이 마시면 한 마을에 질병이 없다.”고 하였다.
박 록 담(朴 碌 潭)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