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하지장과 팔선인, 술을 노래하다

김상돈의 酒馬看山 ⑥

 

하지장과 팔선인, 술을 노래하다

 

당대(唐代)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인물들이 천하를 흔들고 또 명멸해 갔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이끄는 정신이 있고 인물이 있는 법이다. 그들은 함께 시대를 만들어가며, 서로 경쟁하고 밀어주면서 시대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벼슬에 올라 국가를 경영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미관말직이나 누항에서 시대정신을 구현해 내기도 한다.

중국 역사에서 당은 세계 제국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역량과 세력을 과시한 몇 안 되는 왕조 중의 하나다. 국가를 받치는 힘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바탕이 되겠지만, 그 속에는 문화나 예술이 있어 그 격조를 높이게 한다. 시와 예술을 따르는 삶에서 술이 무르익고, 술에서 다시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다. 당에서도 가장 전성기로 꼽히는 성당(盛唐)시대, 이백과 두보가 물의 노래를 이어가는 길에,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이 있었다.

비록 이들이 한 자리, 한 시기에 함께 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두보는 당시 장안에 머물렀던 8명의 기인들을 술이라는 끈으로 묶어 내었다. 그의 술 냄새 나는 모습들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것이다. 하지장(賀知章), 여양왕 이진(李璡), 좌승상 이적지(李適之), 최종지(崔宗之), 소진(蘇晉), 장욱(張旭), 초수(焦遂)와 이백(李白)이 그들이다.

시인이자 서예가로 알려진 하지장은 태자빈객일 당시, 42세 연하인 이백을 만나게 된다. 그의「촉도난(蜀道難)」이란 시에 반해 적선인(謫仙人-인간세상으로 귀양내려온 신선)이라 부르면서 그를 현종에게 추천한 장본인이다. 하지장은 음주팔선인 중에서 가장 으뜸인 동시에 인격적인 면에서도 앞서갔던 인물이다. 도교적인 면에 심취도 했고,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간 감회를 읊은「회향우서(回鄕偶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함께 지금까지도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두보의 『음중팔선가』는 하지장이 첫 장을 장식한다. 술 취한 하지장이 말에 오르면 배를 탄 듯 흔들거리고, 눈이 어질어질해 우물에 떨어져도 그 속에서 잠잘 정도라는 것이다. 현종의 사촌인 여양왕(汝陽王) 이진은 서 말의 술을 마셔야 조정에 나가고, 누룩 실은 수레만 봐도 군침을 흘렸다고 한다. 또한 감숙 성에 있는 주천(酒泉)의 왕이 되지 못함을 한탄했다하니 술 사랑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좌승상 이적지는 하루 술값으로 만전(萬錢)이나 쓰고, 고래가 모든 강물(百川)을 빨아 들이 듯이 술을 마시지만 탁주는 멀리하고 청주만 좋아 했다. 시어사(侍御史) 최종지는 이백과도 술과 시로 자주 어울렸는데, 우아한 미소년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잔을 들고 백안(白眼)으로 푸른 하늘을 흘겨봐도, 옥으로 빚은 나무가 바람 앞에 선 듯한 자태를 보였다고 한다. 당대의 문장가로서 불도에 심취했던 소진은 비단에 수를 놓은 불상 앞에서 참선에 들곤 하는데, 술에 취한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비단 속 부처가 곡차를 좋아한다며 대작도 마다하지 않았다. 장욱은 초서(草書)의 성인으로 석잔 술을 마셔야 필묵을 잡았으며, 왕공들 앞에서 자신의 머리채를 먹물에 찍어 휘갈기는 이른바 광초(狂草)를 선보일 때면 구름연기가 이는 듯 했다고 그려져 있다. 초수는 백면서생인데다 평소에는 말을 더듬어 조용히 있다가도 술 다섯 말을 마시고 나면 고담준론이 터져 나오고 논리가 정연하여 주변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한다. 주중선(酒中仙) 이백이 저자거리에 엎어져 자면서, 황제의 부름에도 취해서 배에 오르지 못했다는 일화는 『음중팔선가』에서도 압권이다.

이들 팔선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과 술을 온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이들의 자취 또한 주성(酒聖) 두보의 시가가 없었다면 전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깨어있는 자들이 세상을 망친다며 자신들은 죽림에서 취해서 살겠노라 던 칠현(竹林七賢-위진 시대)도 있었지만, 음주팔선인은 냉엄한 현실에 뿌리 내린 채 물의 노래를 이어가는 것이다.

 

글쓴이 김상돈 : 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酩酊)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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