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의 주당천리
가고시마 포장마차촌, 야타이무라에 들어가다
가고시마 시내 밤거리를 거닐다가 흥미로운 술집거리를 보았다. <가곳마 후루사토 야타이무라(鹿児島故郷屋台村)>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곳이었다. 가곳마는 가고시마의 사투리고, 후루사토는 고향을 뜻하고, 야타이(屋台)는 지붕이 있는 이동식 작은 가게를 뜻하니, 번역하면 ‘가고시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포장마차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가고시마 야타이무라(포장마차촌)는 이동식이 아니라, 정주식이었다. 큰 길가에 있지만 재개발이 애매한 공간을 활용한 술집거리였다.
20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은 첫날을 야타이 주점이 비좁아 자리를 잡지 못했다. 두 번째 날에는 세 패로 나눈 뒤에야 야타이 주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술을 한참 마시다가 나는 야타이 골목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야타이 골목 안은 사람들로 왁자했고 장사도 잘 되고 있었다. 야타이무라의 어떤 요소가 흥행 성공을 불러왔는지 궁금했다.
야타이무라의 매력을 꼽으라면, 정겹고 따뜻하다는 점이었다. 야타이 골목 안에 들면 과거에 와있는 듯해서, 마음이 소박해지고 편안해졌다. 가볍게 한 잔하고 가는 포장마차의 정취가 잘 담겨있었다. 향수를 자극하는 문구가 군데군데 있었다. 주점에서는 가고시마 고구마소주를 홍보하며 팔고 있고, 제철에 나는 고향 음식을 안주로 팔고 있었다. 이에 대한 신뢰를 더하기 위해서 매장들이 공동 선언문까지 내걸어두었다. 선언문의 내용은 첫째 가고시마 지역에서 나는 산물을 사용하여 맛있는 요리와 소주를 내놓고, 둘째 미소와 대화로 맞이하는데 가고시마의 구수한 사투리로 맞이하고 안내하겠으며, 셋째 메뉴 가격을 명확히 표기하여 정직한 계산으로 손님을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 우리는 손님을 충심으로 대접하여 인정(人情)이 넘치는 ‘인정 야타이(人情屋台)’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가곳마 야타이무라 안에는 모두 25채의 주점이 있는데 3~4평 정도 되는 공간에서 혼자서 또는 많게는 3명이서 함께 일하고 있었다. 내부에 8~9석이 있고, 문밖 통로 쪽으로 탁자를 한두 개씩 내놓아 손님을 더 받고 있었다. 주점의 디자인은 흡사했지만, 주점에서 파는 음식은 차별화되어 있었다. 가고시마뱀장어집, 가고시마흑돼지요리집, 가고시마 아마미 오시마의 향토요리 닭밥집, 오스미 가노야 식재료를 쓰는 주점, 흑돼지턱고기와 전갱이 고등어 요리를 내는 창작향토요리집, 온천수를 이용한 샤브샤브집, 차와 흑초로 만든 먹이로 키운 방어횟집 등 모든 주점들이 가고시마 소주에 가고시마 식재료나 향토음식으로 만든 안주를 선보이고 있다. 피자나 맥주, 와인을 판매하는 주점도 있지만 이곳의 안주나 식재료는 모두 가고시마 산이었다. 가히 가고시마 식재료와 요리의 경연장이자 학습장이라고 할만 했다.
주점을 운영하는 주인도 소주 소믈리에라는 젊은이가 있는가하면, 중년 손님을 맞이할 노련한 주모도 있어 다양했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손님을 받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대화를 나누는 바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손님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었다.
야타이무라의 장점은 목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고시마 중앙역이 큰 길 건너편에 있어 찾기가 쉬웠다. 가고시마 중앙역 동쪽 출구에서 5분 거리다. 야타이무라 바로 앞에는 택시들이 늘 대기하고 있어서,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가기도 편했다.
무엇보다 야타이무라는 재미있었다. 주점들이 유리창에 온갖 메뉴를 적어놓고, 이벤트 행사도 공지하고, 선언문도 걸어두어 시끌벅적했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다스러운 주인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야타이무라는 공적인 기능도 수행하고 있었다. 술집이 즐비해서 흥청망청, 감정만 쏟아놓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길가 쪽으로 관광안내소가 있고, 소주 홍보관 기능을 하는 곳도 있었다. 그리고 지역 축제를 안내하는 홍보물이나 깃발이 입구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있었다.
야타이무라를 둘러보다가, 출범 과정에 대한 사연도 접할 수 있었다.
여행자의 밤은 언제나 휘황하다. 저녁에 숙소에 짐을 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치 동네사람처럼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거리에 나서는 것은, 즉 낯선 이국의 밤거리에 내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지극한 묘미다. 이때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다. 술도 기호대로 여러 종류에서 골라 마시고 싶고, 술집도 많이 모인 곳에서 골라 들어가고 싶다. 가곳마 후루사토 야타이무라는 그런 관광객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기에 안성맞춤한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