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술

전통주, 지역분권을 말하다

 

전통주, 지역분권을 말하다

 

전통주산업진흥법과 지역문화진흥법

2014년 7월 지역문화진흥법이 도입되었다.

우리 술과 지역문화진흥법은 크게 관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역문화진흥법을 살펴보면서 전통주산업진흥법이 어떻게 개선되고 우리 전통주가 어떻게 활로를 모색해야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2010년 전통주 등 산업진흥법이 도입되고 어느 자리에선가 ‘전통주산업진흥법이 도입되고 전통주가 진흥되는 것이 아니라 전통주학원이 진흥되고 있다’라고 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통주학원의 융성은 양질의 젊은 인력들을 전통주업으로 유인하는 순기능을 해주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전통주를 젊은 감성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며 전통주의 폭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또한 전통주학원은 전통주의 범위를 국내산 원료를 쓰는 맥주와 과실주, 증류주 등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음식과의 결합, 비누 및 미용 용품 등과의 콜라보, 양조장의 문화관광컨텐츠화 등 전통술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시행하던 농민주 추천을 지자체로 이관한 것이다. 농민주 추천 제도는 지역의 원료를 활용하면 주세와 교육세를 50%로 감면해주는 획기적인 제도이다. 지자체 이관 후 지역특산주 추천으로 이름을 바꾼 이 제도는 주세감면뿐 아니라 제조장시설 등에서도 큰 혜택을 볼 수 있다. 가령 막걸리의 경우 발효조와 제성조가 5천 리터 이상이어야 하지만 지역특산주 추천을 받으면 시설기준은 큰 제약이 없다. 다만 양조장의 면적이 10제곱미터만 되면 막걸리제조면허를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유통에서도 가정용이나 업소용(일반음식점 등)의 구분이 없다.

지역특산주추천 제도의 지자체 이관은 주세행정을 중앙의 강력한 통제 하에 두었던 기존질서의 균열을 의미한다. 현장이 있는 지역의 권한을 강화하고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신축성이 생긴 것이다. 이제 그 틈을 더욱 벌리고 확장하여 수천 년의 역사가 녹아있는 농업과 음식문화의 핵인 전통주를 더욱 융성시켜야 할 것이다.

 

전통주, 지역분권을 말하다

분명 전통주산업진흥법은 전통주의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제 시행되고 있는 전통주산업진흥법과 식약청이 전통주의 위생문제에 가세한 상황 그리고 개정되는 주세법 등이 전통주업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한 영향평가를 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법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지역문화정책과 제도에 대한 영향평가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영향평가와 함께 그것을 지역의 전통주산업의 여건에 맞게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와 민간이 전통주산업을 육성할 수 있도록 별도의 기구와 기금제도를 신설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법의 경우 지역문화재단 건립과 지역문예진흥기금을 신설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생활문화동호회 활동에 대해서도 지원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전통주의 경우 2천 년대 초반에 결성된 전통주만들기와 와인 만들기, 맥주 만들기 동호회는 전통술발전의 큰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동호회에 그치다보니 지원 자체를 기대할 수 없었다.

전통주학원의 융성으로 수도권은 물론 지방에도 많은 전통주학원이 생겨 전통주생활문화동호회가 자생적으로 생기고 있다. 이들을 지원해서 이들의 자발성과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들은 지원을 바탕으로 전통술 전시회를 열고 교육을 진행하며, 전통술투어를 진행할 것이다.

지역문화진흥법에는 문화도시, 문화지구, 문화마을 등을 지정하여 지역이 자체의 문화예술자원을 활용한 발전전략을 짤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동이 되어 하고 있는 술축제를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전국의 술을 수도권에 다 모이게 하는 것 이외에 무슨 성과가 있는가?

정부단위에서 움직여 수도권에서 술축제를 벌이면 그나마 지역에서 알탕갈탕 쌓아오고 있는 지역술축제의 기반을 송두리째 허문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령 중앙에서 가양주경진대회를 하는데 누가 지방에 출품을 하겠는가?

이는 지역에 예산을 내려주고 지역은 정부 예산에 매칭을 하여 자체적으로 술과 관련된 도시, 지구, 마을을 만들고 축제와 투어도 만들어야 한다.

전통술을 지역단위의 공동체로 묶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경영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그러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전통술을 중심으로 집단지성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현재 농림축산식품부의 씽크탱크 역할을 하는 교수 집단이나 전통술전문가집단들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강위력한 역할을 해낼 것이다.

이 지면을 빌어 이동필장관께도 한마디하고 싶다. 장관께서는 본인이 전통술전문가라는 의식을 하루 빨리 내려놓았으면 한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

FTA 등으로 농업이 어렵다. 그 가운데 맥주보리농업은 치명타를 맞았다. 기존 맥주제조업체에서 자국산 맥주보리를 일정량 쓰면 300% 가까운 수입맥주보리의 관세를 30%로 내려주었다. 그런데 FTA 체결로 이제는 관세가 무의미해졌다. 국내산보리를 안 써도 어차피 관세는 무관세를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맥주보리농업은 절명했다.

가장 많은 맥주보리를 재배하는 제주도는 그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맥주산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역특산주 추천을 받을 수 없다. 유독 맥주와 위스키, 브랜디는 지역특산주에서 제외시켰다. 지역특산주 추천제도의 가장 큰 목적이 지역농산물소비와 명품화인데 그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면 그 지역에서 지역특산주제도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를 지역에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경제적 약자들이 상부상조 정신을 바탕으로 생산과 소비를 협동화하는 공유 경제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거대자본의 독과점과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인 이상이 만든 협동조합 또한 지역특산주추천을 받을 수 없다.

지역특산주추천 제도와 협동조합의 이상이 일치함에도 프란츠 파농의 작품 제목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처럼 지역특산주추천 제도는 협동조합을 튕겨내 버린다.

위 2문제는 내가 양조장을 마주한 가장 큰 문제이다. 그러나 지역에서 이러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제도적으로 지자체나 지역이 이러한 문제에 개입할 명시적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좋은 술은 시대와 환경이 함께 만들며, 그 첫걸음은 전통술의 지역분권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 글쓴이 유 상 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酒당의 도당 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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